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전하는사람/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닮고싶은청년 vol.23] 함께 소리쳐 줄 사람이 필요해요 - 청년 김은주
  2. [닮고싶은청년 vol.22] 따뜻하고 건강한 식사 한끼 하실래요? - 푸드포체인지 대표 노민영
  3. [닮고싶은청년 vol.21]꿈꾸고 있는 당신이 바로 청년입니다- 한국갭이어 안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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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발간된 첫 책 「북한지옥탈출 9년」에는 ‘김은주’라는 실명을 쓰지 못했다. 가명을 쓰며 불안한 마음으로 냈던 책이 이번에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발간된다. 김은주씨의 탈북이야기를 담은 한국어판 책의 제목은 「11살의 유서」이다. 11살에 처음으로 탈북을 시도한 후 무사히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9년이 걸렸다. 이제는 한국에 정착하여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쉬지 못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탈북자들을 위한 외침이다. 열한 살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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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웠던 9년간의 시간, 책으로 출판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던 세바스티앙 팔레티(르 피가로 신문 서울주재 특파원)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을 통해 그녀를 소개 받았다. 탈북자에 대한 책의 공동작가를 찾고 있는 터였다.

“제 이야기가 다른 탈북자들에 비해 더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럼에도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했고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첫 탈북 후 한국에 오기까지 걸린 9년간의 자전적 이야기가「북한지옥탈출9년」이라는 제목의 프랑스어 판으로 출간되었다. 그 후 노르웨이에서도 출간된 이 책은 「열한살의 유서」라는 제목으로 2013년 8월 한국에서도 출간예정이다. 탈북과정의 상처를 잘 이겨내고 있는 그녀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낸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삶이 책으로 출간되어 전 세계로 퍼진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갈 때는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누구보다 고생이 많았던 어머니와 아직 어린 동생이 책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그럼에도 책을 쓰기로 결심한데는 이유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제 3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탈북자문제는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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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움 받았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면

“한국에 처음 와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마냥 재미있었어요. 북한에서의 일은 지난일이고 내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만 생각했어요.”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 좋았고, 배고프지 않아 좋았다. 신분이 명확하지 않아 늘 불안했던 중국생활과는 달리 분명한 신분도 주어졌고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았다. 걱정이 없는 삶이었다.

“그때는 내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수시로 일찌감치 대학에 합격하고 한동안 여유가 생겼다. 그때 생각 난 것이 한겨레계절학교였다. 그녀가 하나원에서 퇴소 한 후 제일 먼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자원봉사를 하려고 북한인권시민연합에 연락을 했을 때에도 북한주민의 인권이나 탈북자들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내가 도움 받았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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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에 대해 누가 말하나요?

한겨레계절학교 자원봉사 선생님으로 시작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의 활동은 그녀의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탈북자의 북송문제나 제3국 생활 그리고 한국에 와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겪었던 일이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철이 들은 건지 대학에 와서 생각이 많아진 건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즈음 내 안에서 탈북자라는 정체성이 점차 명확해졌어요. 그리고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한번 달구어진 마음은 자꾸만 뜨거워졌다. 탈북청소년돕기캠프의 스텝으로 참여하고 탈북자북송반대 집회에서도 소리를 높였다. 채널A에서 방송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의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양재단에서 주관하는 평화강사양성과정을 수료해 평화강사가 되었고 통일축구대회 봉사자로도 활동하였다.

“탈북자들 중에서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거죠. 물론 이해해요. 그런데요. 그럼 누가 말하나요? 그 시절을 온전히 보고 느끼고 겪었던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 시절에 대해 누가 말하고 그 고통을 지금 겪고 있는 탈북자들을 도와달라고 누가 소리치나요?”

그녀는 단호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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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서는 불가능 했던 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에 대해 바로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진짜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평화강사도 벌써 4년째이다. 우양재단에서 주관하는 평화교육은 남북한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북한의 현실을 바로 알리려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강의에서 그녀는 북한에서 지냈던 보통학교시절 자신이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활했는지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금세 강의에 집중하고 흥미롭게 듣는다. 북에서 온 선생님이 전하는 북한이야기는 쉽게 이해되고 불필요한 편견은 만들지 않는다.

“초등학생들과 만나는 일은 늘 즐거워요. 올망졸망한 눈을 보고 있으면 신나서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심어주는 일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책임감도 느끼게 되죠.”

 

그녀는 작년 가을학기부터 일 년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미국대사관에서 지원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가 주어졌다. 넓은 세상,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돌아보니 오히려 내가 더 분명하게 보였다.

“아오지(함경도 은덕)에 살던 내가 어쩌다 보니 미국 한가운데 서있었어요.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지요. 저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내가 도울 차례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하게 되든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탈북자들을 도우는 일을 하면서 살거에요.”

 

 

 

 

 

 

 

보름간 스페인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스페인에서 진행되는 지역 먹거리 운동을 직접 눈으로 보고 참여하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다녀오니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져다며 건강한 미소를 짓는다. 사단법인 푸드포체인지의 노민영(34) 대표다.

 

지금은 식생활과 먹거리 분야에서 전문가로 불리고 있지만 20살의 그녀는 통계학과 학생이었다. 남들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고 맛있는 음식을 좋은사람들과 나누어먹으면 행복했다는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점이었다. 그때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고 음식전문잡지사와 외식업체 마케팅팀에서도 근무를 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냥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언젠가 부터 우리의 먹거리 문화 이면에 있는 사회적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을 알게 됐어요.”

 

지속가능성 있는 먹거리 문화를 고민하다

 

그녀는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이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한 끼 식사의 변화는 우리의 삶과 사회가 변화하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을 접하면서 먹거리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한국에서 먹거리와 관련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식품영양이나 식품과학정도거든요. 제가 공부하고 싶었던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죠.”
국제슬로푸드연맹에서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은 문화, 역사, 경제, 인류학, 심리학 등등 음식에 사회과학적 측면으로 접근하여 교육을 한다. 물론 그 기저에는 슬로푸드의 철학이 깔려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새롭게 공부하고 지속가능성있는 먹거리문화에 대한 고민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건강한 먹거리의 조건

 

유학에서 돌아왔을 당시 한국에도 슬로푸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발빠르게 관심을 가지는 단체들이 생겨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희망제작소와 풀무원에서 먹거리와 관련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하고 그 적임자로 그녀가 추천되었다. 그리하여 사단법인 푸드포체인지가 설립된다. 푸드포체인지는 교육과 캠페인으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의식을 개선하여 식생활 문화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지속가능성의 관점으로 봤을 때 먹거리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푸드포체인지의 기본철학은 누구나 좋은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먹거리시장에서 좋은 먹거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트에 쏟아져 나오는 저렴한 수입농산물과 첨가물로 맛을 낸 여러 가지 식품들은 좋은 먹거리를 먹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지를 사라져 버리게 한다.
“건강한 먹거리의 첫 번째 조건은 우리땅에서 자란 제철음식이예요.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건 사실 그 다음 이야기고요. 또 식품첨가물보다는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동네 장담그기’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했어

요.”

 

 

‘진짜’맛을 찾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식생활 교육이나 성인들과 함께 하는 기획강연들을 진행하면서 동일하게 나온 결론은 현대인들은 진짜 맛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짜 맛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제일 먼저 간장, 된장, 고추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요리의 기본이 되고 있는 필수적인 양념에까지 가짜 맛이 섞여있거든요. 그래서 함께 장을 담그기 시작했어요.”
도시에 살면서 개인이 장을 담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여럿이 모이니 가능했다. 40명 정도가 되는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장독을 마련하고 필요한 만큼 분양을 했다.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일까지 힘을 모아 진행하고 있다. 함께하니 즐거운 일이 되었다.

 

장독을 나누다

 

장 담그기가 한창 진행될 즈음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식생활교육을 진행했다. 지역아동센터를 교육을 끝내고 나올 때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교육을 하고 나올 때 마다 마음이 불편했어요. 식생활 교육에서는 첨가물이 들어간 음료나 과자는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센터에는 늘 그런 간식들이 가득했어요.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본 장들도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있는 대기업의 제품들이 즐비했고요. 그래서 펀딩을 시작했어요.”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를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만드는 건강한 장을 그 아이들과 나누어 먹고 싶었다. 펀딩을 통해서 지역아동센터에 나누어줄 장독을 분양 받았다.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것은 기존 회원들이 도왔다.
“장 담그는 일은 1년이 걸리니까요. 겨울까지 잘 익혔다가 맛있는 장을 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 담그는 과정을 함께 이야기하고 직접 담근 장을 맛보게 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있을까요."

 

 

 

푸드포체인지에서는 7월부터 푸드케이터 양성과정을 개설한다. 연 350회 정도의 바른 식생활강의를 기존 강사로 충당하기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강의도  연일 진행 중이다.
“2주간 사무실을 비워서 사무실에 할 일이 쌓여있을 거예요. 사무실 직원은 저를 포함해 2명뿐인데 일은 쉴 틈 없이 늘어가고 있어요. 가끔은 힘들지만 좋은 사람들과 따뜻하고 건강한 밥 한끼 나누어 먹는 일이라 다시 힘을 낼 수 있어요. 밥상을 같이 한다는 것은 삶을 함께 한다는 뜻이니까요.”

 

 

 

 

셔츠가 잘 어울리는 기업인의 느낌이 물씬 났다. 왕년에 무전으로 세계를 여행하던 그는 이제 명동 한복판의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려 도리어 낯설었다.

 

그는 현재 한국갭이어 대표이사 안시준(29)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수년전만 해도 무전여행으로 5대륙 36개국을 돌던 무모하고도 당찬 청년이었다. 무전으로 세계를 떠돌던 그때는 그날의 끼니와 잠자리가 늘 걱정이었다.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밑바닥에서 몸으로 세상을 익혔다.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기 원했다. 이렇게 세상을 배우면 이후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넓었다. 그리고 그는 1년4개월 만에 무사히 귀국했다. 그는 발바닥에 생긴 굳은살만큼이나 더 단단해졌고 선명하게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되기 위한 습관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꿈꾸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을 ‘성인이 되기 위한 습관’이라고 말한다. “여행을 하면서 세계의 많은 청년들을 만나보았는데 그 친구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더라고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꿈을 꾸게 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시급하게 필요한 일이예요” 그는 사회의 문제를 기업의 형태로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사회적기업 창업을 결정하였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템이 이것이다. <청춘, 젊음을 꿈꾸게 하다>, 현재 그가 대표로 있는 사회적기업 한국갭이어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여자는 5~6년, 남자는 7~8년이 걸려서 졸업을 한데요. 막상 졸업을 하려고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자꾸만 졸업을 미루는 거죠.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의미없는 스펙에 매달리죠.”
그래서 그는 한국에도 갭이어(Gap year)문화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갭이어'란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창조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봉사, 여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말한다.) 갭이어를 가지기 가장 좋은 시간은 17~20세로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다. “대학 시절은 청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이예요. 그 동안 자신의 꿈과 관계없이 비싼 학비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사람이 다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라는 다 똑같은 꿈을 가질 수 있나요. 이건 분명 자신을 알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예요.”

 

 

20살, 자신의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나이


한국갭이어는 학업에만 매달리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나 부산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기, 싱가폴의 애견트레이닝 스쿨체험, 아프리카 케냐 마을공동체 봉사활동 등이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흘러가는 대로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명문대와 대기업에 목숨 걸 듯이 살진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이다. 그러나 남들 다가는 대기업에 입사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일년이 안 되서 뛰쳐나오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대기업이 해답은 아닌거예요.”

 

한국의 교육문화는 분명 특별하다. 유아 조기교육부터 시작해서 고등교육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시스템이다. 잠시 멈춘다는 것은 뒤쳐진다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부모님의 뜻대로 혹은 남들이 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예요. 저는 갭이어가 우리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해요. 청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대다수의 국민이 생각하는 거죠.” 20살은 누구나 대학을 가야하는 나이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는 것, 이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갭이어 문화이다.

 

 

 

 

 

꿈꾸는 당신을 한국갭이어가 응원합니다


시준씨를 비롯한 한국갭이어의 직원들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국내외로 한국의 청년들이 경험할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쉬지 않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 4월부터는 국내 갭이어프로그램을 전면 무료화 하였다. “회사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단기간의 수익보다는 더 많은 청년들이 갭이어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 났어요. 이런 뜻을 따라 주는 직원들에게도 참 고마운 일이죠.” 


세상에서 배운 것이 많기에 그 소중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그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꿈꾸고 또 다른 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그는 언제나 청년이다. 지치지 않는 청년 안시준씨가 믿는 대로 꿈꾸는 사람 그가 바로 청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