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섬김'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3 성지순례후기 4탄 [벧엘교회 유하나 사모]
  2. 2013 성지순례후기 3탄_[행복한교회 김유선 사모] 1
  3. 2013 성지순례후기 1탄_[봄길교회 김현미 사모]

 

 

(왼쪽이 유하나사모)

성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이 긴 여정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는, 뒤로한 아이들과 애써 웃고 있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 두고 온 교회에 대한 어려운 마음이 더 커지는 비행기 안이다. 나는 계속 기도한다. 하나님을 더 친밀히 만날 수 있게 예비하신 이 시간동안, 당신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들을 놓치지 않을 영적 예민함을 허락하고서. 두고 온 가족들과 교회의 모든 순간마다 평안과 불평 없는 삶으로 인도하소서. 여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 후회 없게 하시고 지혜롭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도하에서 아테네로 향한다. 그리고 이제 곧, 진정한 순례의 시작이다.
 


처음 만난 아테네는 여유와 자족이다. 긴장을 풀어주는 햇볕과 정말 잘 어울리는 에게 해~! 그래서 하릴없이 온종일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 곳. 이 순간부터, 가족들이 차츰 머릿속에서 멀어진다. 여행에 집중하기 위해 벌써 내려놓고 있다. 아테네를 둘러보고, 교과서에서 봤던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서 본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열정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아레오바고 언덕 아래서 비문을 바라보며 상상해 본다. 첫 발을 내딛은 이국땅에서 맛보는 고향의 맛, 키다리 상추쌈과 된장국은 꼬박 하루를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쉼 없이 시작한 여행의 깜짝 선물과도 같았다. 잊을 수 없는 갓 짜낸 오렌지 주스, 욕심 부리며 몇 잔을 마셔대고 있다. 10여일 이상을 긴장 속에서 마치 숙제하듯 다녀 올, 화장실에 대한 부담은 잠시 잊는다.

 

 

성지 순례를 통해 뇌리에 박혀 버린 몇 곳은 그리스의 메테오라 산정 수도원, 터키의 데린구유 지하 도시, 괴뢰메 동굴교회, 이스라엘의 쿰란이다. 이 곳을 지나간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의 공통점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이고 목숨과 같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예수의 ‘ㅇ’도 모르는 무지한 집안에 시집 와, 신앙을 지키려고 무식하리 만큼 타협 없이 올곧게 예수를 붙드는 내 어머니가 무척이나 바보스럽게 보였다. 할머니-내 어머니에겐 시어머니-에게 어머닌, 집안도 말아먹고 아들도 못 낳는, 재수 없는 예수쟁이였다. 위의 성지들 안 밖에서 그들이 흘렸던 눈물과 핏 방울은, 내게는 크고 높게만 보이는 어머니의 신앙지킴과 견줄 수도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지켜냈기에, 그 복음이 내 어머니에게 올수 있었고, 지금 내 앞까지 온 것이다. 복음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 갈 때까지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써가고 계신다. 보이지는 않지만, 길고 긴 역사의 흔적 속에 감추어진 눈물과 핏 방울 앞에서 나는 낮아졌고,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어머니처럼, 예수만 붙들고 예수만 내 자녀에게 전해주리라 다짐한다.

 

순례의 기간 동안 값진 역사의 흔적들 앞에서 함께 했던 예배와 기도, 찬양의 감격을 그 때의 느낌으로 담아두지 못함이 아쉽고 아쉽다. 마치 ‘로또 당첨’처럼 날아 온 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는 이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정말 귀하고 값지다.

이 모든 여정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고 성취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목사님 옆에서 이 귀한 길을 가게 하시고, 같은 마음으로 길을 가고 있는 동역자들과 기쁨의 발자취를 걷게 하시는지.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다.

수고하신 우양의 모든 분들과 열심히 뛰어다니신 갈릴리 여행사 박 대리님, 사진 찍어 주시느라 애쓰신 분들, 웃고 울며 함께한 모든 사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벧엘교회  유하나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

 

 

 

행복한교회 김유선 사모(사진_오필록 목사님과 함께)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그날, 사모님들도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신청하시겠느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망설이지도 않고 가겠다고 대답한 이후로 석 달여간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4월 13일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저는 집에서 나와 교회에 들러 남편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호흡기1급 장애를 가지고 있던 저는 폐렴에 걸린 줄도 모르고 통증을 견디다가 결국 폐와 심장에 무리가 왔습니다. 그래서 자가 산소를 하면서 지낸지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사실 산소를 사용하면서 외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작년 봄에 하나님의 선물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다녀 온 후, 좀 더 도전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올 해 초에 제게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던 비행기여행을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전 이번 성지순례 초청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그 응답이라 여겼기에 수 없이 반복되는 고민과 갈등 속에서 오로지 기도만 했습니다. 입을 열면 못 가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던 중에 단체로 움직이는 순례길에 보호자 없이는 안 될 것 같아서 우양에 남편(목사님)의 동행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양에서는 심사숙고 하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반대 할 법한 남편도 아무 말 없이 진행해 주었고, 우양에서도 여행사에서도 역시 아무 말 없이 진행해주신 덕분에 저는 14일 간을 기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남편, 우양, 여행사 중 한 곳에서 제발 막아 주시길 기다렸는데 오히려 격려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여행보험회사에서만 저를 거부하셨다죠?~ㅎㅎ 그래서 여행보험 없이 각서 쓰고 다녀왔습니다)

 

 

그러한 감사함 가운데서도 성지순례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첫 번째 비행을 하고나서 환승을 하려는데, 돌아가는 길이 비행기 타야하는 길이 아니라면 다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인정사정없는 시간과의 싸움, 적지 않는 인원의 단체여행 속에서 “점점 겁이 나고 나만 아니었으면 남편얼굴이 저리 수척해지지 않았을 텐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고......나만 아니었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예민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에 말이에요. “나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참 많이 힘들었지만 하나님이 이곳에 나를 부르셨다! 라는 확신을 붙잡고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성지순례의 여정, 그리스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사도를 만나서 고린도로 베뢰아로 데살로니가로 마테오라로, 어디를 가나 신화가 있고 유적이 있고 아름다운 하늘이 있는 그리스를 떠날 때는 참 아쉽고 서럽고 그랬는데 왜 서러웠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은혜를 많이 끼쳐 주셨던 가이드님과의 헤어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터키는 참 아까운 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넓고 비옥해 보이는 초원을 보면서 한국인이 이곳에 살았다면 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며 여유 있게 터키의 순례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만나는 일곱 교회의 모습들을 보면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얼까? 오늘날 교회를 지키는 것 하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산지대의 유적지를 돌아보느라 산소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쉬엄쉬엄 다니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건 벽화(또는 신상, 모자이크), 기둥,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신)을 설명하고 보여주려고 열심히 그리고 붙이지만 퇴색되고 후패되어 구경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신)을 모시겠다고 끊임없이 세우고 건설했지만, 다시 무너지고 빼앗기며 주인이 바뀌기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그것들은 옛 그림자가 되었고 목적지를 향하여 길을 내고 무너지면 다시 그 위에 또 길을 내고, ‘그 길 위에 지금 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고자 했던 그 곳을 향하여 나 또한 길이 되고 있다’는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느니라”

 

 

‘이스라엘에 들어오면 날씨도 따듯하고 지대도 낮아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또 춥고, 높고, 숨차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던 그 공간에 내가 들어왔다는 안도감과 몇 해 전에 한 번 다녀갔다는 익숙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을 떠나 요르단으로 향한 길에서는 느보산에서 모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여전히 물 위를 걷는 그런 마음이었지만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넘실대는 홍해를 가르시고, 자기백성으로 하여금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듯이 오늘 나에게 하늘에서 길을 내사 안전하게 건너게 하시리라는 감동을 손에 땀나도록 쥐고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은혜가운데 도착한 한국, 역시 한국도 추웠습니다. 지금은 여행으로 쌓인 피로와 노폐물이 몸 밖으로 나가는 중이라 고되어서 며칠 째 바깥 출입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 일 내로 몸을 일으키게 될 것이고, 지난 두 이레 간의 기적은 저의 삶 속에 또 다른 기적을 낳으며 제가 만나는 사람들, 제가 밟는 땅에 주의 보혈로 물들이게 할 것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더 많은 사모님들과 교제하지 못하고 과잉 보호받다 온듯하여 다시 한 번 만나서 은혜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연합해 순례여정을 마치고, 역사위에 삶으로 쓰는 새로운 여정에 주의  동역자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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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봄길교회 김현미 사모(사진에서 왼쪽)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성지순례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양재단의 사랑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4년 전 성지순례를 열망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출발을 앞두고는 신혼여행 때보다 더 흥분되고 기대하는 나의 모습 때문에 혼자 웃곤 했는데 어느덧 12박 14일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평소에 이스라엘만 생각했었는데 그리스와 터키까지 갔고, 생각지도 못했던 생소한 그리스와 터키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리스의 아테네, 그곳에 ‘아레오바고’ 언덕과 파르테논 신전이 아래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찬란하게 금으로 둘러싸인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을 신으로 섬기고 철학과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들에게 작은 언덕에서 외치는 바울의 목소리는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을까. 그의 소리보다 많은 사람들의 조롱 소리가 바울을 짓눌렀을 것이다. 세계가 모두 알아주는 유네스코 1호의 명성만큼이나 바울의 마음은 아팠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첫마디의 고독한 외침. 지금의 우리는 그에 비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결단할 수 있게 한 곳. 메테오라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너무나 웅장한 바위위에 수도원 건물들이 있었다. 우뚝 솟은 바위들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런 바위위에 세워진 수도원 교회. 동방 정교회를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멋진 성화들이 가득했다.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그림들이 교회 안에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순교자의 그림들. 너무나 잔인하게 오랫동안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순교자들. “고백할래, 안 할래” 계속되는 갈등을 하게 한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이 ‘나도 이렇게 순교할 수 있을까?’였는데 실제로 그림들을 보며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을 본받아 나의 신앙을 지켜나가야지 하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을 잊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 터키의 데린구유,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지하도시. 깊이 55미터, 8층이나 되지만, 박해를 피해 떠나온 그들만의 작은 세상, 세상과 분리를 선언한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땅속에서 바위 속에서 그들만의 지혜와 방법으로, 대단하고 용감하다. 정말 경이롭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없는듯 하지만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또 한 곳 정말 멋진 캅파도키아, 버섯모양의 바위로 유명한 곳, 초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 살았던 신앙마을, 박해를 피해 멀리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 산 곳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괴뢰메’ 동굴교회는 수도사들이 살았다고 한다. 교회 안에는 아직도 벽화가 색을 발하며 그대로 남아있다.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만들어진 웅장하고 특이한 바위들이 신앙의 보금자리였다. 그들은 빛의 역할을 감당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빛과 소금, 이제 분명히 그 역할을 알았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터키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한 곳 에베소, 이곳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만 오천 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 목욕탕, 분수, 화장실, 아데미 신전 그리고 최신 유행의 시장, 상점, 광장, 커다랗게 박혀있는 길거리의 돌들 모두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문화가 발전한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들이 현재의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 옆의 건물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돌들 밖에 없지만 그 당시의 모습으로 세워져서 나를 맞아 주는 것 같았고 나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얻은 클레오파트라가 된 듯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그곳을 걸어 다녔다. 얼마나 흥분되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한편으로 ‘셀수수 도서관’에 가서야 또한 깨달았다. 이처럼 웅장한 곳이 ‘두란노 서원’인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었단다. ‘두란노 서원’은 지나온 작은 상점들 중 하나일 것이란다. 그 작은 책방에서 바울은 한 사람씩 두 사람씩 만나 복음을 전한 것이다. 바울의 수고를 생각하며 나 또한 성실히 바울의 사명을 나누어 가지려 한다.


  그리고 성소피아 교회에 갔다가 내가 가장 궁금해 했던 이슬람 사원에 갔다. 한남동의 블루모스크를 볼 때 마다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곳 현지에서 갈 수 있다니 정말 기뻤다. ‘히잡’을 쓰고 신발은 봉지에 담고 영적으로 너무 눌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하면서 들어갔다. 건물은 너무 아름답고 웅장했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그들  이제는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지순례를 통해 지식과 성경과 세상의 지경이 넓혀졌지만 가장 크게 기도의 지경이 넓혀진 것 같다.
  드디어 이스라엘, 예수님의 흔적을 느끼며 들어간 이스라엘은 척박함과 메마름 이었다. 그리스나 터키에 비해 돌들뿐이었다. 환경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너무나 달랐다. 감람산, 죽음을 알고 기다리는 시간,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나 또한 다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감사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십자가의 길, 지금은 복잡한 거리가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그 길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늘 눈물이 난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곳, 그 피가 우리를 정결케 했다.
  통곡의 벽,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갖고 이곳을 찾는다. 벽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 그 속에서 누가 진짜일까?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땅을 밟고 곳곳을 다닐 때 마다 눈물이 솟아오른다. 이스라엘은 기념교회가 많다. 이러한 교회들 보다는 시험산, 기드론 골짜기, 쿰란, 므깃도 등 광야와 산지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꼭 예수님의 마음 같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멜산의 엘리야, 그곳에서 집착하며 사진을 찍어대며 엘리사처럼 능력을 구했다. 선교사님이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는 성경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전 진리를 얻었기에 지금도 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그래서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씀에 적극 공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한국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고 또한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한다.  ‘느보산’의 모세처럼 이제는 겸손히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며 나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번 순례를 통해 성큼 자라난 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글. 봄길교회  김현미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