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양재단에서는 지난해 2012년 9월부터 미얀마 딴륀 지역에 위치한 MTI라는 작은 대학교의 청년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자립자활을 도모하기 위해 가든을 통한 먹거리 나누기,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돌봄, 대학생들의 장학금, 아울러 지역사회의 소통과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지원해왔습니다. 따라서 이번 미얀마 방문은 딴륀 지역과 MTI 대학교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 지속가능한 일의 방향을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 “밍글라바” 미얀마를 만나다.

이방인으로써 미얀마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처음엔 두렵게 느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얀마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소의 나라”였습니다. 미얀마 말로 “안녕하세요”는 “밍글라바”라고 합니다. 우연히 길가에서 눈이 마주쳐 “밍글라바”라고 하면 그들은 여지 껏 세상에서 보지 못한 가장 경쾌하고 우직한 웃음으로 답해줍니다. 아주 가끔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류의 열풍인지는 몰라도 아마 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 있고, 살기 좋은 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관심은 우호적이었습니다.

비록 낙후된 시설과 오래된 도시의 흔적들은 가난을 금방이라도 주저없이 드러냈지만 그들의 내면에 배어있는 여유와 친절함은 낯선 이방인인 저에게도 쉽게 다가왔습니다. 지금의 미얀마는 한국의 60~70년대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70년대까지는 미얀마가 한국보다도 삶의 질의나 경제적인 부분도 앞서 있었다고 합니다. 군사정권의 일방적인 통치로 지금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뒤떨어져 있지만 어디가나 사람들의 다정한 웃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2. 미얀마의 아침은 Super train 이다.

시간의 흐름을 정지할 수 없듯이 미얀마의 아침은 분주하다 못해 시끄럽기도 합니다. 내연 버스들의 거침없는 질주와 버스 차장들의 윽박지르는 육성은 도시의 변화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빈차 운행이 없듯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모든 차들에는 사람과 물건들로 가득차고 넘쳤습니다. 아마 70%는 일본제 차량들이고 20%는 한국의 낡은 버스들인데 대부분이 수입 차량들이다 보니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아 거리에선 고장난 차량들도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타고 다녔던 같은 번호의 버스를 미얀마에서 탈 때 느끼는 기분은 참 묘하기도 했습니다.

이른 아침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더 이상 농경국가에 정착하지 않고 산업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도 시장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고, 골목골목의 작은 간이매점들에도 아침을 먹고 출근하려는 이들로 분주했습니다. 참으로 지금의 미얀마에서는 정체된 것을 볼 수 없는 듯합니다. 모두가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습니다. 변혁이라는 의미의 삶의 경쟁에서 유연함과 여유는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3. 시골에서 느끼는 온전한 인간들의 삶.

하지만 도시와 달리 시골은 예전의 오래됨과 적막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직은 농업국가의 형상을 띄고 있기에 시골에도 젊은 청년들과 어린이들이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교통수단이 덜 발달됐기에 한 줄로 길게 서서 통학하고, 하교하는 모습은 정겨움을 가득 느끼게 합니다. 간혹 신발도 없이 맨 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옷이 다 찢어져 살이 그대로 보이는 구멍 난 것을 입은 아이들도, 누나나 형의 옷을 빌려 입었는지 무릎까지 길게 걸친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빼놀 수 없는 건 우직한 웃음과 정다움이었습니다. 낯선 외국인에게 아이들은 “오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 반겨주었으니까요.

시골의 또 다른 진풍경은 너그러움이었습니다. 자기 집으로 초대해 집 구경도 시켜주고 맛난 음식도 대접해 줍니다. 그들의 삶이 궁금해 무례함을 감수하고 밥솥과 반찬통을 열어보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으면서 자세히 설명도 해줍니다. TV나 세탁기, 냉장고는 물론 어떤 가전제품도 없고 심지어는 밥도 손으로 먹고 있어서 모든 것이 불편해 보이지만, 왜 자꾸 부러움과 동경심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러워 화도 나지만 그들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기준이야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문도 없고, 지붕도 변변치 않아 비가 오면 새는 곳에 살면서도 그렇게 따뜻한 표정을 지울 수 있는 그들이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와 동행했던 일행은 현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묵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외국인은 국가가 허락한 이외의 장소에서 숙박을 하면 불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들이 나눌 수 있는 오엿한 정을 법으로 결코 다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4. 언제까지나 그들의 편으로 남을 수 있기를.

어느 사회나 해외 자본이 들어가면 본연의 순수함이 파괴되듯이 미얀마도 피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계 때문에 그들이 오랫동안 소중히 지녀왔던 삶의 양식이 자칫 훼손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안타까움도 생깁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해서 부러워하는 것들을 이미 그들은 충분히 소유하고 있었기에 제발 해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습니다.

동정과 동경은 서로 상반된 의미입니다. 비록 모든 것이 낙후되고 결핍되어 있지만 그들을 향한 저의 시선은 지금도 동경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 몸과 마음을 아직 그 곳에 두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작은 제 영혼 한 조각을 남겨두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이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의 친절과 너그러움에 깊은 감사와 안녕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우양재단의 후원으로 발전해 갈 작은 미얀마를 상상해 봅니다.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요구가 아닌,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바람으로 참 좋은 미얀마를 만들어 가는 일에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과 절절한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양재단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둘러보고 적은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글과 사진: 우양재단 해외사업팀 자원활동가 이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