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 스페인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스페인에서 진행되는 지역 먹거리 운동을 직접 눈으로 보고 참여하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다녀오니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져다며 건강한 미소를 짓는다. 사단법인 푸드포체인지의 노민영(34) 대표다.

 

지금은 식생활과 먹거리 분야에서 전문가로 불리고 있지만 20살의 그녀는 통계학과 학생이었다. 남들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고 맛있는 음식을 좋은사람들과 나누어먹으면 행복했다는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점이었다. 그때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고 음식전문잡지사와 외식업체 마케팅팀에서도 근무를 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냥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언젠가 부터 우리의 먹거리 문화 이면에 있는 사회적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을 알게 됐어요.”

 

지속가능성 있는 먹거리 문화를 고민하다

 

그녀는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이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한 끼 식사의 변화는 우리의 삶과 사회가 변화하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을 접하면서 먹거리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한국에서 먹거리와 관련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식품영양이나 식품과학정도거든요. 제가 공부하고 싶었던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죠.”
국제슬로푸드연맹에서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은 문화, 역사, 경제, 인류학, 심리학 등등 음식에 사회과학적 측면으로 접근하여 교육을 한다. 물론 그 기저에는 슬로푸드의 철학이 깔려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새롭게 공부하고 지속가능성있는 먹거리문화에 대한 고민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건강한 먹거리의 조건

 

유학에서 돌아왔을 당시 한국에도 슬로푸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발빠르게 관심을 가지는 단체들이 생겨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희망제작소와 풀무원에서 먹거리와 관련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하고 그 적임자로 그녀가 추천되었다. 그리하여 사단법인 푸드포체인지가 설립된다. 푸드포체인지는 교육과 캠페인으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의식을 개선하여 식생활 문화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지속가능성의 관점으로 봤을 때 먹거리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푸드포체인지의 기본철학은 누구나 좋은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먹거리시장에서 좋은 먹거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트에 쏟아져 나오는 저렴한 수입농산물과 첨가물로 맛을 낸 여러 가지 식품들은 좋은 먹거리를 먹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지를 사라져 버리게 한다.
“건강한 먹거리의 첫 번째 조건은 우리땅에서 자란 제철음식이예요.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건 사실 그 다음 이야기고요. 또 식품첨가물보다는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동네 장담그기’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했어

요.”

 

 

‘진짜’맛을 찾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식생활 교육이나 성인들과 함께 하는 기획강연들을 진행하면서 동일하게 나온 결론은 현대인들은 진짜 맛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짜 맛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제일 먼저 간장, 된장, 고추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요리의 기본이 되고 있는 필수적인 양념에까지 가짜 맛이 섞여있거든요. 그래서 함께 장을 담그기 시작했어요.”
도시에 살면서 개인이 장을 담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여럿이 모이니 가능했다. 40명 정도가 되는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장독을 마련하고 필요한 만큼 분양을 했다.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일까지 힘을 모아 진행하고 있다. 함께하니 즐거운 일이 되었다.

 

장독을 나누다

 

장 담그기가 한창 진행될 즈음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식생활교육을 진행했다. 지역아동센터를 교육을 끝내고 나올 때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교육을 하고 나올 때 마다 마음이 불편했어요. 식생활 교육에서는 첨가물이 들어간 음료나 과자는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센터에는 늘 그런 간식들이 가득했어요.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본 장들도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있는 대기업의 제품들이 즐비했고요. 그래서 펀딩을 시작했어요.”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를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만드는 건강한 장을 그 아이들과 나누어 먹고 싶었다. 펀딩을 통해서 지역아동센터에 나누어줄 장독을 분양 받았다.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것은 기존 회원들이 도왔다.
“장 담그는 일은 1년이 걸리니까요. 겨울까지 잘 익혔다가 맛있는 장을 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 담그는 과정을 함께 이야기하고 직접 담근 장을 맛보게 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있을까요."

 

 

 

푸드포체인지에서는 7월부터 푸드케이터 양성과정을 개설한다. 연 350회 정도의 바른 식생활강의를 기존 강사로 충당하기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강의도  연일 진행 중이다.
“2주간 사무실을 비워서 사무실에 할 일이 쌓여있을 거예요. 사무실 직원은 저를 포함해 2명뿐인데 일은 쉴 틈 없이 늘어가고 있어요. 가끔은 힘들지만 좋은 사람들과 따뜻하고 건강한 밥 한끼 나누어 먹는 일이라 다시 힘을 낼 수 있어요. 밥상을 같이 한다는 것은 삶을 함께 한다는 뜻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