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농촌라이프“
2005년 가을. 결혼도 안 한 여자 혼자 시골로 내려왔다. 1980년에 지은 오래된 건물이 언덕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시골교회는 작고 낡았다. 마을엔 하루 종일 고요와 적막이 흘렀고 심심한 날들의 연속이다. 예배가 있는 수요일과 주일 외에는 바깥 출입이 없었다.
경남 함안군 작은 시골마을. 언덕 위 작은 교회는 휑뎅그렁했다. 대치교회 이성혜 목사(37세)는 아직도 첫 부임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도시에서만 생활한 이 목사가 시골생활 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속은 따뜻하지만 겉은 까치름한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그랬고, 도시와 떨어져 있으면 왠지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그런 이 목사가 벌써 7년째 대치리에 머물고 있다.
“겁나게 재밌어요. 주님은. 시골 인심이 그렇잖아요. 콩 한쪽 나눠먹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이게 행복이라는 걸.” 조금은 지루하고 심심할 것 같은 농촌라이프를 이제 체득한 모양이다.
‘목회 이야기, 하나님은 도시에서만 일하시나요?’
신학교 시절 조직이 잘 갖춰진 큰 교회에서 일 해 보기도 했다. 여자여서 못한다는 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사람들을 세워갔고 교회를 섬겼다. 인턴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단독 목회는 생각해보지도 않았었다. 그것도 시골교회에서.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뜻하신 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목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 당시 힘든 일 때문에 도망치듯 이곳에 왔지만 누가 알겠어요. 7년 넘게 이곳에서 이렇게 목회를 할지.그러면서 알게 되더라고요. 하나님은 도시에서만 일하지시 않는다는 걸요.”
주일 대치교회 풍경은 이렇다. 11시 예배를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어르신들 몇 명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부지만 어느 교회보다 밝고 활기차다. 3년 전부터 성경읽기, 제자훈련, 기도회 등을 했다. 먼저 터를 잡은 선배들은 어르신 한글학교, 어린이 공부방 등을 제안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라고 권했지만 이 목사는 달랐다. “교회마다 사명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다른 교회가 다 한다고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턱대고 일을 벌였다가 가장 중요한 목회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 능력이 없기도 한 게 더 큰 이유라며 겸손의 말을 한다.
대치교회 사람들
“나는 술 먹고 담배도 먹고 다해. 무슨 세례고 집사야. 괜찮아.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그게 교횐가 ”
교회에 부인과 함께 오래 출석한 남자성도에게 어느 날 세례 받을 것을 권했다가 오히려 부끄러워 졌던 경험이다. 이 목사는 이런 교인들이 본인을 목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마을 교회 목사로 혹은 여자 혼자의 몸으로 여러 가지 편견이 있었다. 거친 이 곳 사람들의 표현에 상처입기도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농협에서 주는 마을 달력이 있는데 그걸 집 앞에 놓고 가셨다. 그제야 마을에서 인정받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수년을 목사로 주일에 설교를 했지만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곧 짐 싸들고 떠날 것 같던 여자로만 보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도 떠나지 않으니 마을사람들이 이 목사를 마을의 일원으로 알아줬다. 이 목사는 그제야 대치리 주민이 됐다.
올 초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들어 하는 교인으로 있었다. 좋을 때는 함께 하는 게 당연하지만 힘들 때 함께 하는 게 진짜라고 믿었다. 결국 그 교인은 예배에 안 나오기 시작했다. 목회를 하면서 개인적인 어려움이 없겠는가마는 이번만큼은 이 목사 개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나중에야 교회를 떠난 교인을 만날 수 있었다.큰 말이 필요 없었다. ‘미안하다.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니라고 믿었지만 권위적인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을 돌아봤다. 관계는 어느새 풀어져 있었다. 목회는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목사 자신이 바뀌는 것임을 알게 됐다.
“교인들의 아픔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답이더라고요. 프로그램이나 제한된 시간 속에서는 바뀌지 않아요.”
‘평범해도 괜찮아.’ 솔직 담백한 여성 목사
이 목사에게 궁극적인 꿈을 물었다. 있는 자리에서 목회자로 평범하게 살고 싶단다. 예전에는 개척자가 되고 싶기도, 누구보다 더 알려지고 싶기도 했다. “나라고 늘 좋겠는가. 교인들이 때로는 밉기도 하다. “ 솔직한 이 목사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평범한 일상에 계시는 하나님을 목회자로 뿐만 아니라 아내로 엄마로 만나고 싶단다. 굳이 이름 하자면 생명목회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거창하지 않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의 기독교 목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은 야무진 생각이다.
미자립이라는 말이 늘 불편하지만 빼 놓지 않고 물어봤다. “재정적으로는 늘 어려워요. 그러나 ‘이 순간’ 만큼은 부족함이 없게 하시죠. 기적이 별건가요? 무던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평범함이 기적이지 않나요.”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다. 오늘도 대치교회는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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