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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쓰기교실2] 그 그물망 정말 촘촘한가요?
우양인 공포의 글쓰기 교실이 이제 마지막 수업만을 남겨놓았습니다. 글쓰기에 일취월장 같은건 애당초 꿈꾸지도 않았거니와 그저 출석만 잘해서 귀동냥으로 주워 들은 거나 잘 챙기자 했는데 웬걸요? 글의 뼈대를 잡는 구성도 점차 날가로워지고, 문장 표현도 좋아지고, 특히나 남의 글 지적하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더라고요^^

오늘, 글쓰기 강좌에 순정을 다 바친남자, 바로 순정댄디님의 글 한편 소개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글이네요.
우리 순정댄디님. 힘 내시고요! 꽃피는 춘삼월 드라이브 함 시켜주세요~


그 그물망 정망 촘촘한가요?

글쓴이 / 순정댄디

나는 온라인 후원 담당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효과적인 후원개발을 위해 온라인 모금 콘텐츠를 매달 제작하고 있다. 이 모금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례가 필요하다. 사실이 기반 되어야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는 콘텐츠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오늘 살아있는 콘텐츠를 위해 적합한 주인공을 직접 만났다. 초기면접과 사정기록을 통해 그려본 주인공의 모습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다. 왜 이 주인공은 이토록 처참해야했는가.

그릇된 복지정책 + 부양 의무 불이행 = 내가 만난 주인공

솔직히 사회복지사 특성상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 그 때마다 이들에 대해 복받치는 감정은 이제 담담해질 때도 됐지만, 매번 똑같다. 그들이 왜 이렇게 방치되고 처참해야하는가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가 난다. 부양의무자가 있어서 수급자격에서 탈락된 그들, 바로 독거노인이다. 연락 끊어진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가족관계증명에 기재되어있는 자식들 때문에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양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식의 죄를 오히려 자신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그들은 수급노인들 보다 더 비참한 여생이다.

솔직히 분노의 방향은 자식이 아니다. 모순된 복지 정책에 분노를 더 두고 싶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수와 자질 부족, 그릇된 수급대상자 선정기준, 부적절한 수급자 등 국민기초생활수급권에 대한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이 같은 문제점과 부양 의무 불이행 등이 서로 시너지 되어 지금 내가 만난 주인공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중심 잃은 기준

2011년 7월 이 부양 의무자에 대한 확인조사가 있었다. 이 조사로 수급자 10명 중 1명꼴로 수급자격을 잃었다. 수급자격을 잃은 2만 8,339가구 중 노인 가구가 1만 713가구이다. 이 가구 중에 한 가구가 내가 만난 주인공인 셈이다. 여기서 부양의무자란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하며, 법령상 20세 이상 54세까지의 남자와 20세 이상 44세까지의 여자가 여기에 해당 된다. 다행히 사회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흐르자 2012년 국민기초생활수급보장 기준이 완화될 전망이다.

현행 부양의무자 기준에서는 수급권자가 1인 가구이고, 부양의무자가 4인 가구일 경우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월266만 원을 넘으면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이번에 완화된 기준에 따르면 위 경우의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월 379만 원 이하면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가족이 있을 경우 가족관계 단절을 조사하는 절차에 필요한 세부지침이 마련 된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선정 때 적용하는 기본재산 공제액 기준도 도시 규모에 따라 세분화해 기본재산 공제액 차이로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문제점도 개선될 전망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직 시행 전이니 지켜봐야 한다. 왠지 조금 이상하기 때문이다. 급히 기준을 완화하려는 점이 수상하다. 수급자격을 탈락 시킨 지 얼마 전인데 말이다. 아마 큰 선거를 두 개나 앞 둔 상황이라는 점도 무시 못 하겠다.

나가며

선거철이다. 이곳저곳 지하철 입구에서 아줌마들이 총선에 출마하는 정치인 명함을 나눠준다. 다들 복지 그물망을 촘촘하게 하겠다 한다. 헌데 그 그물망으로 고래를 잡을 것인지 멸치를 잡을 것인지 두고봐야할 일이다. 바로 잔여적 복지와 보편적복지의 상충된 문제다.

이것들에 대해 논쟁으로 머리 아프지만 다만 나는 소망한다. 점차 내가 만난 콘텐츠 사례 주인공, 그리고 그와 같은 이들이 다시금 웃었으면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복지 그물망에서 세어나가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