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고민이요? 왜 없겠어요? 그래도 어떤 직장에 어떤 조건으로 갈지 걱정하고 있지는 않아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고 믿고, 그곳이 어디인지 찾다보면 길을 발견할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동철민 씨(28세)는 어린 시절 축구선수를 꿈꿨던 평범한 코리아(!) 청년입니다. 2012년을 사는 평범한 청년들이 느낄만한 취업, 결혼, 꿈의 압박이 대단할만한데도, 그는 소탈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게다가 유창한 서울말까지. 또래보다 약간 작은 키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철민 씨가 북한출신이라는 걸 몰랐을 겁니다.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지 어느덧 8년.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고있는 듯 하지만 특별한 꿈을 가슴에 품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 축구선수의 꿈은 어렸을 때 접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날 인터뷰에서 제4회 우양배 통일축구대회 출전에 대해서는 기대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K1 : Korea is one

 

“북한에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였어요. 그래서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제가 그렇게 축구를 잘하는 편은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그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북한에서 내려온 또래 친구들과 축구클럽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팀 이름은 K1. Korea는 하나다(Korea is one)라는 뜻이랍니다. 평화로운 팀명처럼 축구장에서도 평화를 사랑한다는 이들. “경기에서 무조건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동료들과 즐기는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장에 들어서면 승부욕이 발동하더라고요. 사실은 그런 상황이 저희를 테스트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자신과의 싸움, 마인드컨트롤이 되는지 알아보는 거죠.”

 

“지금은 탈북출신 청년들이 모인 팀이지만 앞으로는 남북출신 상관없이 팀을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로 같이 가야하니까요” 이런 K1이 올 9월 15일에 제4회 우양배 통일축구대회에 출전합니다. 출사표의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부를 넘어 평화의 길

 

“제1회 우양배 통일축구대회 때 저희가 준우승을 차지했었는데, 모르셨죠? 그런데 그 이후로는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운 나쁘게도 강팀을 만나기도 했고요. 그런데요 성적이나 상금이 우리 팀의 목표는 아니에요. 대회의 의미는 따로 있죠. ‘소통’ ‘화해’ 그리고 ‘작은 통일’입니다.”

 

철민 씨는 탈북청년과 남한청년들을 한자리에 모은 축구대회에 남다른 기대를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배경을 지닌 친구들이 모여서 어울리는 것, 그것이 작은 통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축구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매년 축구대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얼마 전 있었던 대회 조 추첨에서 K1은 숭실대학교 축구동아리와 예선전에서 맞붙게 됐습니다. 예선전을 이긴다면 축구국가대표팀이 훈련하는 천연잔디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다보니, 팀들 사이에 묘한 긴장이 있을 법한데, 철민 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저희가 조 추첨 후에 숭실대 팀에 친선시합을 하자고 연락을 해서 조만간 함께 그라운드에서 뛸 거 같아요. 공식 시합 전에 말이에요. 사실 그동안 저희가 탈북출신 팀들하고 줄곧 경기를 했었거든요. 이번에 남한청년팀과 맞붙게 되었는데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전력노출 이런 게 문제겠어요? 자주만나서 부딪히고, 싸우기도 하고 그래야 친해지지 않겠습니까” 철민씨는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양배 통일축구대회에서 얻은 듯 보입니다.

 

 

화해를 만드는 자리에 서있고 싶다.

역시 축구는 철민 씨에게 취미이고, 소통의 도구일 뿐입니다. 철민 씨는 더 나아가,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고,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사회에 갈등이 많잖아요. 지역적으로 계층적으로요. 앞으로 통일이 되면 더 큰 갈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갈등의 중요한 해결점은, ‘사람’ 혹은 ‘사람의 마음’에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사이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에 제 미래를 걸어 보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이 정리된 다음부터 그는 주변의 갈등의 현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작게는 깨진 인간관계부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싸웠던 친구를 만나서 용서를 구한 게 첫 번째 시작이었어요. 그리고는 비슷한 경험이 있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제 경험을 나누어 주었죠. 축구하다가 생긴 갈등도 그런 식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어요.”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나중에는 커다란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준비과정이라고 철민 씨는 믿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

 

“한반도에서도 갈등 해소 과정은 분명 필요할거고요. 거기에 제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게 통일을 준비하는 거기도 하겠죠. 최근에는 북한에서 온지 며칠 안 된 친구들을 만났어요. 급격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충격을 받아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조언을 해주고도 싶어요.”

 

먼저 탈북한 선배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북한과 중국에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겪어 남한 생활을 자신만만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 즉 학업, 취업, 가정문제, 스트레스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에서 곱게 자란 친구들보다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건 착각이었어요. 각 사회 마다 다른 종류의 고통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심지어 한국청년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이 우리가 겪은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경험도 해보고,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나가서 부딪혀 보는 게 가장 큰 경험이죠. 그러면서 생기는 실수와 격차를 줄여나가는 게 인간과 사회 사이의 화해의 과정인거고요.”

 

10년 후 쯤엔 무엇을 할 거 같냐고 물었더니, 적어도 소형차 한 대는 몰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소박한 꿈이다 싶었는데 웬걸. “어디 내가 나설 데(갈등의 장소)가 없나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차가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저도 남들처럼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거에요. 그래서 십년 뒤에도 이십년 뒤에도 소형차 하나 끌고 다니며 갈등의 장소를 찾아다닐 겁니다. 한반도 이 땅에 분명 필요한 일이잖아요.”

 

누군가 짜놓은 틀에 갇혀 스펙과 연봉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는 불쌍한 이들 사이에서, 조금은 남다르고 미련한 청년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 특히 의미 있는 일에 젊음을 던지려는 동철민 씨같은 사람이라면, 유별나게 겁 없이 살아도 충분히 닮고싶은 청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