'미소를전하는사람/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달고싶은청년들 vol.8] "자원봉사는 1만큼의 사랑을 주고, 무한대의 사랑을 받는 일이예요."
  2. [닮고싶은청년들 vol.7] 누구나 행복한 꿈이 필요해
  3. [닮고싶은청년들 vol.6] “봉사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우리 어르신들 괜찮으실까 모르겠어요! 박미선 씨의 목소리가 분주하다. 그는 최근에 우양재단 마포구 지역 담당자(관리자)로 일을 시작했지만, 완전히 낯선 얼굴은 아니다. 벌써 5년째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승진(?), 말 그대로 취미가 일이 된 경우다. 

원래 그는 지역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자녀들 대학입시 뒷바라지하고, 남는 시간에 둘레 길을 걷던 평범한 아줌마다. 그러던 그녀가 마포구 100여 가구의 어르신들을 돌보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하나하나 안부상황 체크하고, 전화상담하고, 반찬 나누고, 쌀 배달도 해야 하는 바쁜 일이다. 그녀는 어떻게 프로페셔널 자원봉사자의 세계에 들어왔을까?

 

부담감 

기업의 해외주재원인 남편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던 그는 자녀의 대학입학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 왔다. 당시 미대입시를 준비하는 딸을 학원에 보낸 뒤, 남는 시간 활용을 궁리하다가 우양과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자카르타에 있을 때 경험이 저를 자원봉사자의 세계로 불렀지요.” 

그가 오랜 기간 거주했던 자카르타의 한국학교 옆에는 고아원이 있다. 그는 우연히 고아원 아이들의 낯빛에서 한국인의 그것을 느꼈다. “딱 봐도 한국 피가 섞여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 거예요 박 씨는 가슴한쪽에서부터 이는 부담감을 못 이기고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독일 등 해외에서 봉사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유독 한국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엄마들은 아이들 다 길러놓고 나면 시간이 많이 생기잖아요. 그 시간에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자원봉사하면서 만난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어울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한 거죠.”

계속되는 안타까움

대상은 고아에서 독거노인으로 달라졌지만,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동일하다. 그는 봉사 초기에 만난 한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다.

성격이 까칠한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전기제품을 잘 고치는 분이셨는데, 그러다보니 항상 방 안 전체가 폐전기제품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분이 처음에는 머쓱해 하시고, 화를 내기도 하셨는데 , 저희가 자꾸 찾아뵈니까 고장 난 라디오를 고쳐서 선물로 주는 등 관심을 표현하더라고요. 사람이 그리우셨을 거예요.”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 할아버지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이내 돌아가셨다. 사람의 생사가 사람의 잘못은 아니건만, 박 씨는 책임감을 느낀다.

혈연도 전혀 없었던 분인데, 저라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더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던 게 안타까워요. 언젠가 시장에 갔다가 맛있어 보이는 죽이 있어 사들고 방문했었는데요.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죠. 그때 그렇게나 반갑게 맞아 주시던 그 모습을 잊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자원봉사로 시작해 지역 담당자가 된 그의 바람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 같은 건 없다. 어르신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붙잡고, 그분들의 힘겨운 인생여정을 공감해줄 따름이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어르신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젊었을 때 이야기 같은 거요,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정이 그립고,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서 그러시는 거니까요. 아파서 누워계시다가도, 자신의 이야기하시다가 오히려 힘을 얻고 일어나신다니까요.”

박 씨는 자꾸 돌아가신 분들이 떠오른다. 삶에는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를 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독거어르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안타까운 환경에서 생명이 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호스피스 활동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죽음을 인생의 단계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려는 것이다.

고통과 불안 속에서 임종을 맞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배우자, 가족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고, 기도해주고 이런 일에 관심이 생겼어요. 이게 제 일인 것 같아요.”

그는 이미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3년째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육을 받은 강남 성모병원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은 가족도 있고, 돈도 있는 분들이란 생각에,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단체로 봉사 장소를 옮겼다. 그곳에서는 평범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가면 절반은 연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에요. 바로 얼마 전에도 제 손 붙잡고 돌아가신 분이 계셔요. 그 시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병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분들 각자의 사연을 들어 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리고 그러는 게 저한테는 의미가 있게 느껴졌어요.”

 

때문이죠.

 우양에서 어르신들 만나는 것과 동일한 마음이다. 봉사를 해본사람은 알겠지만,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다. 박 씨에 따르면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한 달에 한두 번 방문하고, 음식 가져다주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요. 얼마 전에 설 잔치를 했는데, 어떨 할머니가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몸도 불편하고 가진 게 없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님한테 당신을 위해 빌어주는 거뿐이야라며 기도를 해주셨어요. 제가 1만큼 시간을 들여 뭔가를 해 준건데, 무한대의 사랑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박미선 씨는 호스티스 교육을 받으며 배운 것들을 우양 쌀 가족과도 나누고 싶다. 그게 아니라도 뭐든지 주고 싶다. 어르신들에게 사랑을 받은 게 더 크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사소하지만 큰 보람과 기쁨이 그를 우양재단 근처에서 오랜 기간 머물게 했고, 그렇게 쌓인 정이 박선선 씨를 우양재단의 베테랑 봉사자로 만들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만나 뵙는 어르신들도 익숙한 곳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치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 어르신들이 외롭게 돌아가시지 않게 하고 싶어요. 어르신들에게 죽음이 무척 두려운 거잖아요.”

 

처음에 자원봉사활동 시작한 건, 제가 남들보다 뭔가 하나라도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솔직히 남들 앞에서 잘나게 보이고 싶어서죠. 비록 그런 이유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의 존재가치를 찾게 된 소중한 계기였던 거 같아요. 남편과 자녀들에 의지하지 않고, 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어요.”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깨달았다는 박미선 씨는 를 찾는 여행을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본인 스스로를 돕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디 우양과 함께하는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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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청년 vol.7] 누구나 행복한 꿈이 필요해 

오늘도 꿈을 향해 한걸음씩 걷는 성단비 씨 이야기

 

여기, 평범해 보이는 대학생이 있다. 인터뷰하는 시종일관 맑은 웃음을 보여준 성단비 씨의 얼굴에서는 어두운 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거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또래의 이십대가 경험하기 힘든 아픔과 좌절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의 꿈만 바라보며 달리는 닮고 싶은 청년이다. 당뇨병치료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왠지 그녀라면 불가능 할 것 같은 꿈이라도 현실로 이뤄낼 것 같다. ‘기대는 이런 청년에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사실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아요. 편입 전에는 학교 끝나자마자 4시간씩 고기 집에서 일하고 녹초가 돼도 틈나는 대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이 나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지난학기에는 주말에만 일을 하고 나름 열심히 했음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속상했죠,”

 

성적에 부담을 느낀 후, 할 수 없이 이번학기에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했다. 2011년도를 사는 대학생의 비애가 느껴졌다. 공부와 생활 둘 다 포기할 수 없어 쩔쩔매고 있는. 처음 대학을 선택할 때는 그저 점수에 맞춰 전문대학에 갔지만, 취업대신 학업을 연장한 건 꿈이 있어서다. 바로 당뇨병치료제 연구다. 고등학교 때 이후 바뀐 적 없는 분명한 목표다.

 

어차피 한번 사는 거잖아요. 밋밋하게 사는 건 싫었어요.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안정을 추구하고 안주하는 것도 싫었죠. 인생을 의미 있고 알차게 살고 싶다랄까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당뇨병 치료제 연구인데, 이걸 하려면 더 공부 많이 해야 되요. 사실 제가 공부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게 공부를 통해서 하는 거니까요. 대학원도 가야하고요

 

어려움을 딛고, 무심코 생각했던 바람

 

그녀가 당뇨병 정복이라는 남다른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그녀가 그 아픔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목표를 세우고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제가 고등학교 때 당뇨병이 생겼어요. 인슐린이 분비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생물책에서나 보던 병에 직접 걸렸으니까 많이 당황했겠죠.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까 하며 방황하고 그랬어요. 사실 그때쯤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제가 보육원생활을 했거든요. 보육원이라는 낯선 환경에 겨우 익숙해질 만하니까 그런 일이 터졌어요.”

 

그렇게 그는 환자가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는 만남도 생겼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성단비씨의 마음을 자극했다. 본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의 당뇨환자는 물론 갓난아이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 내가 나중에 이 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면 좋겠다. 또 그걸 개발해서 생긴 수익금으로 이런 친구들을 돕는다면…….”

 

이 시대 진정한 낙천주의자

 

돌아보면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죠. 저는 상황이 난처해지면 피하고 보거든요. 그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에 어떻게든 맞섭니다. 처음에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에 새로운 기회로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됐어요. 언제까지나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보육원에 맡겨지고, 당뇨병이 생기는 과정에서, 그는 세상의 큰 벽과 마주했다. 세상이 부정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려 애썼다. 세상을 향한 편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으로 기도를 하는 게 큰 의지가 되었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부모님 이혼은 오히려 싸우며 사시는 것보다는 잘된 거 같았어요. 보육원에 와서도 배운 것이 많았죠. 처음에 보육원에 폭력도 있고 지저분할 거 같았는데 실제 보육원 아이들이 엄청 밝고, 행복하게 지내는 거 에요. 저는 그 당시 제가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우울했는데요.”

 

많이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책값이나 급식비 때문에 주눅 들고 힘들었는데, 거기서는 정부지원도 많고, 제가 열심히 할 의지만 보이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는 본인의 당뇨병 역시 남들보다 건강을 잘 지킬 수 있는 기회라고 믿고 있다. 자기 몸을 과신하는 사람들보다 체계적으로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자신이 더 건강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주사 맞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란다. 당뇨병환자들은 주사를 자주 맞아야 하는데,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나눔은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간다

 

아동학습지도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아이의 이야기를 할 때는 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듯이 기쁜 표정이었다.

 

지난 학기 아동학습지를 시작했어요. 원주 시내의 보육원에서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를 가르치는데요. 뿌듯해요. 처음에는 숙제내주고 그러면 잘 안 해오고 그랬는데 매주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이러면서 친해졌고, 이번 기말 고사 때는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수학점수는 많이 올랐어요.”

 

성단비 씨는 우양재단의 사회 환원 프로젝트 경연에서 받은 상금을 해당 아동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주로 가르치는 학생의 책과 참고서, 간식 등을 구입했다. 그녀가 기쁜 것은 단지 조금 돈을 지원받아서가 아니다. 그의 봉사활동 모습을 본 주변인들의 삶이 변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회 환원은 마치 나비효과인거 같아요. 저도 어려운 시절 받았던 도움이 있고, 또 제가 누군가를 돕고, 제 도움을 받은 아이들도 언젠가는 또 자신의 역할을 할 거라고 믿었거든요. 실제로 제가 이런 일을 하니까 관심 있어 하는 친구들이 생겼다니까요. 실제로 하고 있는 애들도 있어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제가 생각했던 대로였어요. 점점 펼쳐져나가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이 발그레 해지는 그녀는 평범한 또래의 여대생이다. 한가지! 꿈을 향한 남다른 열정을 빼고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뭘 해도 난 안 돼에서 나는 뭐든 해낼 거다라는 간단하면서 본질적인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 성단비 씨. 그의 꿈과 나눔이 우리 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지켜봐야하겠다.

 

아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어요. 제 꿈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후원자분들을 통해 꿈에 한 발자국 가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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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에 푹 빠진 남자 안세훈 씨(즐거운 텃밭 자원봉사)

 

일주일에 한번 안세훈 씨(33세)는 농사꾼이 된다. 도시에서 자랐기에 밭일은 서투를 수밖에 없다. 매주 함께 밭을 일구는 어르신에게 지혜를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그는 사실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있는 고시생(수험생)이다. 밭을 매는 법조인은 얼핏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우양의 자원봉사자가 되었을까?

“봉사활동에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른 로스쿨 준비생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서 저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전에는 전혀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곳이 아닌 ‘즐거운 텃밭’에서 봉사하게 된 건 인연이 아닌가 생각해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자원봉사 이력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그와 우양재단의 만남은 조금 특별하다. 올 초 안세훈 씨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그를 길러 준 할머니가 올해 소천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준비하던 공부는 계속해야했다.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독거노인을 위한 텃밭작물을 재배하는 자원봉사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제게 할머니는 부모님보다 더 의미 있는 분이셨어요.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로 지내다가 텃밭작물을 재배하고, 그 작물을 독거노인에게 나눠준다는 일이 저한테는 다른 자원 활동보다 가치 있는 일로 다가왔어요, 그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돌보면서 노인문제, 특히 독거노인 문제를 알게 되었다는 안세훈 씨. 그는 본인의 할머니를 방문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뿐이지만, 그것을 바라본 주변의 다른 어르신들이 외로움에 괜히 화를 내시고, 욕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우양재단이 돌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는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자신의 또 다른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을까.

 

봉사의 기쁨이 뭔지 알기 때문에

안 씨는 지금 로스쿨과 변리사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법조인이 되고, 나아가 법학과 특허 등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이 시대 똑똑한 청년의 야무진 꿈이지만, 가슴에는 ‘사회환원’이라는 가치를 새긴 닮고 싶은 청년이기도 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더라도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단다. 최소한의 생계와 자식교육비를 제외하면 독거노인을 돕는 일에 재산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이전에는 저 살기에 급급했는데,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가진 것이 없는 분들이 오히려 더 자신의 것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더 시간을 내서 참여하고 싶습니다. 우양재단에서 어르신들께 쌀 배달을 하고 정서적인 만남도 가진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최근에 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시작했다.
“이제 처음 봉사를 해봤기 때문에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요. 봉사의 기쁨을 알았어요. 이제는 다른 활동들도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너무 큰일은 제가 감당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주위의 사람들과 미래의 자녀들에게는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모든 일은 정공법으로

“지금 로스쿨과 변리사시험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로스쿨이라는 진로는 이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새로운 길도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여자 친구도 생겼습니다.(웃음)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상황에 마주하고 견디려고 노력을 한 게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석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밝은 모습 뒤에 힘든 가족사가 있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견디고 나니 좋은 날이 오기 시작했다. 관계가 좋지 않던 친척과 관계가 회복이 되고, 새로운 진로에 대한 시각이 열렸고, 누군가를 돕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을 함께 설계할 파트너도 만났다. 

“전에 직장생활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가정을 지키면서 도란도란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건 꿈도 못 꾸지요. 이제는 가족들과 주변을 돌아보며 살고 싶어요. 만약에 교수가 된다면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도 얻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봉사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게 저에게 더 큰 메리트에요.”

 

온통 책과 글로만 둘러쌓여 지낼 것만 같은, 공부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한 고시생의 속내는 이렇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많다면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