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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닮고싶은청년들 vol.7] 누구나 행복한 꿈이 필요해
  2. [닮고싶은청년들 vol.6] “봉사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3. [닮고싶은청년들 vol.5] 꿈을 크게 가진다고 돈 드는건 아니잖아요

오늘도 꿈을 향해 한걸음씩 걷는 성단비 씨 이야기

 

여기, 평범해 보이는 대학생이 있다. 인터뷰하는 시종일관 맑은 웃음을 보여준 성단비 씨의 얼굴에서는 어두운 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거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또래의 이십대가 경험하기 힘든 아픔과 좌절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의 꿈만 바라보며 달리는 닮고 싶은 청년이다. 당뇨병치료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왠지 그녀라면 불가능 할 것 같은 꿈이라도 현실로 이뤄낼 것 같다. ‘기대는 이런 청년에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사실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아요. 편입 전에는 학교 끝나자마자 4시간씩 고기 집에서 일하고 녹초가 돼도 틈나는 대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이 나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지난학기에는 주말에만 일을 하고 나름 열심히 했음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속상했죠,”

 

성적에 부담을 느낀 후, 할 수 없이 이번학기에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했다. 2011년도를 사는 대학생의 비애가 느껴졌다. 공부와 생활 둘 다 포기할 수 없어 쩔쩔매고 있는. 처음 대학을 선택할 때는 그저 점수에 맞춰 전문대학에 갔지만, 취업대신 학업을 연장한 건 꿈이 있어서다. 바로 당뇨병치료제 연구다. 고등학교 때 이후 바뀐 적 없는 분명한 목표다.

 

어차피 한번 사는 거잖아요. 밋밋하게 사는 건 싫었어요.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안정을 추구하고 안주하는 것도 싫었죠. 인생을 의미 있고 알차게 살고 싶다랄까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당뇨병 치료제 연구인데, 이걸 하려면 더 공부 많이 해야 되요. 사실 제가 공부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게 공부를 통해서 하는 거니까요. 대학원도 가야하고요

 

어려움을 딛고, 무심코 생각했던 바람

 

그녀가 당뇨병 정복이라는 남다른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그녀가 그 아픔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목표를 세우고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제가 고등학교 때 당뇨병이 생겼어요. 인슐린이 분비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생물책에서나 보던 병에 직접 걸렸으니까 많이 당황했겠죠.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까 하며 방황하고 그랬어요. 사실 그때쯤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제가 보육원생활을 했거든요. 보육원이라는 낯선 환경에 겨우 익숙해질 만하니까 그런 일이 터졌어요.”

 

그렇게 그는 환자가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는 만남도 생겼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성단비씨의 마음을 자극했다. 본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의 당뇨환자는 물론 갓난아이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 내가 나중에 이 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면 좋겠다. 또 그걸 개발해서 생긴 수익금으로 이런 친구들을 돕는다면…….”

 

이 시대 진정한 낙천주의자

 

돌아보면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죠. 저는 상황이 난처해지면 피하고 보거든요. 그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에 어떻게든 맞섭니다. 처음에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에 새로운 기회로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됐어요. 언제까지나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보육원에 맡겨지고, 당뇨병이 생기는 과정에서, 그는 세상의 큰 벽과 마주했다. 세상이 부정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려 애썼다. 세상을 향한 편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으로 기도를 하는 게 큰 의지가 되었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부모님 이혼은 오히려 싸우며 사시는 것보다는 잘된 거 같았어요. 보육원에 와서도 배운 것이 많았죠. 처음에 보육원에 폭력도 있고 지저분할 거 같았는데 실제 보육원 아이들이 엄청 밝고, 행복하게 지내는 거 에요. 저는 그 당시 제가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우울했는데요.”

 

많이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책값이나 급식비 때문에 주눅 들고 힘들었는데, 거기서는 정부지원도 많고, 제가 열심히 할 의지만 보이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는 본인의 당뇨병 역시 남들보다 건강을 잘 지킬 수 있는 기회라고 믿고 있다. 자기 몸을 과신하는 사람들보다 체계적으로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자신이 더 건강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주사 맞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란다. 당뇨병환자들은 주사를 자주 맞아야 하는데,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나눔은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간다

 

아동학습지도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아이의 이야기를 할 때는 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듯이 기쁜 표정이었다.

 

지난 학기 아동학습지를 시작했어요. 원주 시내의 보육원에서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를 가르치는데요. 뿌듯해요. 처음에는 숙제내주고 그러면 잘 안 해오고 그랬는데 매주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이러면서 친해졌고, 이번 기말 고사 때는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수학점수는 많이 올랐어요.”

 

성단비 씨는 우양재단의 사회 환원 프로젝트 경연에서 받은 상금을 해당 아동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주로 가르치는 학생의 책과 참고서, 간식 등을 구입했다. 그녀가 기쁜 것은 단지 조금 돈을 지원받아서가 아니다. 그의 봉사활동 모습을 본 주변인들의 삶이 변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회 환원은 마치 나비효과인거 같아요. 저도 어려운 시절 받았던 도움이 있고, 또 제가 누군가를 돕고, 제 도움을 받은 아이들도 언젠가는 또 자신의 역할을 할 거라고 믿었거든요. 실제로 제가 이런 일을 하니까 관심 있어 하는 친구들이 생겼다니까요. 실제로 하고 있는 애들도 있어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제가 생각했던 대로였어요. 점점 펼쳐져나가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이 발그레 해지는 그녀는 평범한 또래의 여대생이다. 한가지! 꿈을 향한 남다른 열정을 빼고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뭘 해도 난 안 돼에서 나는 뭐든 해낼 거다라는 간단하면서 본질적인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 성단비 씨. 그의 꿈과 나눔이 우리 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지켜봐야하겠다.

 

아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어요. 제 꿈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후원자분들을 통해 꿈에 한 발자국 가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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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에 푹 빠진 남자 안세훈 씨(즐거운 텃밭 자원봉사)

 

일주일에 한번 안세훈 씨(33세)는 농사꾼이 된다. 도시에서 자랐기에 밭일은 서투를 수밖에 없다. 매주 함께 밭을 일구는 어르신에게 지혜를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그는 사실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있는 고시생(수험생)이다. 밭을 매는 법조인은 얼핏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우양의 자원봉사자가 되었을까?

“봉사활동에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른 로스쿨 준비생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서 저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전에는 전혀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곳이 아닌 ‘즐거운 텃밭’에서 봉사하게 된 건 인연이 아닌가 생각해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자원봉사 이력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그와 우양재단의 만남은 조금 특별하다. 올 초 안세훈 씨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그를 길러 준 할머니가 올해 소천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준비하던 공부는 계속해야했다.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독거노인을 위한 텃밭작물을 재배하는 자원봉사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제게 할머니는 부모님보다 더 의미 있는 분이셨어요.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로 지내다가 텃밭작물을 재배하고, 그 작물을 독거노인에게 나눠준다는 일이 저한테는 다른 자원 활동보다 가치 있는 일로 다가왔어요, 그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돌보면서 노인문제, 특히 독거노인 문제를 알게 되었다는 안세훈 씨. 그는 본인의 할머니를 방문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뿐이지만, 그것을 바라본 주변의 다른 어르신들이 외로움에 괜히 화를 내시고, 욕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우양재단이 돌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는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자신의 또 다른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을까.

 

봉사의 기쁨이 뭔지 알기 때문에

안 씨는 지금 로스쿨과 변리사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법조인이 되고, 나아가 법학과 특허 등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이 시대 똑똑한 청년의 야무진 꿈이지만, 가슴에는 ‘사회환원’이라는 가치를 새긴 닮고 싶은 청년이기도 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더라도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단다. 최소한의 생계와 자식교육비를 제외하면 독거노인을 돕는 일에 재산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이전에는 저 살기에 급급했는데,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가진 것이 없는 분들이 오히려 더 자신의 것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더 시간을 내서 참여하고 싶습니다. 우양재단에서 어르신들께 쌀 배달을 하고 정서적인 만남도 가진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최근에 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시작했다.
“이제 처음 봉사를 해봤기 때문에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요. 봉사의 기쁨을 알았어요. 이제는 다른 활동들도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너무 큰일은 제가 감당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주위의 사람들과 미래의 자녀들에게는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모든 일은 정공법으로

“지금 로스쿨과 변리사시험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로스쿨이라는 진로는 이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새로운 길도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여자 친구도 생겼습니다.(웃음)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상황에 마주하고 견디려고 노력을 한 게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석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밝은 모습 뒤에 힘든 가족사가 있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견디고 나니 좋은 날이 오기 시작했다. 관계가 좋지 않던 친척과 관계가 회복이 되고, 새로운 진로에 대한 시각이 열렸고, 누군가를 돕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을 함께 설계할 파트너도 만났다. 

“전에 직장생활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가정을 지키면서 도란도란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건 꿈도 못 꾸지요. 이제는 가족들과 주변을 돌아보며 살고 싶어요. 만약에 교수가 된다면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도 얻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봉사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게 저에게 더 큰 메리트에요.”

 

온통 책과 글로만 둘러쌓여 지낼 것만 같은, 공부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한 고시생의 속내는 이렇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많다면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해지지 않을까요? 

 

 

 

“꿈을 크게 가진다고 돈 드는 거 아니잖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대회만 나가면 번번이 1회전 탈락인거예요. 근데 그때도 제 꿈은 세계랭킹 1위였죠.”

 

김재철(24세)씨는 꿈꾸는 사람이다. 당장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으로 자신을 격려한다. 이런 그에게 좌절과 절망의 시간은 없었겠는가!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창문 밖에서 운동하는 형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구로 운동에 입문해 중학교 때 테니스로 전향하고 하루 5세트(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로 운동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매번 대회 때마다 좌절을 맛봐야 했다. 대회가 끝나고 울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란다. 그러던 중 고3때 전국대회에서 처음으로 1등을 했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힘든 겨울을 나며 수없이 되뇌었을 말이기도 하고, 성적이 부진한 본인을 다독이며 했을 법한 이 말이 결국 실제화 된 순간이다.

사실 그는 매번 바닥을 쳤다고 했다. 근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좌절인지 몰랐다. 운동이라는 끈이 그를 이끌어 줬던 모양이다. 고3. 인생을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운동에서 공부로 진로를 바꾸고 중앙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와서 처음 받았던 학점이 3.11 이었어요.” 영어, 한국사, 일본어 아무것도 몰랐던 그 때도 늘 앞자리에 앉았다. 교수님과 눈을 맞추다 졸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학. 석사 통합과정으로 7학기에 조기 졸업하고 스포츠 마케팅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지금에는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해도 끄떡없단다. 이게 다 운동할 때 쌓아둔 체력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근로 장학생을 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꼬박 3년이다. 학과사무실, 학생지원처 행정실에서 시급 4,500원 받으며 일했다.

한 달 40시간 근로. 다 해봐야 16만원 정도였다. 등록금, 기숙사비, 생활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교외에서 알바 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최대한 교내에서 일을 하려고 했다. 후에 우양재단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제 인생에는 플랜B가 없어요.” 플랜 A에 온 힘을 다하기 위함이란다. 혹시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 될 때가 있다. 근데 그 때도 다른 길이 있더란다. 스물네 살 청년 치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김재철씨는 교수가 될지, 스포츠 마케터가 될지 계속 고민하는 청년이다. 특별히 이거다 정한 거는 없다. 더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더 경험해야 할 것도 많다. 그냥 이 순간에 최선을 노력을 할 뿐이다.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창은 또래 스물 넷 청년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인도 캘커타 ‘죽음으로 가는 집’에 간다. 혹자는 거기는 죽음으로 가는 집이 아니라 삶으로 가는 집이라 하는데, 지금은 “왜?” 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결국 가보면 알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내년 1월. 한 달간의 남인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여행의 색깔을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간단하면서 심오하다. “제 여행은 두 가지 색이예요. 검은색. 다른 하나는 무지개색 이예요.” 신체 건강한 젊은 남자지만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것도 혼자 가는 여행에 대한 설렘 이상의 긴장으로 처음 연상됐던 색은 검은색이었다. 근데 이내 황홀한 무지개색이 연상된단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이지만 본인에겐 왠지 희망이 될 거란다.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그는 지금 육군사관학교 교수사관장교를 준비하고 있다. 선발되면 3년간 사관생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 있다. 미래 꿈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한 플랜 A다. 지원자격도 까다로운데 인원도 딱 1명 뽑는단다. 떨어질 것에 대한 생각은 미리하지 않는단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 없잖아요.”

 

김재철씨가 근무하는 교수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지 1시간이 훌쩍 흘렀다. 학교를 빠져나와 근처 삼겹살 가게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고기는 지글지글 익어가고, 여기저기 왁자지껄 소란하다.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그저 만나고 헤어지기만 한다면 그건 ‘함께’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인생을 나누고 즐거워해야만 ‘함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기 한 점 먹었다 생각했는데 결국 인생 한 점 ‘함께’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맑아졌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허락한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김재철씨는 일주일에 딱 2시간 이지만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친다. 직선으로 뛴 다음 지그재그로 뛰는 프로그램을 지도하면 제대로 인지가 안 되는 아이들은 그저 자기 마음대로 뛴다고 했다. 비록 본인의 교수법대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면서 많은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통해 본인이 행복을 느끼는 것.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보면 어느덧 부쩍 성장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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