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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년도 농어촌 사모초청 성지순례 답사기 - 터키 편
  2. 2013년도 농어촌 사모초청 성지순례 답사기 - 그리스 편
  3. 변화를 만들어내는 여인, 사모

 

그리스를 지나 터키 속으로, 소아시아 7대교회를 방문하다.
그리스의 멋진 해변과 올리브나무에 익숙해질 무렵, 버스는 어느새 키피 - 입살라 국경을 통해 터키로 향했습니다. 터키는 국토의 97%가 아시아권에 속해있고, 3%가 유럽대륙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써 예로부터 동서양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스·로마, 비잔틴, 이슬람까지 5,000년 역사의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소아시아 7대교회의 터전을 밟을 수 있는 역사의 땅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순례단은 소아시아에서 제일 큰 도시였으며 그 유명한 두란노 서원이 자리해있는 처음사랑을 잃었다고 책망 받은 에베소교회가 자리한 에베소 유적지,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끌어와 사용했으나 그 거리가 멀어 미지근한 물을 사용했던 곳으로 신앙 또한 이러한 미지근한 물과 같아 차지도 덥지도 않다 책망받은 라오디게아교회 유적지, 지진이 많아 땅을 파면 족족이 유물이 발굴되는 빌라델비아교회, 사치와 향락의 늪에 빠져 실상은 죽은자라고 책망 받은 사대교회, 잘못된 자비로 발람의 교훈을 지킴으로써 책망받았던 버가모교회, 그리고 일정과 동선이 맞지 않아 방문하지 못하고, 설명으로 함께했던 이방 여선지자 이사벨을 용납하여 책망 받은 두아디라교회, 유대인들의 정착지로 기독교인들의 핍박이 심했기에 후에 빌라델비아교회와 함께 책망 없이 위로와 권고를 받은 서머나교회까지 소아시아7대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풍족함과 음란함 가운데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황과 그로인한 책망, 회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말씀을 지키고 전도에 힘썼던 믿음의 선진들의 발걸음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데린구유 지하도시와 파샤바 계곡, 괴뢰메 동굴 등
종교탄압을 피해 지하와 동굴에서 지켜온 신앙과 마주하다.


우리는 버섯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연출하는 카파도키아의 파샤바 계곡과 최대 30,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지하도시 데린구유를 방문했습니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지혜로움은 역시나 놀라웠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들어와 교회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와인 저장고를 축조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됐다고 합니다. 이곳의 축조과정을 수치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10만여명이 30여년을 일해야 만들 수 있다는데요, 이곳의 환기 시설은 아직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손길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밖에 지진으로 인해 변형된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산지에 동굴을 파고 이곳에 숨어서 신앙을 지킨 많은 신앙인과 수도승이 이루어낸 파샤바․비둘기 계곡의 모습, 그리고 비둘기 변을 이용해 그린 프레스코 성화 등을 바라보며 그들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쉼, 그랜드 바자르에 들러 두 손을 가득히. 
12박 14일의 여정의 중반 쯤 왔을까요? 많은 성지들을 둘러보는 동안 신앙은 성숙해가지만, 마음과 다르게 몸은 조금씩 지쳐갑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마침내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잠시 굽었던 허리를 펴고 맑은 하늘을 봅니다. 우리와 다른 신앙 이슬람을 믿는 터키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그 신앙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있는지 잠시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가면 꼭 둘려봐야 한다는 그랜드바자르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그랜드바자르는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는데요. 18개의 출입구와 4000여개의 상점이 즐비해 있다는 이곳에서 순례단은 시간관계상 하나의 출입구 밖에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시의 모습과 오색빛깔 장신구와 식료품 등에 잠시나마 일행 모두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가서 전해 줄 선물들은 이제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에 순례단의 발걸음은 더욱 가볍습니다. 


 하지만 쉼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비잔틴 제국시대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건축된 성소피아 성당과 오스만 시대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성소피아성당 맞은편에 건축한 블루모스크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도시의 물 공급을 위해 지어진 지하물 저장고 속에 우상기둥들을 보며 당시의 신앙의 흐름과 대립 또한 느껴보았습니다.
묵직한 두 손,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는 벤구리온 공항을 통해 이스라엘에 도착했습니다. 긴 여정과 비행으로 곤한 순례단은 따뜻한 온천수가 함께하는 숙소에서 편안한 휴식을 갖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몸과 마음을 충전합니다. 남은 일정은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타이트하고, 조금 더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코리아를 외치며 기뻐하는 현지인들과 한컷>

 

2013 농어촌 사모초청 성지순례
농어촌 사모 예수님의 흔적을 사모하여 그곳에 가다.
평생을 충성된 종으로써 주님만을 섬길 것을 다짐하고 걷는 길, 그 길은 혼자가 아닙니다. 같은 길을 걷고, 함께 돌봄의 사역을 감당하는 이, 바로 사모가 있습니다.
우양재단은 작년 이맘 때 우양 농어촌미자립교회 목회자 90여명과 함께 성지순례 길에 올랐는데요, 함께하고 싶었던 사모님들의 마음을 아셨던 것일까요? 은혜가운데 올해에는 농어촌 목회자 사모님들을 모시고 성지순례 길에 올랐습니다. 작년과 조금 다른 것은 출애굽 여정이 아닌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여정과 예수님의 흔적을 따르는 여정길이 준비되었다는 것인데요. 마음속에 품었던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진 그리스와 터키의 곳곳을 누빌 생각에 밤잠도 설치셨다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했다죠? 게다가 예수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향하는 길은 평생을 꿈꾸어 온 일정입니다.

4월 14일 주일 저녁 인천공항 K18 집결지.
“첫 해외여행의 감격이랄까? 여권을 쥐는데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요.”
“넘치는 감사에 2주치 주보까지 출력해두고 달려왔어요.”


전국각지에서 커다란 짐 가방을 매고 온 사모님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입니다. 권역별로 삼삼오오 무리지어오시는 분들, 가족들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오시는 분들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는데요.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바쁜 시간, 한 편에서는 준비물품을 나누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잠시 짬을 내어 사모님들과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 사모님은 주일예배를 마치고 부랴부랴 아이들을 챙겨놓고 짐 챙길 시간도 빠듯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귀한 시간 허락하신 주님의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어 감사하는 마음가득 담아 2주간의 주보를 출력해 두고서야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으셨습니다. 해외여행은 처음이라는 한 사모님은 여권을 만지시는데 어찌나 손이 떨리시는지 꿈에 그리던 나라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셨답니다. 철저한 준비로 멋진 여정을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준비하는 이들은 생각합니다. 그 마음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졸음을 이겨봅니다.

도하국제공항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공항 착륙, 꿈에 그리던 그곳과 마주하다.
 유럽동남부 발칸 반도의 최남단, 지중해 연안의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눈부신 태양과 올리브 나무는 상상이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지중해의 맑고 푸른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수영하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냅니다.  

 순례단이 처음 방문한 곳은 3만 여개의 우상과 신전이 있었다는 아크로폴리스였습니다. 하늘 위를 올려다보니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파르테논 신전이 어찌나 높게 서있던지 그 위엄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사도바울은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요?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아레오바고 언덕은 아크로 폴리스가 더욱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선포하며 수많은 철학자들과 대립했던 곳입니다. 그곳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두 언덕을 잇는 길에 위치한 사도바울 비문은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다음날, 순례단은 사도바울전도여정의 동역자 마가가 중도 포기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고린도를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로 아테네를 능가할 만큼의 성장을 이뤘으나, 비너스 신전이 세워지면서 매춘과 음란행위 그리고 우상숭배가 번성했습니다. 동시에 사도바울이 수많은 훼방을 받으면서도 활발히 선교활동을 펼친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고린도 전도여행 길에  기사와 이적, 체험이 있었던 빌립보 유적지였습니다. 이곳은 복음을 선포하던 중 점을 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쫒아낸 일로 사도바울이 주인에게 고소당해 감옥에 갇히지만, 그 가운데서 옥문이 열리는 체험을 하고 바울이 도망친 것으로 알고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나타나 그와 그의 가족을 전도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자 자주색 옷감장사를 하던 여상인 루디아를 만나고 그녀를 전도하여 유럽최초의 교회를 세웠던 곳입니다.  
 그밖에 데살로니카에서 쫓겨난 실라와 바울이 전도에 큰 성과를 올렸던 베뢰아 지역,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초석들이 발견 되었다는 암비볼리, 바울이 데살로니키로 가던 중 잠시 들러 설교했다는 아볼로니아에 방문하였는데요. 특히나 아볼로니아 바울설교 처에 심겨져 있는 작은 표지석을 살피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사도바울의 열정을 생각하며 순례단은 잠시 찬양과 기도로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 많은 순교자를 낳고, 그들을 기리는 메테오라 산정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은 UNESCO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곳이자, 순례단으로부터 성지순례 기간 동안 가장 가슴을 부여잡고, 회개했던 곳으로 선정됐던 곳 입니다. 산에 오를 때만해도 맑고 청아한 하늘에 반하고, 멋진 기암괴석들에 반했지만 굳이 그리스정교회를 우리가 방문해야 하는 것인가 의아해하기도 했는데요. 순례단원들은 수도원 내부에 도착하자마자 이러한 생각이 너무나도 어리석었음을 이내 깨닫고 말았습니다. 기독교 박해를 피해 절벽위에 수도원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 수도원 내부에 그려진 수많은 성화 속의 순교자들의 모습은 안일하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도 불평불만이 가득한 우리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른 방식의 믿음이라고 여겼던 그분들의 순교와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기독교도 우리들의 신앙도 없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여인, 사모

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달았지만 이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안 가는, 모두가 기피하는 시골 마을에서 땅을 일구고, 어르신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작은 교회가 있다. 목사인 남편이야 신의 부르심에 조용히 응답했을 뿐이라 치자, 아내는 무슨 죄인가. 근데 어느 샌가 목사인 남편보다 더 마을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그 사람을 사모라 부른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에 안남시온교회는 작은 시골교회다. 성도라고 해봤자 장년 19명, 주일학교 10명이 고작이지만 24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 젊은 교인들이 나가면서 교회는 더욱 고령화 되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자 예배 장소를 소망하며 조금씩 주춧돌을 놓고 있다. 재정이야 말할 것도 없이 힘들고, 일이 진행되는 속도도 더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예배당에서 예배할 날을 생각하면 날마다 신이난다.

시골교회 사모는 하는 일이 많다. 마을의 경조사를 챙기고, 심방을 가고, 어르신들을 돌보고, 어려운 일을 당한 이들을 상담하는 일이다. 안남시온교회 김은미 사모도 늘 바쁘게 사역을 감당한다. 김은미 사모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주일학교 교사이다. 주일학교에 나오는 아이들 대부분의 부모는 아직 교회에 나오고 있지 않다. 실망할 일은 아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부모님을 전도하는 매개가 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골 아이들의 가정환경은 생각보다 심각한 경우가 많다. 안남시온교회에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6명, 그 중에서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3명이다.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은 언어가 거칠고 자기 자신을 “바보, 멍청이, 죽을 놈 이예요. “라고 학대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같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김은미 사모는 늘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음악, 핸드벨

지난 성탄 발표회 때 아이들과 함께 준비해서 발표한 핸드벨 연주는 아이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 발표회를 찾은 부모님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핸드벨은 매력 있는 악기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음악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함께 어우러져 한 곡의 음악을 완성한다.

“하나님께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음악을 통해서 치료하실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는 거예요.”

성탄 발표가 끝나고 나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 게임밖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핸드벨을 계속 배우길 원하는 것이다. 이 작은 악기가 아이들의 마음을 열었다. 김은미 사모는 핸드벨 연주가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안남면은 학원도 지역아동센터도 없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악기를 배우는 일은 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교회에서 모여 연습을 하기로 했다. 김은미 사모의 마음이 바빠졌다. 핸드벨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 김은미 사모가 레슨을 받아 직접 가르쳐야 하고 또 당장 핸드벨도 구입해야 한다.

시작은 뮤직벨로, 나중은 핸드벨로 창대하게

핸드벨은 3종류다. 뮤직벨, 핸드차임, 핸드벨이다. 그 중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뮤직벨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뮤직벨에 대해서 조사하던 중 대전에서 핸드벨 연주자로 활동하는 송재월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매주 1회 핸드벨 레슨을 약속 받았다. 이제 모든 준비가 됐다.

악기를 연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악기를 구입해야 한다. 핸드벨은 개당 30만 원이고, 핸드 차임은 120만 원 정도이다. 그중에 제일 싼 뮤직 벨은 20만 원 이면 사는데 그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김은미 사모는 우양재단 ‘사모님 자기개발 프로그램’에 핸드벨 레슨과 구입비를 신청해 뮤직벨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연주를 위해서는 핸드차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체계적인 연습과 교육을 통해 핸드차임, 핸드벨 등 상위 악기로 넘어가야죠. 그 때 되면 우양재단처럼 또 누군가의 도움이 있을 거라 믿어요.”

 

소망, 상상할수록 부풀어 오르는 무엇

김은미 사모는 벌써부터 꿈에 부풀어있다. 아이들과 함께 안남면 작은 음악회에서 연주하고, 겨울마다 안남면 마을 회관에서 공연하는 상상을 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 작은 악기가 변화를 가져올 거라 믿는다.

“핸드벨은 침체되어 있는 환경 속에 안주해 있는 저에게 도전이예요. 바라기는 이것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가 치료됐으면 좋겠어요. 또 믿지 않는 부모님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구원의 통로가 될 거라 믿어요.”

모두가 떠나버려, 소망조차 품을 수 없는 작은 시골마을이, 아이들의 조그마한 손에 들려있는 핸드벨을 통해 행복한 삶의 터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깊은 바람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우양재단 사모님 자기개발 프로그램이란?

농어촌 미자립 교회에서 삶을 던져 사역하는 사모님들의 자기개발을 돕고자 소정의 지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