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평화교육 ③

살아있는 평화의 보고, 합천의 작은마을 ‘도토리 공부방’

 

도토리의 꿈

 

 

초계마을, 일상으로의 초대

지난달, 한국 불교의 성지라 불리우는 해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찰들이 모여있는 합천에 다녀왔습니다. 평화교육 외에도 공부방을 운영 중인 교회와 마을 분위기도 함께 전해볼까 하는데요. 피폭자의 60%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올해 3월 비핵평화대회가 열리기도 했던 합천! 우리가 향한 곳은 사찰이 아닌 작은 시골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공부방’입니다. 봄의 절정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서울에서 합천까지 버스로 네시간 반, 다시 택시로 30분, 들어가는 길목 곳곳이 생각보다 외진 곳이었습니다. 목적지 부근에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우리가 보아왔던 교회가 아닌 곧 홍대 까페거리에서나 나올법한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도토리의 꿈을 꾸고 있는 검정 두건의 바리스타 한분을 만났습니다.

 

 

도토리의 꿈

‘목사님은 어디계세요?’라고 운을 뗄려는 찰나, “제가 전화드렸던 목사입니다” 라고 태연하게 아이스 까페라떼 한잔을 말아주시네요. 그 너털웃음에 종일 쌓였던 피로가 녹아내립니다. 목사님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9개월 전부터 “초콜릿 & 도토리” 라는 까페를 운영 중이신데요. 40대 초반인 그는 한남동 출신의 서울토박이, 초계면에서 서울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일 듯 합니다. 또한 프로강사 못지않은 말솜씨가 대면하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저기 도토리란 이름이 눈에 띄는데요. 이곳 아이들의 꿈이 도토리처럼 땅에 떨어져 쓸모없이 되는 것이 아닌, 거름 등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잘 쓰임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힌트를 얻었다 합니다. 시골 아동, 청소년들을 위해 개설한 공부방 이름도 ‘도토리와 친구들’입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청소년진흥센터에서 인증을 받았고 감리회 지정 2호 어린이 희망의 도서관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네요. 작다고 얕볼 수 없습니다. 고3 수험생 실과 중고등학생 실은 분리되어 있고, 목사님 내외와 지역의 학부모님들이 돌아가며 자율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둘러보면 서울에서 독서실용 책상을 별도로 공수해 온 그 정성이 느껴지네요. 교회 출석과 상관없이 개방된 이곳에서 시골 학생들은 쉬며,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케아가 뭐에요? 고물이 보물로

사실 시골 한 복판에 다방이 아닌 이케아 풍의 까페라니, 신선했습니다. “목사님, 이케아 스타일을 좋아하시나봐요?” “이케아가 뭔가요?" "이거 다 동네랑 가까운 대구에 돌아다니면서 주어온 것들이에요!” 놀라웠습니다. 각지에서 모여든 고물들이 시골까페에서는 보물로 바뀌다니. 1박2일 내내 아름답게 수놓아진 고물들의 향연이 눈과 마음에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한편으론 수입이 전액 공부방 운영과 지역아이들 도서구입에 들어감에도 손님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는데요.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도 “커피한잔으로 마을사람들 등골 빼먹으려고 그러는교?” 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답니다. 사실 다방에 비해 서비스가 부족해서 그런지도:)

 

 

목사님이 고물 수집에 일가견이 있는 건 하루에 10명도 찾지 않는 까페 바리스타보다 실제 수입이 되는 본업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고물상’! 하지만 먼저 있던 지역 고물상들의 영업범위를 침해하진 않는 경영윤리가 있습니다. 정해진 날에 몇 몇 거래처?에서만 수거를 하신다고. 업계에서는 헌옷이 고가로 인정받는다기에 집에 쌓인 헌옷들을 보내드리기로 약속도 드렸습니다. 동네 다른 고물상에서 힘겹게 입씨름을 하여 얻어온 네바퀴 리어카는 도토리 고물상 개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어찌나 좋았던지 리어카를 들여오던 날은 새 차를 뽑은 것처럼 기뻐, 아들을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고.

 

 

저녁에 만난 아이들은 이 동네에 낯선 언니들이 보이면 다방에 새로 온 직원인가 생각할 정도로 다방이 많다고 합니다. 슈퍼에서

물품을 구입하거나 면사무소에서 행정업무를 대신해주기까지 농사 일이 바쁜 사람들에게 다방은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순기능이 많다고 해도 ‘언니?’들에게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겠죠? 그래서 도토리 & 초콜릿 까페와 도토리 친구들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없어선 안될 보물이 되었습니다.

 

 

평화이야기

저녁에는 함께 내려간 평화강사들이 시골 아이들을 위해 평화특강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방문한 이유이기도 하죠. 목사님의 간곡한 요청이 아니었다면 합천과의 인연을 맺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양 평화교육이 수도권 지역을 벗어나는 경우는 지역의 청자들에게 평화교육이 얼마나 절실한지 그 교육효과와 밀접한 연관이 갖기 때문인데요. 우리는 교회에 갔지만 공식적으로는 ‘도토리와 친구들’ 공부방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멘토나 학원이 없는 지역 아이들의 형편에 꿈과 비전은 사치가 아니라 절실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안에 화답했던 사람은 화려한 이력의 전문강사가 아닌 북에서 온 두 청년이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 북한 이야기, 탈북, 남한 적응기와 나의 비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 “나도 북에서 왔을 땐 희망이 없었고 막막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꿈을 품고 살아요. 이런 나도 말할 수 있는 미래, 여러분들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세요.” 진지하게 경청하던 아이들이 강의가 끝나고 탈북청년들 곁으로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쉽게 나누지 못했던 고민들, 시골의 학업현실과 희미하기만 했던 꿈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금새 친한 형동생, 언니동생처럼 정이 들어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다음을 기약합니다. 시골청소년과 탈북청년, 편견을 등 뒤로 한 우리들의 이야기꽃에 시간만이 유일한 제약이었습니다.

 

 

살아있는 평화의 보고, 초계마을

목사님은 아이디어가 넘칩니다. 까페, 공부방 뿐 아니라 매 여름 지역민과 함께 하는 물 축제도 진행합니다. 무덥기로 소문난 합천에서 시원함을 나누고 싶었답니다. 교회 앞 마당에서는 지역주민과 타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바베큐 파티가 수시로 벌어집니다. 얼마 전에는 지역음악인들을 섭외해서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네요. 인근의 땅을 매입하여 고물상 부지로 쓰면서도 지역민을 위한 노천극장도 만들 계획입니다. 평일에도 주민들이 찾는 이곳, 웃음이 넘쳐흐르는 매일매일. 도토리의 꿈이 자라갑니다.

 

주일을 맞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습니다. 화창한 주일오전, 몇 개의 좌석을 달리 배치하니 도토리 까페가 교회로 바뀌네요. 한명 두명 모여드는 성도들의 발길을 목사님이 현관 앞에서부터 인도하는 풍경이 보기좋습니다. 독일에서 귀국해 초계마을로 귀농한 중년, 지팡이로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하며 걸음을 떼는 남자, 입에 연신 침을 발라가며 성경책을 훑어보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의 어머니와 정겹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눈에 띕니다. 안내 주보도 피아노 반주자도 없습니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고 가만히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평화를 맛보고 싶다면, 우양 평화교육과 더불어 합천 초계마을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꿈꾸고 마음을 섬기는 바리스타, 그는 고물장수이며 이곳 초계면을 사랑한 평화메신저, 평화목자였습니다. 짧지만 귀한 합천에서의 여정. 오늘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평화의 현장을 함께 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평화교육이 어울리던 이곳을 떠난 후에도 ‘도토리의 꿈’이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 안부를 여쭙곤 합니다. 그건 아마 목사님이 자신있게 권했던 ‘리얼아이스초코’의 달콤함 때문이 아닐까요?

 

평화교육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