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목회자자녀'에 해당되는 글 2건

  1.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능동교회편] part 1.
  2. [닮고싶은 청년들 vol. 15] 스물여섯 인생 페이지에 희망을 그리다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no.2 [능동교회편]

 

 

첫째날.

 

2012816일 목요일 오전 9,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에 위치한 능동교회로 농촌교회 방문 및 농촌봉사활동을 가기로 한 첫 날, 후원관리팀 노희정 부장과 농어촌섬김팀 손삼열 과장을 비롯하여 우양재단 장학생들이 함께 모였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 그리고 무더운 날씨로 인한 약간의 걱정 등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자 재단건물 1층에 있는 배움터로 장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늦어진 1명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가 모였다.

먼저 농어촌섬김팀의 팀장인 손삼열 과장의 간단한 본인 소개와 농촌교회 방문 및 봉사활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곧 바로 우리는 우양재단의 꽃마차 스타랙스와 모닝에 나눠 탑승하여 김포 능동교회로 출바알~~

약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우리는 꽃마차 스타랙스와 뉴 모닝이 인도하는 대로,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네비게이션이 말해주는 대로 찾아 능동교회에 도착했다.

 

 

 

처음 딱!! 능동교회에 도착했을 때 이미지는 WoW~~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시골교회의 건물이 아니었다.

도시의 웬만한 중소형 교회의 규모로 새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었다. 깔끔하고 창의적인 실내 인테리어와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의자 등 세련되고 모던한 교회의 건물과 시설은 신학생을 비롯한 농어촌 교회 목회자 자녀들로 이루어진 이번 우양장학생들의 관심과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교회 예배당에 앉아 우리 모두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고, 능동교회의 담임목사인 이정복 목사의 안내로 교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교회 식당으로 이동하여 교회에서 준비해주신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는 우리를 위해 목사님 사모님과 몇몇 성도님들께서 제육볶음과 계란말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반찬을 대접해 주셔서 맛있게 배불리 먹었는데 어떤 학생은 너~맛있어서 밥 두 그릇을 순식간에 흡입했다. 아무튼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리는 23일 동안 머물게 될 마음회관 2층으로 이동하였다.

사실 이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로 삼성사회공헌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예쁘게 리모델링 되어있었고,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으로 잘 활용되고 있었다.

마을회관 2층을 교회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삼성사회공헌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방아 리모델링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정복 목사가 능동교회로 부임한 이후 10여 년 동안 지역사회와 어르신들을 돕고 섬겼던 노력과 기도가 있었고, 목사님 사모님의 세밀하고 적극적인 도전과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역아동센터를 구경하기가 무섭게 우리의 짐을 내려놓자마자 우리의 꽃마차 스타랙스에 올라타고 우리가 농촌 일을 하게 될 더덕 밭으로 향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더덕 밭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우리가 입고 온 복장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왜냐하면 더덕 밭은 우리의 키만큼 높이 올라온 더덕 덩굴과 온갖 잡초, 벌과 곤충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덥다고 반팔에 반바지!!

더덕 밭에 높이 자란 덩굴과 온갖 잡초들로 인해 우리의 다리는 벌레에 쏘이고, 풀에 쓸리는 등 여기 저기 영광의 상처가 생겼고, 유일하게 긴 청바지를 입어 복장선택 잘못 했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았던 장학생 '향기'가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만들어 졌다.

 

 

그렇게 오후 2시부터 우리의 잇 아이템! 낫을 들고 폴대와 함께 이은 노끈을 따라 자라난 더덕 덩굴과 잡초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내리 쬐는 무더운 날씨에 우리는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비를 내려주소서라는 외침과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를 웅얼거렸다. 하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는가? 아니면 우리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텔레파시가 통했는가? 때마침 중간 휴식과 참을 먹는 시간이 생겼다!! 앗싸!!

농촌봉사하고 있는 더덕 밭 주인 어머니께서 감자를 삶아 주셨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더운 날씨에 먹는 뜨거운 감자는 그리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원한 음료수와 더 시~~원한 수박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참 Time'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그렇게 금세 또 시간이 지나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고고~~

 

 

 

2시간 여 정도 더 일했을까?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어디선가 마무리 하라는 아~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낫을 내려놓고 나오려는데 더덕 밭주인 아버님께서 더덕 밭 한편을 삽으로 파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굵직 굵직하고 실한 더덕이 덩굴 채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Wow!! 불과 약 2미터 정도만 파서 캤을 뿐인데 큰 바구니로 거의 한 가득 담겨졌다.

우리가 놀라는 것에 반해 주인 아버님은 훗~ 아쉬움이 담긴 미소를 지으시며 올해 비가 많이 안와 가물어서 더덕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하셨다. 우리가 보기엔 왕건이들 이었는데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의 마음은 그런가보다.

아무튼 그렇게 한 가득 담긴 더덕을 받아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들려오는 또 하나의 희소식!! 이정복 목사님께서 우리를 위해 인근에 있는 사우나 온천탕 비용을 내주시겠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숙소와 교회를 뒤로하고 곧바로 목사님과 함께 스타랙스에 올라타고 쌩~하고 달려갔다.

김포시내도 아닌 이 변두리 시골에 이렇게 크고 좋은 사우나 온천탕이 있다니 신기한 마음에 목사님께 여쭤보았다. 예전에는 관광 코스로 많은 여행객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더 좋은 곳들이 생겨서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시골구석에 이렇게 규모가 크고 좋은 곳도 있구나 하는 의외의 감탄을 하며, 아주 상쾌하고 기분 좋게 사우나 온천욕을 즐기고 나왔다.

 

 

 

다시로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정복 목사의 능동교회 이야기와 목회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었다.

세련되고 깔끔한 교회시설부터 시작된 우리의 첫 인상부터 지역아동센터와 이목사의 목회 철학, 그동안의 목회사역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의 농촌교회에 대한 생각들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또한 목사님과 사모님의 지역아동과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과 기도가 만들어낸 여러 결과물들을 보고 들으면서 목사님과 사모님의 포근하고 따뜻한 인상과 성품, 목회철학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밤 11시 반이 되었고, 농촌봉사의 첫째 날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으며 우리는 노곤한 몸을 방에 뉘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청년은 수줍게 웃었다. 이야기 하는 내내 눈빛은 반짝였다. 마지막에는 꽤나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데 다들 그 시간을 어떻게 겪어 내는지가 궁금하단다. 청년은 지금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온 두려움과 맞서고 있는 듯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청년들은 미지의 터널 앞에서 아마도 저런 고민을 하겠구나 싶어지니 이내 이해가 됐다.

 

스물여섯. 장로회 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과 4학년 이다빛 씨는 현재 교회 전도사다. 으레 신학대학교 학생들을 학부 때부터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수련과정을 거친다. 그런 그가 졸업을 앞두고 신학대학원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겠다는 거다.

 

“저는 저를 구원한 복음에 감사한 거지 직업으로서 목사가 되고 싶진 않아요.”

 

 

 

스물여섯, 자연을 닮아 살기로 하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도시에만 살던 이다빛 씨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훗날 경기도 광주 산속으로 이사해 집을 지었는데 황토로 벽을 바르고 너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다. 지금 그 집은 어머니가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단다.

 

“처음에는 어머니 생각을 듣기만 했어요. 근데 어느새 제 삶에 영향을 미쳤더라고요. 대학에 와서 깨달았어요. 제가 자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요.”

 

이다빛 씨는 졸업 후 경기도 여주에 있는 농업경영전문학교에 들어갈 생각이다. 전액 국비지원이 되는 것도 이유이고 앞으로 농사를 짓고 살고 싶은데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란다. 사람이 노동을 하는 것은 필수인데, 얼마나 땅에 가까운 노동을 할 것이냐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는 농사야 말로 삶에 근본적인 기쁨을 준다고 믿고 있었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에요. 남들보다 조금 더 삶의 자리를 자연으로 옮기고 싶은 거죠.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지만.”

 

환경에 대한 우려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의아하고 이상했다. 웰빙 바람이 한창 불었을 때도 그랬다. 정말 건강하게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사람들은 모르는 듯 했다고 이다빛씨는 말한다. 그는 전인격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농업에 종사한 사람이 없다 보니 여전히 걱정이다.

 

 

 

 

장학생으로 만난 우양과의 인연

 

목회자 자녀 장학생이 우양과의 처음 인연이었다. 장학금이야 뭐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는 정도로 이해될 만한데 이다빛 씨는 조금은 달랐다. 학교 공부를 너머에 있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단다. 그 중 하나가 우양의 농어촌 프로젝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골로 농활을 다녀왔다. 장학생이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나름 많은 의미를 건저 올린 듯 했다.

 

“올해는 더덕 밭에서 일을 돕고 왔어요. 더덕을 잘 캘 수 있게 밑 작업을 하는 건데요. 그 덕에 더 새까매졌어요.”

올해는 우양의 농어촌 교회 지원사업인 청년프로젝트 공모에 지원해 당선이 됐다. 이다빛 씨는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주팀을 꾸려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땅은 넓은데 상대적으로 인구가 퍼져있는 경기도 광주의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생각이다. 대부분 비전공자들로 구성된 꿈꾸는 땅 문화공연팀은 지역사회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고 싶다는 당찬 청년들로 구성되어있다.

 

장비는 드럼, 건반, 베이스가 전부다. 연주 실력도 한계는 있다. 각자 생계가 있다 보니 한번 모여 연습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번 프로젝트 당선으로 받은 지원금은 대부분 악기를 구입하는데 사용할 예정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다.

 

꿈꾸는 땅 문화공연팀은 로뎀여성폭력상담소 부설 사회적 기업이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이 기관은 성폭력 피해자 상담을 주로 하다가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역 복지관이나 시설에서 문화공연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찾아가는 문화공연은 그런 교육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해 마음을 여는 게 목적이다.

 

“문화나 정서적인 부분은 삶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청년의 고민은 끝이 없다. 그래서 청년이다.

 

사춘기시절 인간사이 갈등과 분쟁을 겪으면서 그 때 처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구나 싶었다. 외아들로 혼자 큰 것도 영향이 있었다.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랐다.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실은 괴리가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다빛 씨다. 그런 그의 장래희망은 ‘아빠’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되는’ 일이잖아 싶다가도 가장 기본이 되는 가족 안에서 보다 깊고, 진지한 관계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 공부를 안했어요. 그래도 고민은 있었죠. 중고등학교 내내 내성적이었어요. 뭔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현실에 적응하는 범위 내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재능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다빛 씨. 어쩌면 그 일을 이미 시작한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 젊은 사람이 농사지어서 어디 밥벌이나 하고 살겠냐는 모진 질문에도 한 줌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과 생계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고민도 놓치지 않는단다. 마냥 어리지만 않은 현실에 든든히 발 묶어놓고 있는 청년이다.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해 어떻게 살까하는 고민은 누군들 없겠냐마는 인생의 질문에 슬기롭게 질문에 대답해 가는 모습에서 오히려 희망을 본다.

 

‘지금은 연약해도 괜찮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