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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 우양재단 성지순례 답사기 -이스라엘편-
  2. 2012 우양 성지순례 답사기 -이집트편-
  3. 농어촌 목회자, 예수님 사역 현장으로 떠나다

이스라엘

광야를 지나 12시간 걸려 닿은 곳은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국경입니다. 손님이니 금방 들여 보내주면 좋으련만 3시간을 입국심사, 짐 검사 등으로 허비해 좀 안타깝네요. 성막 모형을 보려 밤새 달려왔으나 결국 현지 사정으로 못보고 다시 차에 올라 여리고 지역의 숙소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늦은 밤 식사도 하고 씻으니 잠이 달기만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첫 날 정의승 장로님과 유정자 권사님이 제가 탄 3호차에 동승하시고 출발 기도를 드리십니다. “하나님 맑은 날 주셔서 감사하고 예수님 족적을 따라 순례하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어려운 여정 잘 이겨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인자하신 장로님의 기도에 눈물이 맺힙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요. 기도에 힘입어 우리 일행은 예루살렘과 겟세마네 언덕 등을 순례합니다. 먼저 감람(올리브나무)산에 오르니 골짜기 너머 예루살렘이 훤하게 보이네요. 솔로몬 왕궁, 다윗성, 예루살렘 성전 등이 보이고 수많은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슬람 황금돔 사원과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계곡 주변은 셀 수 없는 공동 무덤이 있는데 메시야가 오면 다시 살아 날 것을 기대하며 조성된 것이랍니다.

감람산 언덕의 예수님승천 기념교회를 거쳐 주기도문을 알려 주셨던 주기도문교회에 가니 벽면에 한글로 쓰인 주기도문이 키보다 크게 있어 반갑습니다.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중턱에 눈물교회가 있는데 예루살렘의 붕괴를 예언하시고 예수님께서 눈물 흘리심을 기념하는 성전입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처형이 더 고통스러우실 텐데 어리석은 백성과 예루살렘을 염려하시는 마음을 그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제 더 내려오면 전 세계에서 모인 헌금으로 세운 만국교회가 있습니다. 겟세마네교회라고도 하는데요. 이곳은 감람나무(올리브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올리브기름을 짜듯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드리신 겟세마네 언덕에 세운 것이지요. 그리고 기드론 계곡 너머 반대편으로 올라 스데반 순교교회를 지나 베데스다 연못에 도착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물에 넣어 줄 사람을 기다렸으나 예수님은 바로 병을 고쳐 주셨듯이 질병과 문제를 주님께 바로 아뢰어야겠지요. 1,140년에 세워진 바로 옆의 안네교회에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찬송을 함께 부르니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드디어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며 오르신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14처소입니다. 지금은 골목 시장 풍경이지만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찬송과 묵상하며 오릅니다.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오르시면서 조롱과 외면 받으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이 어수선한 길이 꼭 최첨단 과학 문명을 향유하기를 갈망하나 주님과의 교제는 대충하고 있는 제 모습처럼 다가옵니다. 이제 예수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성묘 교회 지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마지막 성만찬 드신 마가의 다락방을 지나 다윗왕을 기념하는 가묘를 지나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고 뒤 늦게 운 것을 기념하는 베드로 통곡교회를 보고 베들레헴으로 이동하여 아기 예수 탄생 기념 교회를 둘러봅니다. 정신없이 쫒아 다니기 바쁜 여정인데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다시 여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해 체험을 하며 잠시 쉽니다. 저는 몸살 기운이 있어 짐만 지켰으나 갈라진 발바닥이 좋아진 분도 있고요. 정의승 장로님은 “저희 칠순에 호강합니다.”하며 어린아이 웃음을 보이시고요. 유정자 권사님은 뒤로 누웠다가 못 일어나 고생하고서 한참을 웃었다고 수줍어하시네요.

 

이스라엘 둘째날

이스라엘에서 둘째 날 아침입니다. 주일이라 6시 기상하고 6시 30분 예배를 드립니다. 복된교회 강대선 목사님의 사회로 시작하여 여성 목사님 네 분의 특송과 구수동교회 오창희 목사님의 “위대한 사람” 마 3:1-12 설교에 이어 헌금을 드립니다. 은퇴를 3년 남겨두신 오창희 목사님이 3번 박수를 치자고 제안하시네요. 하나님께, 이사장님 내외분께, 그리고 각자 섬기는 교회와 가족 위해서 말이죠. 모두들 감격스러워 갈채가 끊어질 줄 모릅니다. 감격의 예배를 드린 후 이사장님이 잠시 얘기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10여년 기도 제목 이루어져 감사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니 하나님께 감사하시면 됩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농어촌이 살아야 합니다. ”도시로 간 청년들이 다시 돌아 올 때가 있을 것이니 사명과 긍지로 시골을 지켜 주세요!” 라고 하시니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옵니다.

 

이제 성경 사본이 발견된 쿰란동굴에 가니 신실하게 성경을 옮겨 적으며 사본을 남긴 열정이 참으로 고귀하게 다가옵니다. 일행은 이동하여 사마리아 여인숙으로 향합니다.

이스라엘 안내자 목사님이 귀한 얘기를 하십니다. “이 땅의 양은 광야에서 뒹구니까 한국의 양처럼 깨끗하지 않고 지저분합니다. 아직도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5월에 양으로 제사를 지내고요. 통에 가두고 창으로 찔러 잡는데 아무런 소리조차 없어요. 우리 죄 용서하려 순한 양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양들은 짐승의 위협과 비탈지고 물이 필요한 광야에서 목자 없이 살 수 없듯이 우리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임을 이 땅의 양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너무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왕이 앗수르의 침략을 대비하여 뚫은 지하 동굴을 지나니 마치 제3땅굴을 연상케 하네요. 그 옛날 533m를 뚫어 만들었다는 것이 참 놀랍기만 합니다. 이곳은 솔로몬 왕이 기름부음 받은 기혼샘으로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우를 고치신 실로암 못으로 흐르네요.

고고학 박물관에서 여러 유물을 관람합니다. 그 가운데 아데미 여신상이 충격을 주네요. 상반신에 유방이 수십 개나 되는 큰 조각품인데요. 그리고 드라빔 같은 우상과 송아지 우상도 아기 주먹이나 어른 손 만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유목민이다 보니 늘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한 것이지요. 온전하게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둘 다 섬기던 어리석은 삶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600만 학살을 추모 하는 야드밧샘 박물관에서는 일본의 만행이 떠올라 더 깊게 다가오네요. 그런데 좀 안타까운 것은 이 참혹한 일이 예수님을 죽인 민족을 벌하자며 진행된 것이랍니다. 십자군 원정처럼 심판과 징벌로만 다가가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충만한 신앙이어야겠지요. 또 관심을 끄는 것은 개관시 세계 각국 관료는 초대하였으나 일본인은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서 만행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이스라엘 셋째날

이제 세 번째 날입니다. 여리고에 있는 엘리사의 샘은 그의 첫 기적을 기념하는 곳인데요. 자연은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물이 설익은 채로 떨어지므로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샘에 소금을 넣어 고친 곳이고요.(왕하 2:15-22)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물이 나쁘면 생명이 자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샘물을 허락하셔서 생명이 자라게 하셨네요. 풍요로운 생활 같지만 메마른 영혼으로 살아가는 제게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삭개오 뽕나무 앞에서는 동영상 촬영기를 어깨에 메고 저를 조준하고서 동행한 기독교방송국 기자가 묻습니다.

“목사님 삭개오 뽕나무를 보시니까 어떠세요?”

“아,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오른 삭개오를 보니... (옆에서 여러 사람이 훈수를 두니 정신이 없어 순간 몽롱해지다) 아, 못하겠어요.”

“아 목사님 잘 하신 거예요. 짧게 느끼신 거 한 말씀 해 주세요.”

(다시 크게 심호흡 한 후)

“예수님이 보고 싶어 뽕나무에 올라 목동처럼 숨어 보는 삭개오를 보며 주님께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부끄러운 제 모습을 봅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환경과 현실에 좌절하고 때론 게으르던 모습을 회개하고 불가능을 넘어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가까스로 촬영을 마쳤습니다.

이제 시험산에 이르니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잘 이겨내신 모습이 그려지고요. 그리고 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지중해 항구도시에 닿으니 헤롯왕이 만든 가이사랴입니다. 로마 원형 극장은 지금도 공연을 한다하니 놀라운 일이지요. 그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은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2년간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전하고 심지어 바다 건너 로마로 가면 죽는 줄 알면서도 십자가 지고 나아간 것입니다. 무너진 성터에서 바다 내음에 실려 바울의 숨결이 뜨겁게 전해져 오니 눈물짓네요. 그리고 20km 떨어진 갈멜산에서 이곳까지 수로를 만들었는데 고작 6cm의 낙차를 이용했다 하니 대단하지요. 다음은 갈멜산입니다. 바로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 영적 대결을 벌인 장소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니 거짓 선지자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곳인데요. 과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과감히 불살라야겠어요. 그리고 므깃도로 향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때에 전쟁이 일어날 아마겟돈으로 예언된 곳이지요. 성터 유적지를 보니 수차례 침입과 수탈을 경험했을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제 마리아 수태고지 기념교회와 바로 곁 요셉기념교회와 가나 혼인잔치기념교회를 둘러보고요. 고등학생 키 만한 돌 항아리를 보고 순종한 하인들의 믿음을 배우네요. 당시 돌 항아리는 물을 채웠다가 손님들이 오면 손발 닦도록 쓰였고 이미 혼인 잔치 중이니 더 이상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울 필요가 없음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랍니다. 잔치 음식 나르고 분주 했을테니 더더욱 예수님의 말씀이 황당했겠지요.

저녁에 되며 갈릴리 바다에 모든 일행이 목선에 올라 기도회를 합니다. 둘 셋 짝기도를 합니다. 저는 처음 뵙는 벌천교회 김남섭 목사님과 가산교회 김영권 목사님과 기도드립니다. 처음이지만 같은 농어촌을 섬기니 손만 잡아도 통하네요. 기도 제목 나누며 감격스러워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감사와 회개 그리고 어우러짐의 기도로 뜨거운 눈물을 줄줄 쏟고요. 함께 투숙하며 보살핌 받은 성태리교회 임현만 목사님을 위해서도 기도드리고요.

 

이스라엘 마지막 날

이제 이스라엘에서 마지막 날이네요. 예수님께서 팔복을 선포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팔복교회에 들어서니 제비 떼가 반기네요. 갈릴리 지역엔 유난히 제비가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살기 힘들어 둥지 틀었나 싶습니다. 다시 제비가 돌아오면 좋겠어요. 덩달아 진실로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영혼이고 싶은 순례길이네요. 그리고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텔 단”에 이르러 보니 유적 터가 우상 숭배지라서 안타깝습니다.

이제 베드로 신앙 고백의 장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한 마음을 묵상해 봅니다. 북쪽 국경 헐몬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시원하게 콸뢀콸 흐르는데, 바이아스 폭포수가 수십 미터 쏟아지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시작을 알리고요. 이제 가버나움에 이르니 베드로 집터 위에 세운 기념교회와 당시 회당 터를 보고 오병이어 기념교회와 베드로 수위권교회를 봅니다. 이 교회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용서와 화해와 회복의 장소인데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배신하고 낙망한 제자들이 다시 본래 자리인 어부로 돌아간 곳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찾아 오셔서 밤새 헛 그물 켠 제자들을 지켜보시고 오른편으로 던져 들 수 없을 정도의 물고기를 잡게 하시지요. 또한 숯불을 피우시고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물으시며 용서와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봅니다. 숯불 앞에서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를 위해 친히 숯불을 피우는 수고를 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그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숯불 만들려면 인내와 땀과 시간이 필요한데 목회도 신앙도 숯불 피우는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겠지요. 이제 요단강 세례 터에서 각국 순례객들의 거룩한 세례 예식을 보고요.

이스라엘에서 저를 반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들에 핀 백합화입니다. 마치 양귀비 같기도 하고 제비꽃이나 금낭화처럼 하늘거린답니다. 아도니스와 아네모네와 양귀비가 들의 백합화로 불리우는데요.1) 아기 손 만한 빨간 꽃으로 헤아릴 수 없이 수놓은 초록 들판은 어린양과 사자가 뒹구는 동산 같거든요. 게다가 사순절기 때문인지 십자가에서 쏟으신 예수님의 보혈처럼 느껴지고요.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옷보다 백합화가 더 귀하다고 하시며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 하시지요. 하나님이 다 먹고 마시고 입히시니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며 말이죠. 천지만물의 아버지시니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우리는 하물며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살피실까요? 이제 신앙의 수준을 높여야겠어요.

1) 정정숙, 「정정숙 전도사의 성서식물」(서울:크리스챤뮤지엄,2007)79-86

 

글_삼례은혜교회 장운 목사/ 사진_우양재단

2012 우양 성지순례 답사기

드디어 성지순례를 가는 날입니다. 12박13일 일정으로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이집트, 이스라일, 요르단 성지를 향해 나아가네요. 3월 11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인천공항에 21시에 집결합니다. 모이고 보니 농어촌 미자립 교회 목회자 90여명과 CBS기독교방송국 기자 이신승규님, 천지항공여행사 오세만 차장님, 우양재단 손삼열 과장님, 박이근정 대리님, 장완영 주임님 및 이사장 정의승 장로님 유정자 권사님 내외까지 100여명의 대식구가 순례를 나서는 길입니다. 섬기는 우양재단의 손길이 분주하고 그에 맞춰 농어촌 목회자 순례객들의 들뜬 표정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네요.

우양재단은 1983년 학산 장학회로 발족하여 중고생,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아름다운 섬김과 나눔으로 그늘진 곳에 희망과 빛이 되고 있습니다. 농어촌 미자립 100교회 후원, 새터민 지원, 중고생 및 대학생 장학금 지원, 배고픈 이웃에게 먹을거리 드리기, 무의탁 노인 보살피기, 옥상 텃밭 가꾸기로 온난화 늦추기 등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하는 재단이랍니다. 배추 200포기를 심을 화분이 있다 하니 텃밭보다 규모가 크지요? 그야말로 기도와 땀으로 나누고 섬기며 하나님 나라 일구는 분들과 순례 길에 나서는 겁니다. 저희는 삼례은혜교회는 지난 여름 부터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농어촌 사모 자기개발 프로젝트로 10여 곳 후원하는데 선정되어 아내가 꿈꾸던 재봉틀을 구입했습니다. 내복이나 어린이옷을 만들어 입고 있으니 너무 감사하지요. 참 설.추석.성탄이면 커다란 선물 상자를 격려 편지와 함께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시골 목회 10년차에 이렇게 귀한 섬김을 받으니 몸둘 바 모를 지경이랍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우양재단에서 수 십 년 기도드리며 처음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지난 해 봄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집트, 무바락 독재자에 대한 국민혁명(재스민 혁명)으로 연기되었다가 올 해 나서는 길입니다. 그러니 저는 못갈 상황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상상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성지순례를 허락하시네요.

이제 카타르 항공에 오르고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자 온 힘 다해 내달려 솟구칩니다. 그리고 12시간 날아가 도하에 착륙하여 잠시 대기하다 사륜 구동차에 5명씩 승차합니다. 사막 사파리 관광을 하는 겁니다. 보통 경유지에서는 대여섯 시간 이상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데, 우양재단에서 신나는 세계로 인도합니다. 먼저 사막 입구로 가 바퀴 바람을 약간 빼 모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다시 사막을 향해 달립니다. 모래 언덕 구릉지를 차로 거침없이 누비는 것 입니다. 한참을 가다 비탈길을 만나 잠시 멈칫하네요. ‘피해가겠지!’ 싶었으나 아니 웬걸? 60도 이상의 경사지를 내달립니다. 함께 탄 목사님들은 소리지리고 ‘주여’ 찾으며 난리 납니다. 뒤집어 질 것 같은데 아슬아슬 묘기행진이 계속 이어집니다. 높이 100m 가 넘는 언덕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가다니요. 마지막 저희 차량 기사는 아예 후진으로 내려가니 오장육부가 뒤틀려 혼이 납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다시 도하로 가 이집트 카이로 행 비행기에 올라 두어 시간 이동합니다.

 

 

내려 짐 찾고 대형버스 3대에 나눠 탄 후 카이로 기차역으로 가 룩소행 야간열차를 탑니다. 이집트 교통 체증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간신히 도착한 카이로 역에서 열차에 올라탑니다. 730km 떨어진 남녘으로 12시간 밤새 달려 고대도시 룩소에 도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종살이 하던 애굽을 둘러보는 것이지요. 카르낙 신전, 왕들의 계곡, 멤논의 거상, 하셉슈트의 장제전 등 당시 거대한 무덤과 유적을 보니 예술 정신과 열정은 대단하나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생의 끝이 참 가여워 더 정신 차려야겠다 싶은 맘이 듭니다.

 

2명씩 마차에 올라 1시간 고대도시를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숙소에서 씻고 3시간 30분 쉰 후 다시 밤기차에 올라 12시간 달려 카이로에 도착합니다. 첫 날은 덜컹이는 기차가 낯설어 수차례 깨곤 했는데 둘째 날은 두어 차례 깨니 감사한 순례길입니다. 카이로 기자역에 도착한 일행은 이내 버스로 환승하고 ‘알렉산드리아’ 지중해 항구 도시로 3시간 30분 달려갑니다. 성경교사 아볼로의 고향이며 사도바울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으로 주후 1세기 백 만권의 도서를 갖추었던 세계 최대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또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최초로 번역한 70인 역이 만들어진 유서 깊은 곳입니다. 마가의 첫 복음 선포지역이기도 한 이곳은 마가의 순교를 기억하여 기념교회가 세워진 지역입니다. 도서관이 전쟁으로 5차례나 파괴되었으나 2002년 유네스코와 여러 나라의 후원으로 멋진 도서관이 ‘바다에 뜨는 태양’이라는 모습으로 예쁘게 세워졌어요. 세계 각국의 글이 벽면에 새겨져 있고 한글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글귀가 자음 모음으로 소개 되어 반갑기도 하네요.

 

일행은 다시 카이로에 돌아와 드디어 첫 숙박을 합니다. 다음날엔 카이로 이곳저곳을 돌아봤습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 현대과학으로도 쉽게 만들 수 없는 건축물에 압도되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 왕들은 소박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한옥과 고궁을 전수해준 선조들이 고마워지는 순간입니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수 천 년 전 무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신으로 환생하여 영원불멸을 꿈꾸던 수고가 헛된 것임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영생이 있음을 모르는 영혼들이 안타까워 불쌍합니다.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에도 교회가 있습니다. 요셉이 아기 예수님과 피난 생활한 동굴 위에 지어져 있고 이집트 초대교회 비밀 회합 장소이기도 한 예수피난교회에 가보니 12기둥 가운데 다듬지 않은 가룟 유다 기둥이 초라하게 남아 그 날을 기억하게 합니다.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드린 곳이라는 모세기념회당도 둘러보네요. 그리고 쓰레기 마을 교회로 알려진 목가탐 언덕 동굴교회를 향합니다. 이곳은 1960년 이후 도시로 상경한 빈민들이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며 생겨난 달동네인데요. 족히 4km 정도 이르는 산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주변은 온통 쓰레기와 먼지투성이요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네요. 그나마 최근 돼지 사육을 금하여 악취가 줄었다는 데도 힘든 순례길입니다. 더욱이 좁은 도로에 다양한 화물차와 나귀 마차가 수시로 오가니 한 줄로 조심조심 걷습니다. 그래도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웃으며 맞아주네요. 저 갔으면 벌써 뛰쳐 도망갔을 것 같아요. 드디어 동굴교회 정문에 이르니 수 백여 미터 절벽에 성화들이 조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그렸을까? 어떻게 조각했지? 궁금하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산골 달동네에 이처럼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예배드리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싶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대성전에 들어가는 길은 50여 미터 동굴을 지나네요. 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원형극장 형태에 놀라고 천장 없이 그냥 비스듬한 절벽으로 40% 정도 좌석을 가린 것에 또 놀랍니다. 건조기후라지만 비가 오나 눈이오나 신실하게 예배드리는 목가탐 언덕 신앙인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더욱이 이 땅의 기독교인은 태어나면서 십자가 문신까지 하고 1년 가운데 무려 245일을 한 끼 이상 금식한다고 합니다. 광야의 영성이 대단하지요? 어려움 중에도 올곧게 신앙 지키는 1%의 기독교인이 자랑스럽습니다. 기도드리며, 성전을 오르내리며 눈물이 앞을 가리고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환경을 탓하고 게으르며 때론 포기하던 저를 돌아봅니다. 성도 적은 시골교회를 섬기며 시뻘건 녹물이 나온다고, 75mm 얇은 조립식 건물에서 여름과 겨울나기가 조금 힘들다고 불평 했던 제가 너무 죄송하여 회개하는 순간입니다.

 

 

버려라!

 

와보라! 와보라!

쓰레기 마을 악취

흙먼지 진동하네

 

버려라! 버려라!

온갖 잡다한 것들

분리수거 하리니

 

코 막지마라! 코 막지마라!

최첨단 과학문명 누림으로

나온 배설물 아닌가?

 

꽃보라! 꽃보라!

이 더러운 곳에 살아도

해맑은 웃음 꽃 피우니

 

포기마라! 포기마라!

박해의 자리 지저분한 곳에도

고귀한 신앙의 꽃 피우니

 

 

이제 0시에 출발하여 밤새 달려 시내반도를 지나 이스라엘로 갑니다. 산도 들도 언덕도 온통 새빨간 땅 광야입니다. 우리나라는 온통 푸른데 반해 나무를 찾아보기 힘드니 참 낯선 풍경이지요. 간혹 아이 키 만한 싯딤나무와 로뎀나무가 서 있고 듬성듬성 풀이 보이긴 하나 척박한 땅이네요. 이런 땅에서도 군데군데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윈족의 집들을 보니 서 너평 작은 집에 갈대로 엮은 지붕을 하고 있어요. 풀을 따라 때를 따라 옮겨 다니려면 짐이 적어야겠지요. 그러고 보면 언제 주님 다시 오실지 모르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데 집에 쌓아 놓은 것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는 저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글_삼례은혜교회 장운 목사/ 사진_우양재단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 예수님 사역의 현장으로 떠나다

 

농어촌 교회 목사들의 특별한 순례가 아닌 일상인 삶으로의 부르심

농어촌 목회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님들, 각자 부르심의 시간도 장소도 달랐지만 농어촌을 사랑하고 그곳이 부르심의 장소라고 믿는 목사님 91명이 기원전의 세계로, 예수님 사역의 현장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런 여행을 성지순례라고 하지만 이 여행은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행이 시작되고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니 그것이 더 확연히 깨달아졌습니다. 이 여행은 어떤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일상에서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온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은 한국과 중동이라는 지리적 차이를 넘어서 우리들의 가슴 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고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이름 하나 하나 낯설지 않고 가는 곳 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많이 얘기 하고 늘 설교하던 바로 그곳에 온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여행임을.

11박 13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일상으로의 여행’은 이집트의 고대 도시 룩소에서 시작되어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카이로를 지나 예수의 땅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지역과 갈릴리 지역을 순례하고 요르단으로 건너가 모세의 최후 족적이 남겨진 느보산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집트 : 고대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

이집트는 고대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나라 전체가 유적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입니다. 처음 방문한 도시 룩소의 카르낙 신전, 맴논의 거상 거대한 룩소 신전들을 보고 있자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광주 보여교회 김정원 목사는 “이들이 비록 하나님을 알진 않았지만, 이들의 믿음을 볼 때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다시한번 느껴요. 하나님은 우주적인 분이 확실해요.” 라는 말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카이로에서 차로 3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마가기념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12제자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이집트 기독교인인 콥틱교인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가 기념교회에서는 때마침 예배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잠시 묵상하며 예배를 참관하기도 했습니다.

 

아기예수 피난교회, 벤에즈라회당

인구 2,200만의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교통 신호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통이 아주 혼잡합니다. 언제 어디서 차가 막힐지 몰라 시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100여 명의 목사님은 카이로 시내 이곳저곳을 누빕니다. 올드 카이로 지역에 아기예수 피난교회를 방문하고, 모세기념교회인 벤에즈라 회당에도 들렸습니다. 목카탐 동굴교회에서는 현존하는 이집트 콥틱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집트는 역시 피라미드의 나라입니다. 책이나 TV에서만 봤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불가능이 현실로 내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에 넉넉했습니다. 때론 엽서나 관광 상품을 파는 집요한 이집션들 때문에 불쾌할 만도 하지만 기분 좋게 1불을 내며 이집션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목사님들을 자주 마주 치면서 사랑 나누기를 생활로 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 40년 광야 길을 하룻길 만에 예수님의 땅으로

바쁘게 이집트 일정을 소화한 목사님들이 이제 고센 땅을 떠나 ‘출애굽’ 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육로를 통해 이스라엘 국경까지는 12시간이 꼬박 걸립니다. 시나이 반도를 둘러 가는 길입니다. 물론 더 빨리 질러가는 길도 있지만 이집트 현지 치안이 불안한 관계로 경찰이 지정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안전 문제로 시내산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았던 황량한 산을 가까이 바라보며 시나이 반도 남단을 우회하며 종일 달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에 걸쳐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우리 순례 일정은 그저 하룻길입니다. 창 밖에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 길은 고된 여정을 말해주지만 그래도 기대가 됩니다. 목사님들은 광야를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 하면서 한편 저마다 예수의 고향에서 예수의 흔적을 찾는다는 사실에 흥분되나 봅니다. 그 현장에서 예수의 흙 묻고 굳은살 박힌 발을 마주한다면 심정이 어떨까요?

 

광야로 부르심 ; 미드바르(말씀으로부터)

타바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서 처음 마주한 건 역시 광야였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를 보고 있자니 세례요한이 떠오르고 예수님의 광야 시험사건도 떠오릅니다. 이스라엘 말로 광야는 ‘미드바르’입니다. 해석하면 ‘말씀으로부터’ 입니다. 인생에서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곧잘 삶이 ‘광야’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 뜻을 이제 알고 나니 인생의 어려운 순간 우리를 말씀으로 돌아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승천교회, 주기도문이 각국의 언어로 쓰여 있는 주기도문교회, 겟세마네 만국교회,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던 베데스다 연못,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마지막 성만찬을 나누셨던 마가의 다락방, 첨탑에 닭이 인상적인 베드로통곡교회, 예수님 출생지인 예수탄생 기념교회, 예수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성묘교회 등 성경의 사건이 기록된 이곳저곳을 빼먹지 않고 꼼꼼히 순례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그 곳에 해당하는 성경 말씀을 읽으며 묵상을 했습니다. 모두 해발 780m에 위치한 예루살렘에 있는 순례처들입니다. 약간 쌀쌀한 날씨지만 각국에서 모인 순례객들이 만원을 이뤄 저마다 예수의 흔적들을 따라 다닙니다. 가장 감격적인 순례 장소는 역시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이었습니다. 100여 명의 목사님과 일행들은 14개의 처소를 찬송을 부르며 숙연하게 걸었습니다. 우리일행이 이루는 장사진의 광경이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아수르의 침략에 대비해 뚫었던 히스기야 터널은 성인 남자 한 사람이 걷기에도 비좁은 캄캄한 공간입니다. 물은 종아리까지 찹니다. 일렬로 줄지은 목사님들은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 실로암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성경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역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1947년 5월 어느 봄날. 한 베두인 소년이 찾아낸 동굴 안 항아리 속의 두루마리는 오늘날 구약성경의 권위를 확실히 하는 너무나 소중한 필사본입니다. 성경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쿰란 공동체의 삶을 보니 가슴이 짠해 옵니다. 100여명의 목사님들은 사해사본에서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구약인 에스더서를 혹시나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장난기 어린 맘에 에스더서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안식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는 안식일입니다. 히브리어로 ‘샤밧’이리고 부르는데 이때 이스라엘의 학교, 관공서,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고 그야말로 안식합니다. 길거리에 차는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일행이 이스라엘에 도착한 날이 바로 그 샤밧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었습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적잖이 놀라기도 하고 긴장도 됩니다. 이스라엘 처음 여장을 푼 곳은 바로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다섯 개 중에 하나인 여리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강도 만난 자를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방문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저마다 성경의 비유를 떠올리며 이곳저곳을 면밀히 살핍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합리적인 사고에 젖어 본질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곳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에서 다시 한번 물으십니다.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온갖 수탈과 유린을 경험했던 우리는 600만 명의 유태인 학살을 추모하는 야드바솀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거울삼아 우리 민족의 어두웠던 역사를 회상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평화에 새삼 감사했고, 북한도 속히 이런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선지자 450명과 영적 대결을 벌였던 갈멜산과 요한계시록에 종말에 전쟁이 일어날 곳이라고 예언된 므깃도를 순례하고 곧 이어 갈릴리로 올라갑니다. 바로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빈민촌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평야가 펼쳐지는 도시입니다. 목사님들은 벌써부터 신난 기색이 역력합니다. 농어촌 시골교회,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가고 늙은 어르신들이 전부지만 그분들께 갈릴리에서 나온 대추야자를 선물로 드리려는 생각에섭니다. 잠시 교회를 떠나왔지만 맘속에는 계속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성도들 생각뿐입니다. 마리아 수태고지 기념교회, 요셉 기념 교회,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가이샤라 빌립보, 요단강 세례터, 팔복교회, 오병이어 기념교회 등의 순례지는 마치 우리가 잘 알고 늘 출입하는 곳처럼 우리들에게 친근미를 주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는 그야말로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 하셨던 그 회복의 주님께서 우리 일행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것은 실의에 빠져 사명을 잃고 있는 제자들을 다시 ‘삶’으로 그리고 ‘사명으로 초대하시는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어부 베드로‘를 ’사도 베드로‘로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부르심의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우리 일행은 모두 한척의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찬양하고 기도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회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회복 되어야 할 짐을 지고 있습니다. 잔잔한 갈릴리 바다 선상에서 목사님들이 흐느끼듯 한 목소리로 부르는 찬송과 기도는 주님께서 목사님들의 어깨를 어루만지시며 ’아무 염려 말고 내양을 먹이라.‘ 하는 회복의 메시지로 응답되며 갈릴리 호수를 조용하게 뒤 덮어 갔습니다.

 

 요르단 : 바울의 족적이 남아있는 바로 그곳 페트라

요르단에도 기대 이상으로 성지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3장의 ‘길하렛셋’ 성이였고 모압왕 ‘메사’가 장남을 번제물로 드린 카락성이 처음 방문지였습니다. 이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면서 성경 속 에돔족의 도시였던 ‘레겜’인 페트라를 순례했습니다. 돌을 깎아 만들었다는 멋진 조각물이나 정교하게 이어져 가는 수로 등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납니다. 한때 4만 명이 거주하였다는 이런 엄청난 곳이 천년 동안이나 발굴되지 않고 밀폐되어 있었다니, 잘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 날에는 6세기 성지의 모자이크로 유명한 마다바의 그리스 정교회를 순례 하였고 마지막으로 느보산에 갔습니다. 모세가 자기는 갈 수가 없는 곳 멀리 가나안 땅을 회한의 마음과 더불어 바라보았던 산, 거기서 죽어 장사되어진 곳으로 전해지는 느보산에는 오늘도 순례객으로 만원을 이루며 놋뱀이 높은 장대위에 서 모세의 때를 회상하게 했습니다.

느보산 순례를 마지막으로 이번의 성지 순례의 대 장정은 모두 끝이 납니다.

이번 순례여정에는 이제 농어촌 목회를 갓 시작한 새내기 목사님부터 농어촌 목회가 벌써 30년이 넘어가는 고참 목사님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하였습니다. 1993년 이래 우양재단이 섬겨 온 100교회 농어촌 교회 목사님들 모두를 초청하였으나 아홉 교회는 건강문제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91교회 목사님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재단의 수행원, 현지 가이드 등 모두 100명이 넘는 많은 일행이 3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순례를 하였습니다. 역시 목사님들이라,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순례 그 자체가 벌써 은혜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작고 많고, 경험이 많고 적고를 떠나 서로 배울게 있다면 겸손히 배우고 나누는 것이 미덕임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이 다름 아닌 목사님들임을 새삼 확인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디베리아 호수가에서 만났던 ‘네가 정녕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우리에게 회복의 은사를 베푸시는 ‘회복의 주님’을 가슴에 품고 이제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마른 땅이 녹아 산과 들에 생명이 피어오르는 계절입니다. 우리 농어촌 목회자들이 사역하는 지역과 교회에도 작지만 아름다운 변화의 꽃들이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농어촌이 더 이상 소외와 결핍의 터가 아닌 희망과 변화와 기회의 터임을 확신하는 농어촌 목사님들의 힘찬 사역을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성지순례는 우양재단과 함께하는 농어촌 100교회 목사님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로 농어촌 목회를 사명으로 알고 마을 속에서 작은 공동체를 일궈 가시는 농어촌 목사님들의 묵묵한 헌신과 수고에 대한 감사이며 격려의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의 주인공인 목사님들이 이번 순례를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고 앞으로의 사역에 많은 영감이 지속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