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련, 유혹, 고통 그리고 기쁨은 늘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장소 역시 남다르다. 100교회 목회자 성지순례 여정 중에 만났다.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비로소 요르단에 넘어와서야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장소는 요란했고 어두웠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는 진솔했다. 우린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장소와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정오에서야 비로소 이해된다.’ 는 것을 말이다.

 

나를 이근원이라 불러주오.

인간이 삶의 의문을 제기할 때는 언제인가. 바로 높이와 풍부함을 얻고자 할 때다. 삶은 높아지고자 할 때 분명 기존의 뭔가와 싸운다. 이근원씨 역시 그렇다. 10년 전 이집트 피라미드를 혼자 여행 할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함께 손잡고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갔던 이야기는 성지순례 내내 회자되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3년 전 아내가 뇌종양 선고를 받은 것이다. 큰 병원비를 감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부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때 우양재단을 통해 얼마만큼의 병원비를 지원받았다. 이근원씨는 이때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하심을 느꼈다고 한다.

 

성지순례 기간 내내 여느 목사님들 과는 달리 혼자 사색에 잠겨있는 이 목사는 흔한 디지털 카메라 하나 손에 들지 않았다. 처음 오는 여행지가 아니어서인지 남들과 다른 여유로움도 묻어난다. 100여 명의 대규모 무리. 순례의 여정 속에 남들과 다른 옷차림과 분위기로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서 노마드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니 호기심은 증폭됐다.

 

다같이 놀자 양평교회에서

경남 거창, 양평마을. 할머니 7, 아이들 조금, 중고등부 조금. 매 주일 12~15명 정도가 빙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린다. 양평교회에는 강대상이 없다. 예배 형식이야 당연히 있지만 이목사가 설교하는 도중에 누군가 말을 하면 순간 딴 길로 새기 일수다. 그게 뭐 그렇게 큰 문제겠는가. 그저 방바닥에 둘러앉아 이야기 하는 자체가 예배인 것을 이 교인들은 잘 아는 것 같다.

 

감리교 수련목 이후 목사안수를 받고 첫 사역지인 양평교회. 벌써 9년째 한 교회에 머물며 살고있는 그에게 목회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한 순간도 어려웠던 적이 없다. 순진한 할머니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다. 할머니들은 매일 싸우지만 말리지 않는다. 교회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나. 양평교회 교인들은 평생 처음 교회에 나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어르신은 십자가에 합장하고 들어오신다.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그게 문제인가. “이분들은 단순히 성도가 아니예요. 식구죠.” 그의 말이다. 아래채 예배당에서 예배가 끝나면 윗채에 올라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예배는 결국 밥상으로 끝나야 해요.” 이제야 성도가 아니라 식구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교회는 교회기만하고 세상은 세상이기만 하다.”

이 목사는 소통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매년 성탄절 등 절기 행사 때마다 나름의 주제를 정해 마을 축제로 진행한다. 재작년에 ‘Fun Fun한 크리스마스에 이어 작년 크리스마에스는 이웃에게 말을 걸다.’ 는 주제로 마을 회관에서 중고등부 아이들이 공연도 하고 함께 떡국도 끓여 먹었다. 분위기는 물어볼 것도 없이 좋았다. 교회의 분명한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행사였다.

 

어쩌면 일어날지 몰라, 기적

그는 지금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마을 어르신이 무상으로 땅을 빌려줬고, 또 어떤 누군가가 건물을 빌려줬다. 이들 누구도 주인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주인이 아닌 공간이 생겼다. 그는 그곳에 이름을 사람 책 도서관이라고 붙였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란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도서관이라 하면 으레 책을 빌리기 마련인데 이 곳에서는 책 대신 사람을 빌려 읽는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 책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목 받지 않는 소방관이 미혼모가 동성애자가 스스로 책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빙 라이브러리바로 그가 꿈꾸는 살아있는 도서관이다. “책을 읽는 건 사실 대화하는 거예요.” 아직은 미비하지만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흥분된다.  

 

교회는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공간이예요.”  

교인이 아니더라도 주위에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공동체라고 꼭 한 공간에 모여 살아야 하는가. 이목사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게 바로 공동체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교회, 마을이 아니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 고정된 틀 속에서 교회는 이래야 한다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립된 삶에서 함께하는 삶으로.  

 

잠시 쉬어가는 여행, 성지순례

성지순례의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목사이고 남자인지라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물었다. 성지순례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는 같은 형편의 사람들끼리 성경에 있는 성지를 돌아보고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성지로 이집트 모카탐 언덕에 오를 때를 꼽았다. 모태신앙으로 평범하고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해왔다. 어릴 때 아침마다 가정예배를 드렸고 청소년기에는 교회에 대한 반항심도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쩌다신학생이 됐다고 한다. 그런 그가 모카탐을 오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단단함에 놀랐다. 무슬림으로부터의 조롱 속에서도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그들을 보니 가슴이 짠해왔다. 

 

처음에는 그저 말랑하게 보였던 그였는데 대화를 하고 있자니 말랑함 속에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유를 찾았다. 그는 인생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꼽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억척스럽게 일 하시는 아버지는 궂은 일 마다하지 않으시는 단단한 분이었다. 아버지의 신앙은 인생 못지 않게 고집 있는 단단함이 있었다. 이 목사는 그런 그의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을까. “우리 아버지는 단단하신 분이예요.” 라는 말이 마치 우리 하나님은 단단하신 분이예요.” 처럼 들린다.

 

한번은 아내가 물었다. 당신이 원하는 목회는 뭐냐고.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무엇을 보며 달려가는가.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는 정의와 평화, 화해 그리고 용서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틀린 것인데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미 그는 어쩌면 많은 것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Happy virus, 양평교회. 그가 현재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은 아니다. 현재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 두는 공간이다. 삶이 무료해질 때 경남 거창 양평교회에 들려보시라. 특별하지는 않지만 남다른 삶의 탈출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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