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3 성지순례후기 2탄 [부강교회 김혜경 사모]
  2. 2013 성지순례후기 1탄_[봄길교회 김현미 사모]
  3. 2013년도 농어촌 사모초청 성지순례 답사기 -요르단 편

 

 

우양재단 농어촌 사모 초청 성지순례가 가져다준 기쁨들!

성지순례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우양재단을 통해 그 꿈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성지순례를 갈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꼭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생각하고 말했었는데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철모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이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염세주의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수줍음 많이 타는 소녀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으며, 바울사도의 전도의 열정에 도전도 받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수님이 증거 되길 원한다는 고백에 위로를 받으며, 나또한 어머님의 채찍이 고난이 아닌 기쁨과 믿음의 성장으로 여겨졌던 초 신자 시절을 그려봅니다. 그 시절에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 말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봉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대학에 낙방하고 약3여 년 동안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부흥회 기간에 “나 같은 사람도 신학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신학대학에 편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입학금을 책임져 주실 수 없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교회 언니를 통해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교회의 도움과 자식을 이기지 못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20살부터 해오던 소년원사역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남편 목사님을 만나 결혼하고, 지금의 교회가 있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준비 없이 그저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순종하여 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되었고, 수없이 많은 실수도 겪고, 수없이 많은 감사함도 고백하고 지금까지 만10년 동안 이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성지순례전 정의승장로님 부부의 메일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나님과 지금 나는 가까이 있는가? 사모라는 이름만 있고,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과 하나님께서 성지순례를 통해 어떤 열매를 바라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순례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리스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평안하고 역사의 숨결이 이곳저곳에 묻어 있는 곳 이였습니다. 가이드집사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졸음을 참아가며 고대의 그리스와 현대의 그리스에 흠뻑 빠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숨 쉬는 신화와 역사, 바울의 걸음이 떠올랐습니다. 아크로폴리스를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바라보며,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안타깝게 이야기하는 바울의 심정, 마치 미신을 섬기고 있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외침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린도 박물관 유적에서는 ‘투구’를 통해 ‘리더는 눈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일침과 ‘허리띠’ 진리의 띠를 단단히 맨 사령관의 모습, ‘방패’가 곧 병사 자신이여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자!는 성경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더욱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테오라 수도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정교회의 수많은 수도사들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 교회에서는 우리교회도 루디아처럼 물질과 봉사로 헌신할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유적지에서 함께 나눈 찬양은 남은 순례여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아름답고, 주님이 강한 성이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네압볼리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뒤로하고 바울사도과 동역자들을 부른 고요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가슴이 따뜻한 헬라사람들이 숨 쉬는 그리스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터키에서는 그 광활함에 놀랐고, 땅의 척박함에 놀랬으며, 이런 곳을 찾은 바울의 여정은 감탄 그 자체였습니다. 트로이유적지가 1기~9기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특별히 2기 때의 양식은 짚과 진흙을 섞어서 만들어서 지금도 그곳에 벌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생명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가장 약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에베소지역의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의 현장은 참으로 놀랍고, 거대한 원형극장에서 설교했을 바울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그 거대한 울림, 그 거대한 걸음걸음.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가 로마시대의 기획도시로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을 겸비한 고대의 의식과 사상과 기술과 문화에 놀라울 따름 이였습니다. 특별히, 라오디게아교회의 온천수를 끌어 들인 수로와 수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교회가 미지근하여, 게으름으로 인해 책망 받았다는 말씀을 들으며,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도 책망하시는 것은 아닐까? 너무 느리게 성장한다고, 혹은 게으르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10년의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이 넘쳐나는 콘야에서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긍휼의 은총을 그곳에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데린 구유의 기가 막힌 구조와 갑바도키아의 장관은 지금 우리교회의 구조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오직 신앙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열정과 지혜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스탄불, 내가 이 땅을 밟아 보다니?” 그냥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람선은 우리 모두를 소녀로 돌아가게 한 듯합니다. 그 바람, 물결, 풍경, 웃음, 몸짓 그 어는 것 하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2차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이레네교회의 역사와 이슬람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터키, 넓고 다양하지만 여전히 공허한 나라, 그리고 기하학이 곳곳에 넘치는 나라, 이곳을 바울사도께서 전도지로 선택한 이유와 그 힘든 여정을 그려보며, 여전히 이슬람 문화권에 젖어 있는 그들의 삶이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님 당시의 흔적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 종파의 집합소가 되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주님은 한분이시니까요.
  가이드 목사님의 20여년이 지난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 전해지는 살아있는 말씀들이 우리들을 웃게도, 울게도, 깊이 생각하게도, 결의 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기 전 “21세기의 십자가의 길이다. 한눈팔지 말라” 하시며 함께 부른 찬양과 그 길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곧 예수님이 나오셔서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호통 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사에 눈이 번뜩이는 사람들, 지금 우리들의 교회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가판대만 늘어놓지 않았을 뿐 그들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베드로통곡교회에서는 생명의 물 생수가 강같이 흐름은 성령의 역사, 즉 회복의 역사이며, 말씀이 곧 생명의 역사임을 통해 성경의 소중함을 더욱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불태우기 전에 죽지 않는 이천년 전의 감람나무가 예수님의 말없는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언의 증인들. 그 자태가 참 좋았습니다. 쿰란공동체에서는 신앙을 지켜가던 그들에게서 멀리보이는 느보산은 모세가 죽은 장소이며,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곳이고, 모세를 통한 지도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 지도자상은 온유함(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나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있다.), 엎드리는 자세(원망하는 사람들 앞에 엎드림),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다시 회복하려면 죽을힘을 다해도 어렵다.)는 것 이였습니다. 길가 언덕에서 양이 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을 키울 때 염소를 반듯이 함께 키운다고 합니다. 더울 때 붙는 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이고, 하나님의 교회도 양과 염소가 있고, 염소 같은 성도는 감당하려하지 말고 양을 지키기 위해 보냈다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맡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고개를 숙이고 때를 지어 다니고, 염소는 고개를 들고 다니며, 이런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염소는 목사를 기도 하게하는 역할임을 잊지 말고, 지도자는 평안할 때 기도하고 문제가 생길 때는 평안히 하늘을 의지해야 함을 귀띔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모의 사명의 방향성을 잡고,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요르단. 모세의 숨결이 살아 있고, 사해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느보산의 광경을 통해 모세의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4일이라는 긴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깨달음은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숫자와 상관없이 손끝 닿는 사람들  한명이든, 두 명이든,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사모로써 그래도 책망 받지 않게 잘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움추렸던것을 활짝 펴고,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양육해서 부흥이라는 열매를 원하시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전도하는 이유를 이스라엘 가이드목사님께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재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십자가의 군대가 되게 하기 위함에 초점을 맞추어 이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는 문명의 중심 속에 있는 곳으로써 철학, 수학, 천문학, 신학등 다양함에 대한 통찰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그들, 터키의 광활함과 기하학 속에서는 바울의 기나긴 여정과 척박한 땅이기에 올리브를 자라게 하는 힘 이를 통해 수많은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흔적들을 보며, 사모로써의 역할에 대한 자리 매김을 얻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 대신 사모님들의 왁자지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긴 여정에 피로가 쌓였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깔깔깔, 하하 호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위를 나는 긴 여정은 하늘도 지척에 있고, 태양도 손닿을 듯 했습니다. 곧 땅 내가 한발 한발 내딛어서 걷고, 뛰어야 하는 나의 삶의 자리로 가는 것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성지순례의 감동과 감사를 잊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하고, 명철한 지혜로 사는 삶을 지속해야 하리리라 다짐해 봅니다. 기압차로 인해 귀가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과 나, 상대편과 나,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사모의 역할, 성도들의 영적 어머니!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기도의 어머니인 삶의 자리에서 즐거움과 감사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함께한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시고, 전도의 열정을 품을 수 있는 열매를 주신 것 고맙습니다. 하나님! 우양재단을 통해 이 좋은 인연을 주신 것 참 감사합니다.

 

 글. 부강교회  김혜경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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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봄길교회 김현미 사모(사진에서 왼쪽)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성지순례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양재단의 사랑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4년 전 성지순례를 열망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출발을 앞두고는 신혼여행 때보다 더 흥분되고 기대하는 나의 모습 때문에 혼자 웃곤 했는데 어느덧 12박 14일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평소에 이스라엘만 생각했었는데 그리스와 터키까지 갔고, 생각지도 못했던 생소한 그리스와 터키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리스의 아테네, 그곳에 ‘아레오바고’ 언덕과 파르테논 신전이 아래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찬란하게 금으로 둘러싸인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을 신으로 섬기고 철학과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들에게 작은 언덕에서 외치는 바울의 목소리는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을까. 그의 소리보다 많은 사람들의 조롱 소리가 바울을 짓눌렀을 것이다. 세계가 모두 알아주는 유네스코 1호의 명성만큼이나 바울의 마음은 아팠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첫마디의 고독한 외침. 지금의 우리는 그에 비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결단할 수 있게 한 곳. 메테오라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너무나 웅장한 바위위에 수도원 건물들이 있었다. 우뚝 솟은 바위들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런 바위위에 세워진 수도원 교회. 동방 정교회를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멋진 성화들이 가득했다.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그림들이 교회 안에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순교자의 그림들. 너무나 잔인하게 오랫동안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순교자들. “고백할래, 안 할래” 계속되는 갈등을 하게 한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이 ‘나도 이렇게 순교할 수 있을까?’였는데 실제로 그림들을 보며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을 본받아 나의 신앙을 지켜나가야지 하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을 잊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 터키의 데린구유,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지하도시. 깊이 55미터, 8층이나 되지만, 박해를 피해 떠나온 그들만의 작은 세상, 세상과 분리를 선언한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땅속에서 바위 속에서 그들만의 지혜와 방법으로, 대단하고 용감하다. 정말 경이롭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없는듯 하지만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또 한 곳 정말 멋진 캅파도키아, 버섯모양의 바위로 유명한 곳, 초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 살았던 신앙마을, 박해를 피해 멀리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 산 곳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괴뢰메’ 동굴교회는 수도사들이 살았다고 한다. 교회 안에는 아직도 벽화가 색을 발하며 그대로 남아있다.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만들어진 웅장하고 특이한 바위들이 신앙의 보금자리였다. 그들은 빛의 역할을 감당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빛과 소금, 이제 분명히 그 역할을 알았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터키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한 곳 에베소, 이곳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만 오천 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 목욕탕, 분수, 화장실, 아데미 신전 그리고 최신 유행의 시장, 상점, 광장, 커다랗게 박혀있는 길거리의 돌들 모두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문화가 발전한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들이 현재의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 옆의 건물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돌들 밖에 없지만 그 당시의 모습으로 세워져서 나를 맞아 주는 것 같았고 나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얻은 클레오파트라가 된 듯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그곳을 걸어 다녔다. 얼마나 흥분되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한편으로 ‘셀수수 도서관’에 가서야 또한 깨달았다. 이처럼 웅장한 곳이 ‘두란노 서원’인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었단다. ‘두란노 서원’은 지나온 작은 상점들 중 하나일 것이란다. 그 작은 책방에서 바울은 한 사람씩 두 사람씩 만나 복음을 전한 것이다. 바울의 수고를 생각하며 나 또한 성실히 바울의 사명을 나누어 가지려 한다.


  그리고 성소피아 교회에 갔다가 내가 가장 궁금해 했던 이슬람 사원에 갔다. 한남동의 블루모스크를 볼 때 마다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곳 현지에서 갈 수 있다니 정말 기뻤다. ‘히잡’을 쓰고 신발은 봉지에 담고 영적으로 너무 눌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하면서 들어갔다. 건물은 너무 아름답고 웅장했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그들  이제는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지순례를 통해 지식과 성경과 세상의 지경이 넓혀졌지만 가장 크게 기도의 지경이 넓혀진 것 같다.
  드디어 이스라엘, 예수님의 흔적을 느끼며 들어간 이스라엘은 척박함과 메마름 이었다. 그리스나 터키에 비해 돌들뿐이었다. 환경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너무나 달랐다. 감람산, 죽음을 알고 기다리는 시간,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나 또한 다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감사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십자가의 길, 지금은 복잡한 거리가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그 길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늘 눈물이 난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곳, 그 피가 우리를 정결케 했다.
  통곡의 벽,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갖고 이곳을 찾는다. 벽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 그 속에서 누가 진짜일까?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땅을 밟고 곳곳을 다닐 때 마다 눈물이 솟아오른다. 이스라엘은 기념교회가 많다. 이러한 교회들 보다는 시험산, 기드론 골짜기, 쿰란, 므깃도 등 광야와 산지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꼭 예수님의 마음 같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멜산의 엘리야, 그곳에서 집착하며 사진을 찍어대며 엘리사처럼 능력을 구했다. 선교사님이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는 성경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전 진리를 얻었기에 지금도 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그래서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씀에 적극 공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한국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고 또한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한다.  ‘느보산’의 모세처럼 이제는 겸손히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며 나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번 순례를 통해 성큼 자라난 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글. 봄길교회  김현미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

순례의 마지막 길, 모세의 마지막 순간 느보산에 오르다.
성지순례의 마지막 길은 요르단에 위치한 느보산이였습니다.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기착지이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내가 내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던 출애굽 1세대와 모세가 바라보기만하고 끝내 숨을 거두었던 곳입니다. 느보산 꼭대기에 세워진 모세의 상징물 놋뱀조형물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변함없는 순종과 믿음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는 묵상에 잠겼습니다.

참 회복, 수많은 벗(友)을 만나다.


‘쉼과 회복’을 가득 가득 담아 풀어놓았던 이번 성지순례의 여정을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사의 고백들과 함께 벌써부터 잊을 만하면 나오던 집과 사역지에 대한 걱정과 이야기보따리가 무럭무럭 솟아납니다. 한편으로는 14일 이전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순례의 여정을 떠나고 싶다며 웃음 짓는 분들도 꽤 많이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순례여정의 큰 목표점이었던 ‘회복’을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 우리 모두의 기분도 무척이나 상쾌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제 또 삶터로 돌아갑니다. 이곳에서의 행복과 감사는 어느새 잊고, 또 다시 아플 수도, 슬플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피부로 느낀 그 숨결, 가슴으로 받은 은혜는 앞으로의 사역의 길에 큰 위로와 안식, 평안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지순례 여정동안 함께한 많은 인연들을 통해 그 동안 혼자라고 느끼고, 외로움에 침묵한 시간들에서 벗어나 함께 하고, 회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지순례단원들은 우리 모두 행복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12박 14일 일정동안 무사 무탈하게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염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