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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발간된 첫 책 「북한지옥탈출 9년」에는 ‘김은주’라는 실명을 쓰지 못했다. 가명을 쓰며 불안한 마음으로 냈던 책이 이번에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발간된다. 김은주씨의 탈북이야기를 담은 한국어판 책의 제목은 「11살의 유서」이다. 11살에 처음으로 탈북을 시도한 후 무사히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9년이 걸렸다. 이제는 한국에 정착하여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쉬지 못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탈북자들을 위한 외침이다. 열한 살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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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웠던 9년간의 시간, 책으로 출판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던 세바스티앙 팔레티(르 피가로 신문 서울주재 특파원)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을 통해 그녀를 소개 받았다. 탈북자에 대한 책의 공동작가를 찾고 있는 터였다.

“제 이야기가 다른 탈북자들에 비해 더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럼에도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했고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첫 탈북 후 한국에 오기까지 걸린 9년간의 자전적 이야기가「북한지옥탈출9년」이라는 제목의 프랑스어 판으로 출간되었다. 그 후 노르웨이에서도 출간된 이 책은 「열한살의 유서」라는 제목으로 2013년 8월 한국에서도 출간예정이다. 탈북과정의 상처를 잘 이겨내고 있는 그녀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낸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삶이 책으로 출간되어 전 세계로 퍼진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갈 때는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누구보다 고생이 많았던 어머니와 아직 어린 동생이 책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그럼에도 책을 쓰기로 결심한데는 이유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제 3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탈북자문제는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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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움 받았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면

“한국에 처음 와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마냥 재미있었어요. 북한에서의 일은 지난일이고 내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만 생각했어요.”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 좋았고, 배고프지 않아 좋았다. 신분이 명확하지 않아 늘 불안했던 중국생활과는 달리 분명한 신분도 주어졌고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았다. 걱정이 없는 삶이었다.

“그때는 내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수시로 일찌감치 대학에 합격하고 한동안 여유가 생겼다. 그때 생각 난 것이 한겨레계절학교였다. 그녀가 하나원에서 퇴소 한 후 제일 먼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자원봉사를 하려고 북한인권시민연합에 연락을 했을 때에도 북한주민의 인권이나 탈북자들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내가 도움 받았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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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에 대해 누가 말하나요?

한겨레계절학교 자원봉사 선생님으로 시작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의 활동은 그녀의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탈북자의 북송문제나 제3국 생활 그리고 한국에 와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겪었던 일이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철이 들은 건지 대학에 와서 생각이 많아진 건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즈음 내 안에서 탈북자라는 정체성이 점차 명확해졌어요. 그리고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한번 달구어진 마음은 자꾸만 뜨거워졌다. 탈북청소년돕기캠프의 스텝으로 참여하고 탈북자북송반대 집회에서도 소리를 높였다. 채널A에서 방송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의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양재단에서 주관하는 평화강사양성과정을 수료해 평화강사가 되었고 통일축구대회 봉사자로도 활동하였다.

“탈북자들 중에서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거죠. 물론 이해해요. 그런데요. 그럼 누가 말하나요? 그 시절을 온전히 보고 느끼고 겪었던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 시절에 대해 누가 말하고 그 고통을 지금 겪고 있는 탈북자들을 도와달라고 누가 소리치나요?”

그녀는 단호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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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서는 불가능 했던 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에 대해 바로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진짜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평화강사도 벌써 4년째이다. 우양재단에서 주관하는 평화교육은 남북한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북한의 현실을 바로 알리려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강의에서 그녀는 북한에서 지냈던 보통학교시절 자신이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활했는지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금세 강의에 집중하고 흥미롭게 듣는다. 북에서 온 선생님이 전하는 북한이야기는 쉽게 이해되고 불필요한 편견은 만들지 않는다.

“초등학생들과 만나는 일은 늘 즐거워요. 올망졸망한 눈을 보고 있으면 신나서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심어주는 일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책임감도 느끼게 되죠.”

 

그녀는 작년 가을학기부터 일 년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미국대사관에서 지원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가 주어졌다. 넓은 세상,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돌아보니 오히려 내가 더 분명하게 보였다.

“아오지(함경도 은덕)에 살던 내가 어쩌다 보니 미국 한가운데 서있었어요.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지요. 저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내가 도울 차례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하게 되든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탈북자들을 도우는 일을 하면서 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