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전하는사람/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닮고싶은청년 vol.29]딸 부잣집 네 자매의 쌀 나눔 이야기 - 우양재단 쌀배달 봉사자
  2. [닮고싶은청년 vol.28]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도시의 고딩농부 이야기 - 성미산학교 학생들
  3. [닮고싶은청년 vol.27] 금요일엔 홍대에서 만나요 - 청년 윤희민 1

 

 

우양재단은 매달 독거어르신에게 쌀과 그 외 필요한 먹거리를 전달한다. 마포구만 세어보아도 35명의 자원봉사자가 115가정에 매달 도움의 손길을 나누고 있다. 우양 쌀 배달 봉사자의 특징이라면 한번 시작한 봉사를 쉽게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이젠 어르신도 동료 자원봉사자도 가족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자신의 가족에게 우양을 소개하여 함께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최민정(35), 최아름(33), 최민영(31), 최아롱(29) 딸 부잣집 네 자매가 바로 그들이다.

 

- 간단한 소개 부탁해요.

민정 저희는 서울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이예요. 민영이는 이제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고요.

민영 분가를 했지만 먼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은 아니어서 봉사는 계속 하고 있어요. 아이를 낳고 잠시 쉬기는 했지만 처음 직장에 입사한 2005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횟수로는 10년이 되었네요.

- 네 자매가 함께 매달 봉사활동을 한다는 건 특별한 일이예요. 원래 자매들끼리 사이가 좋은가요?

아름 가족끼리 여행도 자주가고 친하게 지내는 편이예요. 학교에 다닐 때는 각자가 바빠서 얼굴보기 힘들다가 다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오히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함께 외식을 한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좋은 활동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어떻게 쌀배달 봉사를 시작하게 됐나요?

민영 제가 시작할 때 만해도 우양재단은 홈페이지도 없었어요. 인터넷카페나 블로그를 통해서 주말에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보다가 우양재단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봉사를 시작하고 3년 정도 후에 막내 아롱이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아롱 민영언니를 따라 제가 합류하고 그 후에 아름언니 민정언니가 함께 하게 되었어요.

 

- 민영씨가 처음 봉사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선뜩 따라 나서게 되었나요?

아롱 저도 이전부터 봉사에 대한 관심은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던 중에 민영언니가 제안을 해서 기분 좋게 시작했어요. 꾸준히 어르신을 만나는 봉사를 해보니 점점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언니들에게도 같이 가자고 할 수 있었고요.

민정 어차피 토요일 오전은 늦잠 자는 시간이었어요.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한 두 번 따라 나서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내가 좋아서 가게 되었죠.

아름 지금 생각해보면 민영이가 대단한 것 같아요.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혼자 3년이 다 되도록 봉사를 다녔어요. 누구나 마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잖아요. 민영이가 다니기 편하게 길을 닦아 놓은 다음에야 우리도 같이 하게 되어요.

 

 

- 구체적으로 어떤 봉사를 하고 있나요?

아름 사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우양재단에서 준비해준 쌀이나 잡곡 계란, 라면 등 먹거리를 챙겨서 어르신 댁에 배달해요. 그리고 잠시나마 말동무를 해드리는 게 우리가 하는 전부죠. 그런데도 매달 우리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대부분 홀로 사시는 분들이어서 우리가 왔다가는 것 자체가 반가우신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잘 지내셨는지 물어보고 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몇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시간이 어르신들에게 소중한 것 같아요. 좋아하시는 어르신을 보면 저도 보람을 느끼고요.

 

- 어르신과의 만남이 봉사를 지속하게 되는 힘이 되나 봐요.

민정 그럼요. 저는 다른 기관에서도 도시락이나 먹거리 배달하는 봉사를 해봤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복지기관에서는 정말 배달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겨우 눈이나 맞추고 인사할 수 있으면 다행이죠. 그러다보니 어르신과 관계가 생기기 어려워요. 그렇데 우양은 달라요. 어르신과 봉사자 사이에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있어요. 이런 것 때문에 봉사자들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롱 평소에는 아끼신다고 보일러도 안트시는 어르신이 우리가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방을 데워놓고 기다리세요. 추운데 돌아다니느냐 고생이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실 때면 마음까지 따뜻해져요.

민영 그리고 할머니들의 수다에는 왠지 모르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요.

 

- 어르신과의 관계 외에도 우양 쌀 배달 봉사의 매력이 있나요?

민정 다른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을 만나는 거요!

아롱 우양 봉사자분들은 봉사자들 간의 유대가 굉장히 끈끈해요. 민영언니가 아이를 낳고 일 년간 봉사를 못나왔는데 매번 올 때마다 저에게 언니 안부를 물어보고 아이 사진을 보여드리면 정말 친 조카를 보듯이 예뻐해 주셨어요. 모이면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예요.

민정 자원봉사선생님들을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아요. 저희는 다른 동네에 살지만 우양 쌀 배달 봉사자들 중에는 마포구에 사시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그분들은 동네에서 슈퍼를 가다가도 출퇴근을 하는 길에도 어르신과 마주치곤 한데요. 쌀을 가져다드리는 날이 아니라도 어르신 댁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이따금씩 들러 안부를 확인하곤 하시나 봐요. 정말 이웃사촌이 되는 거죠.

아름 또 다른 매력이라면 주말에 할 수 있다는 점.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까 평일은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마포구까지 봉사활동을 오는 건 집 근처에서는 주말봉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우양이 저희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어서 감사해요. 물론 이것 때문에 우양 실무자분은 주말에 출근하셔야겠지만요.(웃음)

 

 

- 봉사가 주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직장인에게 토요일 늦잠은 포기하기 힘든 유혹 아닌가요? 혹시 나오기 힘들다고 느꼈던 적은 없나요?

민정 물론 처음에는 그랬지만 이젠 내 삶에 일과가 되었어요. 봉사를 한다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출근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듯이 매주 첫 번째 토요일에 어르신들을 만나러 오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한 달에 한 번 좋은 친구를 만나러 오는 설렘이 있어요.

 

- 쌀 배달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민영 봉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우리가 만나던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때 그 분은 혼자 지내시던 분이었고 연락되는 다른 가족도 없었죠. 그래서 우양 실무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그분의 빈소를 지켰어요. 그때 참 마음이 짠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름 우리가 방문하는 어떤 어르신은 매달 깨끗한 봉투에 얼마의 후원금을 준비하셔요.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처음 그 봉투를 받았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본인도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자신보다 더 어려움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돕는 모습이 감동이었죠.

 

 

- 마지막으로 우양 쌀 배달 봉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인가요?

민정 나눔의 순환. 우리는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고 어르신들은 다시 그분들이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게 되는 착한 고리인 것 같아요.

아름 음.. 한마디로는 못하겠어요. 우선 와서 봐야 해요. 딱 3번만 와보면 느낌이 오거든요. 맞지? 다들 느낌알지?

민영 정겨운 만남. 한 달에 한번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마음 따뜻해지는 날이에요.

아롱 배움. 앞으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몸소 보여 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배움의 기회에요.

 

- 앞으로도 우양 쌀 배달 봉사 계속 하실 건가요?

아롱 우양에서 주말프로그램을 접거나 우리가 결혼을 해서 아주 멀리 이사 가지 않는 한 계속 하지 않을 까요?

민영 그러게요. 언제까지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쭉 같이 할 거지? 어때?

 

- 이 인터뷰가 나가면 쉽게 그만 두기도 어렵겠어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름 우리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런 기회 아니면 우리끼리도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 나눌 일이 없었으니까요.

민정 그러게요. 우리끼리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도 참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이날 아름, 아롱 자매가 속한 팀에서 찾아뵙기로 한 가정은 총 8가정이었다. 방문하는 가정마다 두 자매는 특유의 넉살과 친근함으로 늘 사람이 그리웠던 어르신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아쉬운 만남을 마칠 즈음에는 달력에 크고 빨간 동그라미로 다음번 찾아올 날을 약속하고서 집을 나섰다. 수많은 만남 중 서로에게 이토록 삶의 활력이 되는 관계가 또 있을까? 민정, 아름, 민영, 아롱 이 네 자매와의 만남은 우양에게도 2014년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배움의 기회였고 정겨운 만남 이었고 나눔의 기운이 순환되는 시간이었다. 와보라 하지 않던가. 정말이다. 만나보면 느낄 수 있다. 지금 와보라.

 

 

 

 

우양재단 옥상에는 ‘즐거운텃밭’이라 이름붙인 상자텃밭이 있다. 매년 농부가 바뀌면서 텃밭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었지만 2013년은 유난히 싱그럽고 활기가 넘쳤다. 우양재단 옥상텃밭을 거친 역대 농부 중 평균연령이 가장 낮았던 고딩 농부들은 옥상텃밭의 흙 만지기를 놀이터에서 흙 놀이 하듯 즐거워했다.

텃밭의 작물을 친구삼아 함께 자라던 성미산학교 학생들은 총 12명이다. 그 중 3명의 학생이 이들을 대표해 수다같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텃밭농사를 시작한 후 매일 일기예보를 챙겨보게 되었다는 18살 공혜원(이하 혜원),

도시농업을 통해 마을에 즐거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17살 문정범(이하 정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김장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16살 신지인(이하 지인)이 그들이다.

 

- 너희 세 명이 인터뷰에 자원했다고 들었어.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워.

지인 우리가 일 년 동안 우양텃밭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야. 이정도 인터뷰에 응해주는 건 어렵지 않아.

 

- 그럼 간단한 소개 부탁해.

혜원 우린 성미산학교에 다니고있어. 10학년과 11학년으로 최고학년이고 나이는 조금씩 달라. 우린 올해 우양재단 옥상에 있는 ‘즐거운텃밭’을 가꾸었어.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과목의 주제가 ‘먹을거리’였기 때문이야.

 

- ‘먹을거리’에 대한 프로젝트? 조금 더 설명해 줄래?

지인 우리 학교 슬로건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린다”야. 그렇기 때문에 ‘자립’이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해. 자기스스로 자신의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것은 자립에서 중요한 부분이야.

혜원 그래서 우리학교에서는 초등학교 4~5학년부터 밥살림이라는 과목으로 농사를 접하게 돼. 7학년 때는 농장학교에서 1년간 농사를 짓고 오지. 그 후 8~9학년은 상암동에서 나대지텃밭을 가꾸고 10~11학년은 옥상텃밭을 가꾸기로 한거지. 농사에 대한 흐름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매 학년 조금씩 다르지만 농사를 짓고 있어. 고학년이 될수록 우리가 사는 도시에 농사를 접목할 수 있는 도시농업을 경험해. 그래서 우리도 우양재단 옥상텃밭에서 농사를 지었지.

 

 

- 그렇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농사에 대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 거야?

정범 농사에 대한 정보는 주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얻어. 물론 다른 도시텃밭들을 방문하기도 했지. 같은 반 친구들이 각자 얻어 온 정보를 서로 나누면서 함께 탐구하는 편이야. 따로 우리에게 농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없어.

혜원 사실 엽집(성미산학교 10,11학년 담임교사)도 농사를 잘 몰라.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야 우리랑 비슷하지. 그래서 함께 알아보면서 농사를 배우고 있어.

 

- 다른 도시농업 단체들을 방문하는 건 재미있는 경험이었겠어. 도시농업 선배들을 만나보니 어때?

혜원 가장 놀란 것은 도시에서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였어. 이전에는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 그들은 도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무척이나 잘 살고 있어.

정범 그들도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에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감이 생겼어. 물론 우리와 운영하는 방법이 달라. 도시 안에서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농사도 짓고 화분도 분양해. 쌈 채소가 잘 자란 날에는 모여서 파티도 하지. 농사를 통해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기는 거야. 나는 이런 운영방법이 좋다고 생각해. 나도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 이전에도 농사에 관심이 있었어?

지인 나는 원래 지리산에 살았어. 아직도 부모님은 거기에 살고 계셔. 그래서 집 앞 텃밭에서 고추도 따먹고 상추도 따먹고 하는 건 그냥 일상이었어.

혜원 나는 전혀 아니야. 농사는 시골에서 짓는 것이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중학교 때 처음 성미산학교에 와서 농사를 접해 보면서 도시농업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어. 이후에도 베란다나 상자텃밭을 이용해서 내가 먹을 만큼의 채소는 직접 재배해서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

 

 

 

-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알고 있어.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지은거야?

정범 우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퇴비를 직접 만들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어. 계란껍질비료와 오줌액비는 거의 매주 사용했고 음식물찌꺼기로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어.

혜원 음식물찌꺼기는 학교식당에서 구했어. 음식물찌꺼기를 받아오면 우선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무게를 재고 음식물찌꺼기 퇴비를 만드는 상자에 옮겨 놓지. 처음에는 왠지 찝찝하고 냄새도 나고 귀찮았어. 지금은 익숙해져서 어렵지 않아.

지인 우리가 학교 뒷마당에 나무상자를 하나 묻어놨거든 거기에 음식물찌꺼기와 흙, 낙엽을 번갈아가면서 켜켜이 쌓는 거야 그걸 3개월 정도 묵히면 음식물이 썩어서 퇴비가 되는거지.

 

 

 

 

- 퇴비를 직접 만드는 것만으로도 정성을 많이 들였겠다. 옥상텃밭농사를 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 또 무엇이 가장 즐거웠어?

정범 나는 잡초를 뽑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 우리 텃밭이 옥상이다 보니 한여름에는 햇살을 직접 받을 수밖에 없는데 다시 생각해도 잡초 뽑던 그날은 참 끔찍했어. 물론 수확의 기쁨을 위해 그때를 다 참아내는 거지. 이번에 수확한 무와 파를 집에 조금씩 가져갔는데 엄마가 그걸로 무국을 끓여주셨거든. 내가 기른 작물로 온 가족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 최고였어.

지인 나는 매주 텃밭 가꾸기가 끝나고 청소하는 시간이 좋았어. 청소를 마친 후의 개운함이 좋거든. 심지어 수확하는 날에도 수확 후 쌓여있는 작물을 보는 것 보다 청소 후 깔끔해진 옥상텃밭을 볼 때 더 기분이 좋았어.

혜원 우리가 올해 우양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은 대부분 독거어르신께 드렸잖아. 사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한참이나 논의를 했어. 우리가 농사짓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는 건데 우리가 먼저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였지. 그런데 우리가 가져간 채소를 보고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런 고민은 사라졌지. 내가 먹은 것만큼 배부른 기분이었어.

 

 

- 일 년 농사가 무사히 끝났네. 다들 고생했어. 마지막으로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지인 나는 이제 어떤 요리를 먹던지 채소를 더 맛있게 먹게 되었어. 특히 김치! 한국 사람에게 김치는 정말 중요한 음식이잖아. 그런데 점점 김장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 다들 사먹고 있잖아. 이번에 내가 농사지은 채소들로 김장을 해보면서 생각한건. 나는 한국 사람으로서 최소한 김장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거야.

혜인 지금까지는 나의 먹을거리만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우양텃밭을 가꾸면서 어르신들에게 농사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또 나누어 드리기고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거든. 내가 먹고 싶은 좋은 먹을거리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어. 또 그분들은 농사와 삶에 대한 지혜가 많은 분들이니까 그것을 잘 물려주고 또 잘 배우는 것이 무척이나 소중한 일 같아. 앞으로도 그런 만남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정범 이제 농사를 시골에서만 짓는 거라는 고정관념은 없어. 도시에 사는 우리도 자연스럽게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학교를 졸업하면 꼭 그렇게 해보려고.

 

 

 

이들은 삭막한 도시 빌딩 옥상에 흙을 풀고 맨손으로 화분을 보듬고 조심스레 씨앗을 심었다. 씨앗들이 모두 죽었는지 걱정될 즈음 싹이 났고 더운 여름을 거쳐 잎을 무성하게 키웠다. 농부를 닮아 푸르고 싱싱한 채소들은 독거노인들의 반지하방까지 향기로운 흙냄새를 풍기며 전해졌다. 그 여세를 몰아 가을 내내 배추, 무, 파 등 김장 재료들을 길러내더니 그 귀한 재료들로 김장까지 깔끔히 해치워 버렸다. 이 김치는 깊어진 겨울 독거노인들의 밥상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씨앗이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고 마침내 밥상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그리고 배고픈 누군가에게 든든한 하루를 선물했다. 어리게만 보였던 이들은 어느새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일을 넉넉히 해내고 있었다.

 

 

그는 매주 금요일이면 홍대 거리로 향한다. 금요일마다 홍대거리에 모이는 청년이 한두명이겠냐만은 그는 조금 특별하다.

“안녕하세요. 독거어르신들을 돕는 우양재단에서 나왔습니다. 잠시만 이야기 들어보시겠어요?”

조금 일찍 다가온 겨울날씨 때문에 금세 손도 입도 얼어버린다.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우양재단 캠페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윤희민씨(26)는 매주 홍대 거리에서 후원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캠페이너를 하겠다고 우양사무실에 왔을 때에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는 유독 재단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 우양재단의 청년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캠페이너 활동을 시작했다.

“그땐 그냥 재미있는 일처럼 보였어요. 재단 선생님들과도 친해지고 싶었고 또 다른 청년들을 만날 것도 기대되었고요. 제가 원래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나간 첫 캠페인은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의 연속이었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인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 재단을 설명하는 일이나 후원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능력 이상의 일이었어요.”

 

 

 

나눔에 대한 새로운 생각

 

시작이 어떠했든 캠페인 활동은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얼마를 벌었는지 머릿속으로 세어보면서 갔어요. 그런데 캠페인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오늘 만났던 후원자, 예비 후원자들 그리고 우리가 도와드리려는 어르신들과 탈북자들이 생각나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찾지 못했었죠. 캠페이너 활동을 통해 그것을 실천할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이건 돈을 받고 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캠페이너 활동에 대한 그의 생각은 캠페인을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가 만나는 예비 후원자들에게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동일하게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것을 용기 내어 실천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 지금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양재단은 가능한 정기후원을 추천하고 있다. 정기후원은 일시후원에 비해서 요청하는 입장이나 후원을 결심하는 입장에서 훨씬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분들에게 계획적이고 안정된 도움을 주려면 정기후원이 필요하다.

“간혹 저희의 설명을 듣고 당장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시려는 분들도 있어요. 물론 그 마음도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저희가 모으고 싶은 것은 돈 뿐 만이 아니에요.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꾸준한 관심이죠. 정기후원을 통해 그 마음들이 오래 지속되고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시후원으로 큰 금액을 내는 것보다 작은 금액을 정기 후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는 꾸준히 마음을 함께 쏟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외된 이웃들에게 후원금만큼 필요한 것이 따뜻한 관심임을 알기에 어려워도 포기할 수 없다.

 

 

 

나는야 우양 캠페이너

 

그가 후원캠페인에 열정을 가지게 된 데는 우양캠페이너팀에 대한 깊은 애정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우양캠페이너 친구들과 동지애같은 것이 생겼어요. 캠페인을 하면서도 언제 거들어주고 또 언제 맡겨줘야 할지 알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쿵짝이 잘 맞아요.”

실제로 우양캠페이너들은 팀워크가 좋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캠페인에 나갈 때뿐 아니라 캠페인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과정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후원안내를 위한 문구를 짜는 일부터 캠페인을 위한 핸드파일을 제작하고 부스를 설치하는 일까지 캠페이너의 의견이 반영 되요.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함께 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도 마음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2013년 캠페이너 활동은 이제 곧 마무리가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묵직한 행복감을 맛보게 된 시간이었다. 교회 전도사 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동시에 해야 하는 신학대원생 윤희민씨. 내년에는 더 바빠질 예정이지만 캠페이너 활동은 계속 할 생각이다.

“올 한해 캠페이너 활동을 하면서 저 스스로 ‘나눔’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나눔이라는 게 단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일시적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요. 한번 해보니 내가 행복해져요. 그러다보니 계속 하게 되고요.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그냥 지금 시작해보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내년에도 전 쭉 함께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