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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닮고싶은청년들 vol.5] 꿈을 크게 가진다고 돈 드는건 아니잖아요
  2. [닮고싶은청년들 vol.4] 2011년 길 위에 선 우양청년들 3
  3. [닮고 싶은 청년들 vol.3] 어탕국수는 사랑을 싣고

 

“꿈을 크게 가진다고 돈 드는 거 아니잖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대회만 나가면 번번이 1회전 탈락인거예요. 근데 그때도 제 꿈은 세계랭킹 1위였죠.”

 

김재철(24세)씨는 꿈꾸는 사람이다. 당장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으로 자신을 격려한다. 이런 그에게 좌절과 절망의 시간은 없었겠는가!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창문 밖에서 운동하는 형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구로 운동에 입문해 중학교 때 테니스로 전향하고 하루 5세트(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로 운동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매번 대회 때마다 좌절을 맛봐야 했다. 대회가 끝나고 울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란다. 그러던 중 고3때 전국대회에서 처음으로 1등을 했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힘든 겨울을 나며 수없이 되뇌었을 말이기도 하고, 성적이 부진한 본인을 다독이며 했을 법한 이 말이 결국 실제화 된 순간이다.

사실 그는 매번 바닥을 쳤다고 했다. 근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좌절인지 몰랐다. 운동이라는 끈이 그를 이끌어 줬던 모양이다. 고3. 인생을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운동에서 공부로 진로를 바꾸고 중앙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와서 처음 받았던 학점이 3.11 이었어요.” 영어, 한국사, 일본어 아무것도 몰랐던 그 때도 늘 앞자리에 앉았다. 교수님과 눈을 맞추다 졸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학. 석사 통합과정으로 7학기에 조기 졸업하고 스포츠 마케팅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지금에는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해도 끄떡없단다. 이게 다 운동할 때 쌓아둔 체력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근로 장학생을 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꼬박 3년이다. 학과사무실, 학생지원처 행정실에서 시급 4,500원 받으며 일했다.

한 달 40시간 근로. 다 해봐야 16만원 정도였다. 등록금, 기숙사비, 생활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교외에서 알바 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최대한 교내에서 일을 하려고 했다. 후에 우양재단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제 인생에는 플랜B가 없어요.” 플랜 A에 온 힘을 다하기 위함이란다. 혹시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 될 때가 있다. 근데 그 때도 다른 길이 있더란다. 스물네 살 청년 치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김재철씨는 교수가 될지, 스포츠 마케터가 될지 계속 고민하는 청년이다. 특별히 이거다 정한 거는 없다. 더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더 경험해야 할 것도 많다. 그냥 이 순간에 최선을 노력을 할 뿐이다.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창은 또래 스물 넷 청년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인도 캘커타 ‘죽음으로 가는 집’에 간다. 혹자는 거기는 죽음으로 가는 집이 아니라 삶으로 가는 집이라 하는데, 지금은 “왜?” 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결국 가보면 알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내년 1월. 한 달간의 남인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여행의 색깔을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간단하면서 심오하다. “제 여행은 두 가지 색이예요. 검은색. 다른 하나는 무지개색 이예요.” 신체 건강한 젊은 남자지만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것도 혼자 가는 여행에 대한 설렘 이상의 긴장으로 처음 연상됐던 색은 검은색이었다. 근데 이내 황홀한 무지개색이 연상된단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이지만 본인에겐 왠지 희망이 될 거란다.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그는 지금 육군사관학교 교수사관장교를 준비하고 있다. 선발되면 3년간 사관생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 있다. 미래 꿈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한 플랜 A다. 지원자격도 까다로운데 인원도 딱 1명 뽑는단다. 떨어질 것에 대한 생각은 미리하지 않는단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 없잖아요.”

 

김재철씨가 근무하는 교수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지 1시간이 훌쩍 흘렀다. 학교를 빠져나와 근처 삼겹살 가게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고기는 지글지글 익어가고, 여기저기 왁자지껄 소란하다.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그저 만나고 헤어지기만 한다면 그건 ‘함께’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인생을 나누고 즐거워해야만 ‘함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기 한 점 먹었다 생각했는데 결국 인생 한 점 ‘함께’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맑아졌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허락한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김재철씨는 일주일에 딱 2시간 이지만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친다. 직선으로 뛴 다음 지그재그로 뛰는 프로그램을 지도하면 제대로 인지가 안 되는 아이들은 그저 자기 마음대로 뛴다고 했다. 비록 본인의 교수법대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면서 많은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통해 본인이 행복을 느끼는 것.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보면 어느덧 부쩍 성장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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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청년 vol.4] 2011년 길 위에선 우양청년들



 

 

네 명의 각기 다른 청년들을 만났다. 박은솔(영어) 우승훈(정치외교) 백화성(언론정보) 이영화(영어통번역)가 그들이다. 우양장학생으로 오가며 인사는 했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서먹한 기운이 감돌았다. 조심스럽게 등록금 문제, 취업, 학업 등의 이야기를 꺼냈다. 머뭇거림은 잠시, 비틀거리는 자신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좌충우돌하는 청춘이고, 고민거리 많은 20대인 것이 부끄럽지 않다. 평범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양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요새 ‘취업전쟁’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데. 압박이 그렇게 심한가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지만 여전히 지나친

경쟁이 두렵다는 박은솔 씨.

 

박은솔 : 저는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경영학도 공부하고 있어요. 양쪽에 발을 다 걸치고 있는 거죠. 선뜻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한데. 휴.

이영화 : 취업전쟁이란 말은 대학생이라면 다 공감할 거예요. 압박이 상당해요. 남들 학원 다니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이 느껴지고, 즐기면서 공부하고 싶은데, 다들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우승훈 : 저희 정치외교학과에서 가장 취업 많이 하는 회사가 어딘지 아세요? 보험사에요. 아니면 공무원시험을 치거나 고시를 준비해요. 상황이 그래요.

박은솔 : 사실 전 우양재단도 압박을 줘요. 누군가 공짜로 장학금 준 게 아니잖아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후원해주신 건데, 장학생으로서 열심히 해야 된다는 동기가 되요. 사실 취직까지도 압박이 되요. 부끄럽지 않은 우양인이 되겠다고 말은 했는데 취업 안 되면…….

이영화 : 명절에도 너 어디 취직할거야 공부는 잘되 질문이 부담스럽게 만들어요. 인턴은 했니? 자격증은 땄니? 유명한 회사들 이름 대시면서 왜 지원안하냐고 물으시고.

우승훈 : 맞아요. 정외과 다니는데 무슨 자격증을 따라는 건지? 컴퓨터자격증 얘기하는 건가?

이영화 : 명절엔 부모님이 저 때문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거도 싫죠. 친척들이 저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부모님이 둘러대셔야 하는 상황이면…….

박은솔 : 제 친구들은 (취업 때문에) 성형수술도 많이 했어요. 요새는 남자들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승훈 : 신문을 보니까 외모에 따라서 임금이 10%차이난다고하더라고요

이영화 : 근데 그거 맞는 말이에요. 예쁜 친구들이 취직이 잘되더라고요. 성적 안 좋은 언니는 잘되고 스펙은 좋은데 얼굴이 못생겨서 안 되고.

 

즐거운 얘기도 해봐요. 장학금 받아서 좋죠? 등록금의 압박을 넘어서니까 어때요?

 

박은솔 : 기뻤던 순간을 찾자면 ‘교생실습’이요. 중학교 일학년 아이들이 너무 예쁜 거죠. 교생실습 마치는 날 아이들이 한 달 동안 돈을 모았다면서 성대한 파티를 해줬어요. 케이크도 사주고 선물로 다이어리도 사주고, “선생님 이거 비싼거에요”라면서 내미는데 너무 귀여웠어요.

이영화 : 애들이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나봐요.

박은솔 : 제가 교생실습을 갔던 학교가 강북구 쪽에 있는 학교여서 경제적으로 어려운애들이 많았는데요, 확실히 애들이 더 순수하더라고요. 제가 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이번이 장학금 처음 받은 거라면 그게 제일 기쁘시겠네요?

이영화 : 장학생 되서 기뻤죠. 행복했어요. 저희학교는 아무리 공부 잘해도 전액장학금 안 나오거든요. 저는 나래장학생(새터민장학)이라 등록금은 면제받지만요. 다른 분들은 장학금 받기 전에는 등록금 어떻게 내셨어요?

박은솔 : 아. 대출받았죠. 아 빚 갚아야 되는데…….저 말고 친구들도 다 빚 많아요. 이자도 내야 되는데.

우승훈 : 진짜 무서운 게 은행이자예요. 제가 친구한테 돈을 빌렸다가 갚으려고 은행에 넣었는데 친구가 돈을 못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영문인지 알아봤더니, 이자가 칼같이 빠져나간 거더라고요.

박은솔 : 맞아요. 대학 입학하는 순간부터 이자를 내요. 밀리면 신용불량자 되는 거고요.

이영화 : 뉴스에서 봤는데 앞으론 대출도 잘 안 될 거라 하더라고요. 이미 대출 받은 것도 금리는 계속 오르고요. 영국 같은 경우 학자금 대출받을 때 이자를 안낸데요. 졸업하고 취직을 할 때까지 이자를 안 받는다던데.

박은솔 : 우리나라도 그런 대출이 생기기는 했는데 혜택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그리고 그런 대출을 받았어도 최대한 빨리 취직해야죠. 바로 1~2년 내에 갚아야하니까. 다른 꿈을 꾸거나, 깊이 있는 공부하는 거보다는 취직만을 목표로 대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이 하고싶은 공부에 도전하기를

권했던 우승훈 씨

다들 어떤 공부하고 있어요? 특별히 하고 싶은 게 뭐에요?

우승훈 : 이영화님 나래장학생(탈북청년)이라고요? 근데 가장 서울사람같은데? 말투도 서울말이고. 전공은 뭐에요?

이영화 : 진짜 서울사람 같아요?(웃음) 전공은 영어통번역과에요. 저희 학교 학생들은 이중전공을 많이 하는데, 보통 경영학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영학에 흥미는 없지만, 취업걱정에 어쩔 수 없이 하잖아요. 특별한 꿈이 없기도 하고. 저는 이왕 4년 학교 다니는 거 하고 싶지 않은 공부하며 끌려 다니기 싫어서 러시아어 이중전공을 신청했어요. 지금 와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해야죠.

박은솔 : 맞아요. 그런데 그걸 찾기가 쉽지 않아요.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저도 영어전공이지만 경영학수업을 듣는데, 어떤 건 재미있고 어떤 과목은 왜하는지 모르겠는 것도 있거든요. 그냥 지금이 제가 잘하는 걸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는 하고 있지만…….

백화성 : 저도 사실 중국어를 전공으로 하다가 전공을 바꿨어요. 처음에 대학 올 때는 남한 애들하고 같이 공부해서 경쟁이 될까하는 열등감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중국어 전공을 택했어요.  성적도 잘나왔고, 그런데 조금 허탈하더라고요.

점수받자고 시간 낭비하는 거 같고, 이게 내가 배울게 아닌 거 같고, 그래서 언론정보와 정치외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거예요.

이영화 : 소신 있네요.

백화성 : 새로운 걸 배우고 싶더라고요. 내가 전혀 도전해보지 않은 그런 학문으로요.

우승훈 : 맞아요. 대학교 수업은 어떻게든 하면 다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겁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학부수업은 전문성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거든요.

이영화 : 저희는 언어를 배우는 특성상 1학년 1-2학기에 기초수업만듣다가 2학년 되면 갑자기 수업이 어려워져요. 그래서 보통 해외로 연수를 가죠. 경제적으로 엄청 부담이 되죠.

박은솔 : 저는 영어과라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영어는 국내에서 공부하는 애들도 많거든요.


다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네요. 멋있는 거 같아요. 그래도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있잖아요. 요즘 대학생들을 화나게 하는 건 뭘까요?

 

백화성 : 저는 여자친구가 대학에 입학한 순간이 기쁘면서도 불안했어요. 좋은 대학에 갔지만 여자친구가 너무 예쁘거든요. 다른 학교에 보내놓으니 걱정되고, 심지어 화가 나더라고요.

우승훈 : 저는 그렇게 크게 화낼 사안은 아닌데요. 3학년에 복학해 수강신청을 했는데 새로운 과목이 생겼더라고요. 전문학술영어 같은 수업인데. 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보다 학교에서 영어 수업 들으라고 간섭하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박은솔 : 등록금이 저를 화나게 만들어요. 장학금 경쟁도 심하고, 취직하는 것도 경쟁이 심하고, 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았는데도, 소액 장학금만 주더라고요. 우양에서 학교장학금 받으면 그 돈으로 또 다른 친구들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해서 학교장학금도 지원했었거든요. 제가 재단에 후원은 못해도 이렇게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영화 : 옛날에는 대학 졸업만 하면 취직됐다지만, 지금은 너무 어렵잖아요. 제 꿈이 뭔지 못 찾았는데, 인생에 고민할 시간도 부족한데, 졸업 얼른 하고 취직 안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여자들은 나이 많으면 회사에서 안 받아준다고 그래서 더 압박이 있어요. 요즘 같은 때 취직되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백화성 : 저는 정치권을 보면서 분노하는 편이에요. 제가 사회문제와 북한인권 관련 모임을 하는데, 정당들이 북한인권법에 관심이 없어요. 여야가 북한주민들을 생각해서 법을 상정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도움 될 때만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그럴 때 화가 많이 나죠.

박은솔 : 그렇게 혼자서는 화가 나도, 그냥 열심히 공부할 뿐이에요. 사실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데, 너무 과도해서 문제죠.

우승훈 : 저는 특히 학교 내 장학금 경쟁이 슬퍼요.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하고 싶은 애들이 있어도 시도하지를 못해요. 성적으로 학생들 돈 줬다 뺐었다가 하는 거 최악이에요.

이영화 : 그래요 열심히 사는 청년들을 판단할 잣대가 없어요. 성적만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장학금도 소득수준을 고려해서 주고 그래야하는데, 그런 장학금은 많지도 않고, 받기도 엄청 까다로워요. 엄청나게 가난해야 한다더라고요. 미국은 등록금이 비싼 만큼 장학금은 많이 준다면서요.

박은솔 : 이렇게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일상의 행복을 찾기도 하고 그래요. 이거 왠지 말하면서 씁쓸하네요.

백화성 씨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탈북 출신 대학생이다. 이날 재미있는

입담으로 집담회를 이끌기도했다.

 

요즘 씁쓸한 일들이 많죠. 개인적인 고민거리는 뭔가요?

 

백화성 : 저는 가족이 보고 싶어요.

박은솔 : 분단의 현실이네요.

백화성 : 부모님 뵌 지 9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이제는 함부로 소식을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제가  너무 피해를 끼치고 그래서, 다른 탈북출신 형들은 고향가족을 알아봤는데 다 굶어죽었다더라 그러니까 무서워서 더 못 알아보겠어요. 

은솔,영화 : .…….

우승훈 : 저는 돈 문제네요. 얼마 전 친구생일 때 일인데요. 제가 케냐에 봉사활동 다녀오느라 과외도 잘렸었거든요. 그래서 돈이 없었는데, 명절 기차표 산 뒤 지갑에 딱 이만 오천 원밖에 없었어요. 제일 친한 친구 생일이라 케이크를 사러갔는데 이만 몇 천 원이었어요. 그 케이크 진열대 앞에 두고 살까말까 망설이던 때가 슬펐어요. 진짜 친한 친구지만 돈 없으니까 케이크 하나도 사주기 힘들구나 싶어서요. 친구한테 돈 없어서 못해주겠다고 하기도 그러고.

이영화 : 그러게 돈이 뭐 길래 저희가 이렇게 고민할까요. 이 종이 쪼가리 때문에 사기도 치고 목숨도 걸고 자살도 하고 그러잖아요.

백화성 : 저도 여자친구와의 백일 기념일에 돈이 없어서 난처했었어요. 일요일이었는데 일부로 상점들 문 닫은 밤까지 기다렸다가 여자친구를 만났어요. 선물이나 케이크 살 돈이 없어서, 사실 시간은 많았는데, “가게들 문이 닫아서 꽃 하나 겨우 살 수 있었어“ 하면서 내밀었죠.

이영화 : 좀 슬프지만 저 같으면 장미 한 송이라도 감동 받았을 거 같은데요?

유창한 서울말(?)로 집담회
참가자를
당황시킨 이영화 씨.
공부만하느라 꿈
을 찾기 힘든
세상에 살고있다고.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요즘 정치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 별로 없죠? 요즘 비정치인이 정치계의 인물로 떠오르는 경우도 많은데? 관심 있는 분야에요?

이영화 : 저는 안철수 교수처럼 비정치인이 정치권에 나오는 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그래요. 뭔가 변화가 있진 않을까 생각되고. 한편으로는 이미지 망가질까봐 안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우승훈 : 박원순씨는 정치계에 아는 사람도 많고 감각도 있고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안철수 씨는 걱정스러워요.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요. 정치하는 사람들 머리도 좋고 무서운 사람인데, 어떻게 감당할지도 모르겠고요.

이영화 : 저는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냥 자기 분야에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정치인들이 자기들 월급올리고 본인 자녀들 학자금 주고 이런 거 보면, 좀 정치를 못하더라고 시민을 위해서 목소리 내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도 들긴 하네요.

백화성 : 저도 우려하는 편이에요. 권력을 손에 쥐면 사람이 다 오만해지고 변하거든요. 순수한 소신을 지키고 그럴 수 있을까요?

박은솔 : 사람들이 사는 게 너무 바쁘다보니 정치인들이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거 같아요.

이영화 : 근데 우리부모님만봐도 사는 게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써요.

백화성 : 공부도 많이 하고 시간도 있는 대학생들이 이런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하는데 요새 대학생들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내가 해도 안될거같다는 시대에 순응하는 자세도 많이 보여요.

우승훈 : 제가 정치를 공부하는데요. 정치는 알면 알수록 자신의 삶 주변의 모든 게 정치와 연결된 것으로 보이게 되요. 조금 더 알면 참여하고 싶은 맘도 들게 되고 그래요.

박은솔 : 맞아요. 그런데 저는 쉽게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epilogue
알싸한 매연이 가득한 청량리 광장주변에서 이런 대화들이 오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저녁식사와 함께 시작한 저희들의 대화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고, 집담회를 진행한 커피숍의 영업시간은 종료되었다. 어쩔 수없이 하늘이 뻥 뚫린 청량리 광장으로 나왔고. 버스 경적소리, 비틀거리는 취객들의 뒷모습, 일찌감치 벤치를 차지한 노숙인의 향내가 어우러지는 그곳에 이들은 서있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웃고 떠들며 때로는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마침 올려다본 가을의 맑은 밤하늘과 달빛은 아주 잠시 평화로운 적막을 가져왔다.

“아! 내일 아침수업 준비해야지. 가야겠다. 그럼 저희 또 만나는 거죠?”

 

 

장마가 가고 무더위의 절정이다. ‘이 더위에 홀로계신 어르신들은 얼마나 기운이 빠질까?’ 착한 걱정에 주변 어르신들에게 영양가득 어탕국수를 대접하는 사람이 있어 만나게 되었다. 어탕국수는 가물치, 메기 등 각종 민물고기를 센 불에서 끓인 뒤 통째로 갈아 체에 걸러, 우거지 숙주와 함께 다시 푹 끓여 나온 보양음식이다.

김병옥 씨는 마음상점을 통해 우양재단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이 언제든 많이들 잡숫고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씨 좋은 아줌마다. 가게는 열 테이블이 채 되지 않는 평범한 동네 식당이고,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하지도 않았다. 가게 주변이 공사 중이라 손님이 없어 불편한 마음임에도 우양재단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식당 경력 20년의 베테랑

그는 이십년 전 홍대 근처에서 식당을 시작해 지금까지 일을 쉬지 못하고 있다. 한번 일을 시작하고 나니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어릴 적 지리산 자락에서 자라며 냇가에서 민물고기를 잡아먹던 기억이 지금의 직업으로 이어졌다. 행주산성 주변 맛 집으로 이름을 날릴 때는 <MBC>에서도 관심을 보여 취재하기도 했다. 어탕국수라는 음식이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에 미꾸라지를 넣지 않는다.

민물고기는 대부분 한국산이에요. 그런데 요사이 미꾸라지는 중국에서 많이 들여오잖아요! 그래서 넣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불안하니까)” 장삿속보다는 음식 먹는 이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김 씨는 홍대 앞에서 이모네 닭한마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학생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홍대에선 손님이 많아진 게 오히려 화가 되었다. 세를 들었던 가게 주인이 나가라고 해 지금의 합정동으로 왔다.

홍대에서 십여 년 학생들 상대로 장사를 했어. ‘이모네 닭한마리라고 하면 예전 홍대 학생은 다 알아. 요즘에도 전화해서 예약하자고 한다니까. 그만둔 지가 언젠데! 호호호. 그때 닭한마리를 주문하면 만원인데, 3명이 먹을 만큼 푸짐하게 줬거든. 근데 그것도 학생이니까 돈이 없어서 못 먹고 그러면 그냥 주기도 하고 그랬지.” 예전부터도 남을 돕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김 씨다.

 
지금의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따뜻한 마음씨는 그때부터

십년 전 손님들이 다시 오기도 찾아오기도 하고 그런단 말이야. 사람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어있거든. 그래서 나쁜 짓하지 말고 좋게 살아야 해.”

어르신들은 어떻게 돕게 되었냐는 질문엔 별것도 아닌 걸 자꾸 묻는다며 나무라신다.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소녀 같으시다. “친정아버지가 시골에서 살 때 남들 주는 걸 그렇게 좋아하고 그랬데. 내가 그걸 닮았나봐. 지나가는 거지들도 밥 먹여 보내야 하고 그래……. 다행히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으니까. 밥 한 끼, 옷 한 벌이라도 주고 그러면서 살아야지. 내가 지금 크게 그거한거도 아니잖여. 그만혀.”

김 씨는 수십 년에 걸쳐 어머님께 배운 요리법의 전수도 올케에게 다 전수했다. 본인은 어깨너머로 힘들게 배웠지만 동생가족에게는 하나하나 글로 써줬다는 거다. 그렇게 두 동생도 식당을 차렸고, 고양과 김포 근처에서 자리를 잡은 식당이 되었다고 한다.

동생식당에 예전에 TV에 나온 거를 붙여놨는데 사람들이 계속 이 아줌마를 찾았데. 맛이 변했으니, 어떠니, 이런 소리 많이 듣고 그래서 다 알려주고 왔어. 가족인데 장사가 잘되어야 하지 않겠어. 요새는 사람들이 줄서서 들어간데

 


어르신들 더 많이 모셔오세요

괜찮아 그거 안 팔아도 그만치 다시 들어와그렇게 베푸셔서 남는 게 있겠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요사이는 더워서인지 어르신들이 잘 안 오신다고.

오시면 어탕 말고 다른 거 도 해드릴 수 있으니 좀 모셔와요. 어탕이 소화도 잘되고 탈이 없는 음식이긴 헌데, 어르신들이 다른 거 잡수시고 싶으면 해드려야지어르신들 스스로는 잘 들르시지 않기 때문에 어르신들 좀 모시고 오라고 하신다. 김 씨는 사실 우양이 무슨 일 하는 단체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좋은 일 하는 곳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재단의 다른 사업이야 상관없으니 우리는 가게로 어르신만 데려오면 된다는 거다.

나는 이제 큰 꿈은 없고, 남들한테 나쁘지 않게 대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좋아. 언제 큰 돈 벌어서 큰 봉사를 하고 그러겠어. 지금 그냥 살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사실 우리 어탕국수가 타산이 맞진 않아. 옆 가게는 비슷한 탕 가격을 2,000원 올렸더라고. 어떻게 그렇게 하나! 돈 없는 사람은 부담스럽고 그렇잖아. 나도 그냥 많이만 팔리면 괜찮고. 이제 와서 크게 돈 벌고 그러면 뭐해. 건강하게 좋게 살면 되지.”

! 그나저나 그 할아버지는 왜 요새 안 오신데! 예전에는 할머니 가져다준다고 음식 싸서 가시곤 했는데.”

별일 아닌 듯이 우양이 관리해야 할 어르신을 기억하며 걱정하신다. 많은 손님들 사이에서도 할아버지 한 분을 기억하는 세심함이 아름답다. 어떻게든 생색을 내지 않으시려는 순수함 간직하시면서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