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우리 어르신들 괜찮으실까 모르겠어요! 박미선 씨의 목소리가 분주하다. 그는 최근에 우양재단 마포구 지역 담당자(관리자)로 일을 시작했지만, 완전히 낯선 얼굴은 아니다. 벌써 5년째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승진(?), 말 그대로 취미가 일이 된 경우다. 

원래 그는 지역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자녀들 대학입시 뒷바라지하고, 남는 시간에 둘레 길을 걷던 평범한 아줌마다. 그러던 그녀가 마포구 100여 가구의 어르신들을 돌보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하나하나 안부상황 체크하고, 전화상담하고, 반찬 나누고, 쌀 배달도 해야 하는 바쁜 일이다. 그녀는 어떻게 프로페셔널 자원봉사자의 세계에 들어왔을까?

 

부담감 

기업의 해외주재원인 남편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던 그는 자녀의 대학입학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 왔다. 당시 미대입시를 준비하는 딸을 학원에 보낸 뒤, 남는 시간 활용을 궁리하다가 우양과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자카르타에 있을 때 경험이 저를 자원봉사자의 세계로 불렀지요.” 

그가 오랜 기간 거주했던 자카르타의 한국학교 옆에는 고아원이 있다. 그는 우연히 고아원 아이들의 낯빛에서 한국인의 그것을 느꼈다. “딱 봐도 한국 피가 섞여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 거예요 박 씨는 가슴한쪽에서부터 이는 부담감을 못 이기고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독일 등 해외에서 봉사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유독 한국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엄마들은 아이들 다 길러놓고 나면 시간이 많이 생기잖아요. 그 시간에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자원봉사하면서 만난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어울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한 거죠.”

계속되는 안타까움

대상은 고아에서 독거노인으로 달라졌지만,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동일하다. 그는 봉사 초기에 만난 한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다.

성격이 까칠한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전기제품을 잘 고치는 분이셨는데, 그러다보니 항상 방 안 전체가 폐전기제품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분이 처음에는 머쓱해 하시고, 화를 내기도 하셨는데 , 저희가 자꾸 찾아뵈니까 고장 난 라디오를 고쳐서 선물로 주는 등 관심을 표현하더라고요. 사람이 그리우셨을 거예요.”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 할아버지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이내 돌아가셨다. 사람의 생사가 사람의 잘못은 아니건만, 박 씨는 책임감을 느낀다.

혈연도 전혀 없었던 분인데, 저라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더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던 게 안타까워요. 언젠가 시장에 갔다가 맛있어 보이는 죽이 있어 사들고 방문했었는데요.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죠. 그때 그렇게나 반갑게 맞아 주시던 그 모습을 잊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자원봉사로 시작해 지역 담당자가 된 그의 바람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 같은 건 없다. 어르신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붙잡고, 그분들의 힘겨운 인생여정을 공감해줄 따름이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어르신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젊었을 때 이야기 같은 거요,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정이 그립고,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서 그러시는 거니까요. 아파서 누워계시다가도, 자신의 이야기하시다가 오히려 힘을 얻고 일어나신다니까요.”

박 씨는 자꾸 돌아가신 분들이 떠오른다. 삶에는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를 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독거어르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안타까운 환경에서 생명이 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호스피스 활동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죽음을 인생의 단계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려는 것이다.

고통과 불안 속에서 임종을 맞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배우자, 가족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고, 기도해주고 이런 일에 관심이 생겼어요. 이게 제 일인 것 같아요.”

그는 이미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3년째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육을 받은 강남 성모병원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은 가족도 있고, 돈도 있는 분들이란 생각에,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단체로 봉사 장소를 옮겼다. 그곳에서는 평범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가면 절반은 연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에요. 바로 얼마 전에도 제 손 붙잡고 돌아가신 분이 계셔요. 그 시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병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분들 각자의 사연을 들어 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리고 그러는 게 저한테는 의미가 있게 느껴졌어요.”

 

때문이죠.

 우양에서 어르신들 만나는 것과 동일한 마음이다. 봉사를 해본사람은 알겠지만,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다. 박 씨에 따르면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한 달에 한두 번 방문하고, 음식 가져다주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요. 얼마 전에 설 잔치를 했는데, 어떨 할머니가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몸도 불편하고 가진 게 없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님한테 당신을 위해 빌어주는 거뿐이야라며 기도를 해주셨어요. 제가 1만큼 시간을 들여 뭔가를 해 준건데, 무한대의 사랑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박미선 씨는 호스티스 교육을 받으며 배운 것들을 우양 쌀 가족과도 나누고 싶다. 그게 아니라도 뭐든지 주고 싶다. 어르신들에게 사랑을 받은 게 더 크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사소하지만 큰 보람과 기쁨이 그를 우양재단 근처에서 오랜 기간 머물게 했고, 그렇게 쌓인 정이 박선선 씨를 우양재단의 베테랑 봉사자로 만들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만나 뵙는 어르신들도 익숙한 곳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치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 어르신들이 외롭게 돌아가시지 않게 하고 싶어요. 어르신들에게 죽음이 무척 두려운 거잖아요.”

 

처음에 자원봉사활동 시작한 건, 제가 남들보다 뭔가 하나라도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솔직히 남들 앞에서 잘나게 보이고 싶어서죠. 비록 그런 이유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의 존재가치를 찾게 된 소중한 계기였던 거 같아요. 남편과 자녀들에 의지하지 않고, 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어요.”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깨달았다는 박미선 씨는 를 찾는 여행을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본인 스스로를 돕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디 우양과 함께하는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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