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전하는사람/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닮고싶은청년 vol.26]받은 사랑을 돌려주겠다는 다짐, 이제 보여줄 거예요 - 청년 이수빈 1
  2. [닮고싶은청년 vol.25] 연극을 통해서 탈북자와 대한민국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고 싶어요. - 배우 김필주 1
  3. [닮고싶은청년 vol.24] 서민들의 피로를 씻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청년 권승일 13

 

 

이수빈(25) 씨는 지난달 한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했다. 기아대책이 후원하는 인도네시아 유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장학금 수여식이었다. 그녀는 유독 가슴이 뭉클했다. 먼저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학을 온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되어 기뻤다. 그리고 대학시절 장학생으로 참석했던 장학금 수여식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도움을 받는 것처럼 사회에 나가면 어려운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사람이 되라’던 장학재단 이사장의 당부를 한 번도 흘려듣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녀는 또 다른 장학금 수여식에 스텝으로 참여해 행사를 돕고 있었다.

“괜히 눈물이 났어요. 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우양재단에서 장학금을 받던 일이 계속 떠오르면서 또 한 번 감사했어요. 당장 내 돈으로 장학금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나도 분명 그 장학금이 전달되기까지 돕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받은 사랑을 꼭 돌려주겠다는 다짐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기분이에요.”

2013년 상반기까지 그녀는 우양재단 장학생회 학생회장이었다. 그리고 2013년 하반기 지금 그녀는 기아대책 국제사업본부 신입간사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 졌어요. 오래 고민할 겨를도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다 감사한일 뿐이에요.”

 

 

 

 

“봉사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어서 행복하다는 그녀는 매일이 감동이다. 지금 이 자리가 딱 내 자리라고 말하는 그녀지만 처음부터 NGO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용기와 정의감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저런 고민을 할쯤에 친하던 친구가 심리적인 이유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 친구의 모습이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힘들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본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무기력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휴학을 했다.

“휴학을 하고 심리치료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이주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봉사를 했어요. 우연한 기회로 몇 번의 봉사활동을 더 하게 되었고 봉사의 맛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랑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시작한 활동들은 사실 사랑을 받는 일이었다. 그렇게 스며들듯 그녀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년 6개월의 휴학을 마친 후 그녀는 더 씩씩하게 학교로 돌아왔다. 복학 후에는 본격적으로 NGO활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생 NPO인 Youth CLIP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할 때 난민인식개선 캠페인을 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한국에 있는 많은 난민들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법체류자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건 국민들이 난민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으로 그들을 소개 하고 싶었어요.”

이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규모의 행사를 치렀다. 서툴기도 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가장 큰 수확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국제 이슈를 다루는 것은 큰 단체나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삶 전체로 사랑을 나누는 분들을 보았어요.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죠.”

이 후 개발을 넘어 발전 대안을 찾고자하는 국제 NGO인 ODA Watch 아프리카 분과 활동에 한창 열을 올릴 때쯤 그녀는 문득 아프리카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3학년이 되면서 국제개발 NGO인 ODA Watch 아프리카 분과에서 활동했었어요.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해서 기사도 쓰고 했었죠. 그런데 아프리카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아프리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양심에 걸렸어요. 그때 마침 학교에서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가는 인턴프로그램이 생겼어요. 단숨에 신청했어요.”

아프리카에의 삶은 그저 행복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이 지역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단지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대의 업무였다.

“그곳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게 기억하는 것에는 당시 함께 거주했던 지부장님 가정의 영향이 커요. 그분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일부, 돈의 일부를 떼어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로 사랑을 나누는 분들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잠시 고민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올해 8월 국제구호기구인 기아대책에 입사했다.

그녀의 꿈은 세계평화이다. NGO단체 국제사업본부에서 일을 해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세계평화를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세계평화가 세계의 평화가 아니라 나의 평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평화가 내 주변에 평화를 가져오고 내 주변의 평화가 그 공동체에 그리고 그 공동체가 또 다른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와 함께 있는 한 사람과 내안의 평화를 잘 나누는 것이 세계평화의 시작이죠.”

 

 

 

그는 두 번째 작품을 이제 막 마쳤다. 꼬박 한 달을 매일같이 공연하다보면 지칠 만도 한데 여전히 힘이 넘친다. 공연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9월 한 달 동안 공연 했던 연극 ‘이중사연’은 평양 출신 탈북자가 남한에 내려와 대리운전기사를 하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이 연극에서 김필주 씨는 일사후퇴 때 월남한 노 회장 역을 맡았다.

 

 

우연히 시작한 연극, 인생의 활력소가 되다

연극 ‘이중사연’은 작년 9월 첫 작품인 연극 ‘정명’ 이후 일 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지난 번 작품과 같이 탈북청년연합에서 제작하는 탈북자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작년에 처음 공연을 할 때는 연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제가 회원으로 있는 탈북청년연합에서 준비했었고 같이 하자는 제의가 들어와 큰 고민 없이 수락했거든요."

남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일들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연극을 시작했다. 무엇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끼던 시절 연극은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체력, 발성, 화술 훈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한 달을 했어요. 그리고 그 후 한 달은 대본연습을 하고 또 한 달은 연기수업을 했어요. 훈련이 고되긴 했지만 즐거웠어요. 이 연극을 통해서 남한사람들이 탈북자들을 조금 더 이해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연극 ‘이중사연’의 내용처럼 수많은 오해와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두 번째 작품을 선뜻 승낙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첫 번째 작품을 마친 후 좋은 추억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연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감사하게 저에게 두 번째 기회가 왔고 이번에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면 대한민국은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잘 살아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중사연’의 주인공 남수는 필주 씨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극중 남수가 다른 이들의 오해와 차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장면에서는 자신이 뛰쳐나가 대변해주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저도 적응이 힘들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취업도 힘들었고 이 땅에서 내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절망적이었어요. 무능하게 느껴지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죠. 그 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대한민국 사람과 탈북자 사이에 다리역할을 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다.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면 대한민국은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 그 일을 해냈다.

“주인공 남수 역을 맡은 배우가 인터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본인도 이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는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 흔한 대한민국사람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통해서 탈북자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는 거예요. 공연에 참여하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무척이나 기뻤어요.”

 

그는 이번 공연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연극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그를 찾는 작품에 참여했다면 이제 부터는 그가 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볼 생각이다. 연일 연습과 공연으로 바쁘고 피곤해도 오랜만에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그에게 얼굴이 좋아졌다며 인사를 건넨다.

“아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인 것 같아요. 연습이 길어질 때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한 번도 지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요즘은 내가 연극배우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지, 나에게 그런 끼가 있는 것인지 인생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중이예요.”

 

 

 

 

지금 막 냉장고에서 꺼내 온 거예요. 시원할 때 마셔야 더 맛이 있어요.”

만나자마자 피로회복음료를 선물하는 권승일 씨는 지난 달 처음으로 직장에 입사했다. 다양한 업무를 배우기 위해 이번 주 내내 각각 다른 지점으로 출근해 업무를 익히고 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그는 아침 7시부터 종일 피로회복음료를 날랐다. 요즘 같은 땡볕에 녹초가 되는 것이 당연하건만 마치 광고에 나오는 청년모델처럼 씩씩한 미소를 지었다.

 

벤치 닦는 동아리 ‘KNU서포터즈

 

지금은 서울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는 대구에서 올라온 경상도 남자다. 그가 졸업한 경북대학교에서는 쌍둥이 총학생회장단으로 꽤나 유명세를 탔다.

쌍둥이 형이 총학생회 회장 그리고 제가 부회장을 했어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하는 동안 재미있게 했고요. 학교에 애착도 많이 생겼어요.”

총학생회 임기동안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일은 총학생회 임기가 끝난 후에 시작됐다.

총학생회 임기는 끝났지만 학교를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어요. 그래서 우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모았어요.”

무엇을 하기 위한 모임인지도 정해 지지 않았다. 그저 학교를 위해서 봉사를 하고 싶은 학생들을 모집했다. 금세 30명이나 모였다.

사실 저도 놀랐어요. 정식 동아리도 아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것도 없는데 저를 믿고 와준 친구들이 30명이나 되었거든요. ‘KNU(경북대학교)서포터즈라고 이름을 짓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단체복을 맞춘 거였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먼저는 학교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스펙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캠퍼스에 있는 벤치를 닦는 일이었다.

학교벤치는 학생들이 늘 이용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3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KNU서포터즈라는 이름을 달고 캠퍼스 구석구석을 다니며 교내 벤치를 닦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즐거워서 하는 일이었다.

 

 

 

봉사의 꽃은 목욕봉사죠

 

벤치 닦는 일로 봉사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은 이번엔 지역에 있는 아동장애인복지시설로 갔다. 매주 토요일 오전, 누군가는 나들이를 가고 누군가는 불금의 여파로 아직도 잠자리에 있을 그 시간이다. 그러나 ‘KNU서포터즈는 장애아동들의 목욕을 돕는 봉사를 하기위해 일찍부터 아침을 깨웠다.

친구들에게 재미있을 거라고 가자고 이야기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없었어요. 매주 토요일 아침 나와야 하는 일인데 이 친구들이 얼마나 따라와 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승일씨의 걱정은 기우였다. 처음에는 머쓱해 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봉사를 즐기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아마 아이들과의 교감이 있어서 일거예요. 몸도 잘 못 가누는 아이들을 닦아주고 안아주며 드는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이 기분을 경험해 본 친구들은 대부분 꾸준히 봉사에 참석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늘 봉사의 꽃은 목욕봉사라고 말하곤 하죠.”

이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KNU서포터즈는 올해 3기 회원을 받았다. 여전히 교내동아리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올해는 면접까지 봐서 회원을 뽑았다.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가장 큰 자랑 거리이다.

 

 

지금은 인정받는 직원이 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예요

 

입사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물어보는 거예요. 왜 이렇게 자기소개서에 대한민국사회환원이라는 단어가 많이 있냐고요. 어떤 이유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저는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어요. 그리고 이 일들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큰 힘이 되고요 .”

지난 달 신입사원 연수원에 있으면서도 연수원동기들과 요양원으로 봉사를 다녀왔다. 하고 있는 일이 좀 더 익숙해지고 같은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회사 내에 봉사 동호회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위해서 지금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 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다. 먼저 맡겨진 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그가 다른 일을 제안했을 때에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쌍둥이 형과 함께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요

그의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는 쌍둥이 총학생회장단으로 활동했던 쌍둥이 형과 50대가 되어서는 함께 국회위원이 되고 싶다.

앞으로 20~30년간은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제가 지금 피로회복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서민들의 피로를 씻어주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50대가 되어서는 서민들의 삶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국회위원이 되고 싶어요. 물론 너무 멀리 있어서 아직은 막연하지만 저희 쌍둥이 형제가 함께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대학생 시절부터 형과 저의 꿈이었어요.”

 

가는 곳마다 함께할 동료를 만들고 그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그는 가히 우양재단 사회환원청년장학생이라 부를만하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응원해 준 우양재단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닮고싶은청년이라는 우양의 문구가 늘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아직은 신입사원이지만 언젠가 제 몫을 충분히 감당하는 사회인이 된 후에는 사회환원청년장학생 선발에 선배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보고 싶어요. ! 이달에 통일축구대회가 있죠? 저도 우양FC로 같이 뛸 예정이니까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