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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능동교회편] part 2.
  2.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능동교회편] part 1.
  3.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초계중앙교회편] part 5.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no.2 [능동교회편]

 

둘째날.

 

아침 7시 반에 기상하여 간단하게 세면하고 뒤이어 바로 토스트와 우유, 콘프레이크 등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바로 농사꾼 복장(?)을 갖추고 스타랙스에 올라타 어제 일했던 더덕 밭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꾸리 꾸리 한 날씨에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자 드디어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밭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늘에서 비가 내리려나보다 싶었으나, 결국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금세 그쳤다. 결국 우리는 일 하러 왔으니 열심히 일하고 가라는 뜻이려니마음을 다 잡고 즉각 투입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밭 앞에 펼쳐진 대형 천막.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고 더덕 밭주인 아버님께서 아침부터 우리를 위해 큰 천막, 테이블과 의자를 셋팅 해 놓으셨고, 우리의 Wind Star? 대형 선풍기가 구세주처럼 떡~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님의 배려와 사랑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더덕 밭 작업, 농부가 흘리는 귀한 땀을 경험하며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2000여 평의 더덕 밭 작업에 가속도를 붙여 해나갔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어제의 뜨거운 태양이 오늘은 구름으로 가려지고 선선한 바람이 우리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중간 중간 먹는 시~원한 수박과 음료수는 우리의 땀과 더위를 시원하게 했으며, 농촌의 푸짐한 인심과 웃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다시 지역아동센터로 돌아가 준비된 카레와 함께 개고기 수육을 먹었다. 개고기!!?? 그걸 어떻게 먹지? 하는 표정을 짓는 여학생들과 몇몇의 남학생을 바라보며 우리는 매우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이게 웬 횡재냐 싶은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이 개고기 수육은 더덕 밭주인 어머니께서 우리 고생한다고 직접 사육하시는 개 한 마리를 잡아 정성껏 삶고 조리하여 주신 것이었기에 더욱 감사하게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맛난 식사를 한 후 너나 할 것 없이 약 1시간동안 더위로 지친 우리의 몸을 방바닥에 눕히고 오침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꿀맛 같은 오침 시간이 지나고 오후 3시경 우리는 다시 스타랙스에 몸을 실어 이동했다. 몸은 천근만근, 마음은 백만 근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나머지 밭일을 마무리 하기위해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더덕 밭주인 아버님께서 나타나시며 쉬었다가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래도 얼른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과 달리 몸은 어느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계속 마냥 쉴 수는 없는 법!! 우리의 잇 아이템!! 낫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함께 힘내자는 구호와 함께 다시 더덕 밭으로 투입!!

 

 

 

밭일을 해도 해도 줄지 않을 것 같았던 더덕 덩굴과 잡초 제거 작업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6시 반까지 하고 끝내자는 어디 선가 들리는 음성에 훗~하는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6시가 좀 넘어 모두 완료했다. 비록 더덕 밭에 있는 폴대와 비닐덮개까지 모두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000여 평이 넘는 더덕 덩굴과 잡초를 제거하는 우리의 땀과 노력은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까지 끝낼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감사했다. 어느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감사하며 땀 흘린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즐거운 고기파티!! 우리의 허기 진 배를 가득 채워줄 맛있는 삼겹살, 항정살, 오리고기 등 여러 가지 고기들을 불판에 구우 먹으며, 최고의 스태미나 음식인 개고기 수육으로 우리의 육을 알차게 채워주었다.

어느 누군가가 이야기해서 너무 많이 사온 상추와 쌈이 남기는 했으나 너 나 할 것없이 서로 먹여주며 아름다운 저녁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어진 또 하나의 희소식!! 오늘도 어제 간 그 사우나 온천탕으로 간다는 사실! 그래서 설거지 당번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빠른 속도로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치고 끈적끈적, 흐느적 흐느적 거리는 우리의 노곤한 몸을 이끌고 사우나 온천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온천탕과 차가운 냉탕을 번갈아 들어가 몸을 담그고 누리는 여유를 만끽하며 사우나를 즐겼다.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 둘러 앉아 마지막 밤을 게임과 함께 불살랐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고생하고 즐기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

 

잘 가지 않을 것 같던 23일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우리는 마치 M.T를 온 것 마냥 둘째 날 아침처럼 각자의 기호대로 계란 스크램블과 토스트, 콘프레이크 등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숙소로 활용했던 지역아동센터를 청소하고 정리한 후 우리의 짐과 몸을 꽃마차 스타랙스와 모닝에 나눠 올라탔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23일간의 피로를 주체할 수 없어 우리는 운전자를 제외하고 백만 근쯤은 될 법한 무거운 눈꺼풀을 주체할 수 없어 눈을 감고 돌아왔다.

이렇게 우리의 23일간의 농촌교회 방문 및 농촌봉사활동은 끝이 났다. 무더운 날씨와 더덕 덩굴, 벌과 벌레, 잡초 등으로 인해 쏘이거나 쓸린 피부, 크고 작은 상처, 까맣게 그을린 피부, 쉽지 않은 농사일 등으로 힘이 들기도 했지만 시시 때때로 내 주시는 감자와 수박, 음료수, 심지어 직접 사육하시는 개를 잡아 내어주신 개고기 수육까지, 농촌의 따뜻한 웃음과 너그러운 인심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함께 참여한 후원관리팀 노희정 부장, 돌봄팀 손삼열 과장, 재단 장학생들 모두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협력하여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으며, 농촌의 현실과 상황을 이해하고, 이들이 흘리는 땀과 노력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no.2 [능동교회편]

 

 

첫째날.

 

2012816일 목요일 오전 9,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에 위치한 능동교회로 농촌교회 방문 및 농촌봉사활동을 가기로 한 첫 날, 후원관리팀 노희정 부장과 농어촌섬김팀 손삼열 과장을 비롯하여 우양재단 장학생들이 함께 모였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 그리고 무더운 날씨로 인한 약간의 걱정 등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자 재단건물 1층에 있는 배움터로 장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늦어진 1명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가 모였다.

먼저 농어촌섬김팀의 팀장인 손삼열 과장의 간단한 본인 소개와 농촌교회 방문 및 봉사활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곧 바로 우리는 우양재단의 꽃마차 스타랙스와 모닝에 나눠 탑승하여 김포 능동교회로 출바알~~

약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우리는 꽃마차 스타랙스와 뉴 모닝이 인도하는 대로,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네비게이션이 말해주는 대로 찾아 능동교회에 도착했다.

 

 

 

처음 딱!! 능동교회에 도착했을 때 이미지는 WoW~~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시골교회의 건물이 아니었다.

도시의 웬만한 중소형 교회의 규모로 새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었다. 깔끔하고 창의적인 실내 인테리어와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의자 등 세련되고 모던한 교회의 건물과 시설은 신학생을 비롯한 농어촌 교회 목회자 자녀들로 이루어진 이번 우양장학생들의 관심과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교회 예배당에 앉아 우리 모두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고, 능동교회의 담임목사인 이정복 목사의 안내로 교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교회 식당으로 이동하여 교회에서 준비해주신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는 우리를 위해 목사님 사모님과 몇몇 성도님들께서 제육볶음과 계란말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반찬을 대접해 주셔서 맛있게 배불리 먹었는데 어떤 학생은 너~맛있어서 밥 두 그릇을 순식간에 흡입했다. 아무튼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리는 23일 동안 머물게 될 마음회관 2층으로 이동하였다.

사실 이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로 삼성사회공헌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예쁘게 리모델링 되어있었고,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으로 잘 활용되고 있었다.

마을회관 2층을 교회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삼성사회공헌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방아 리모델링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정복 목사가 능동교회로 부임한 이후 10여 년 동안 지역사회와 어르신들을 돕고 섬겼던 노력과 기도가 있었고, 목사님 사모님의 세밀하고 적극적인 도전과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역아동센터를 구경하기가 무섭게 우리의 짐을 내려놓자마자 우리의 꽃마차 스타랙스에 올라타고 우리가 농촌 일을 하게 될 더덕 밭으로 향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더덕 밭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우리가 입고 온 복장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왜냐하면 더덕 밭은 우리의 키만큼 높이 올라온 더덕 덩굴과 온갖 잡초, 벌과 곤충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덥다고 반팔에 반바지!!

더덕 밭에 높이 자란 덩굴과 온갖 잡초들로 인해 우리의 다리는 벌레에 쏘이고, 풀에 쓸리는 등 여기 저기 영광의 상처가 생겼고, 유일하게 긴 청바지를 입어 복장선택 잘못 했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았던 장학생 '향기'가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만들어 졌다.

 

 

그렇게 오후 2시부터 우리의 잇 아이템! 낫을 들고 폴대와 함께 이은 노끈을 따라 자라난 더덕 덩굴과 잡초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내리 쬐는 무더운 날씨에 우리는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비를 내려주소서라는 외침과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를 웅얼거렸다. 하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는가? 아니면 우리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텔레파시가 통했는가? 때마침 중간 휴식과 참을 먹는 시간이 생겼다!! 앗싸!!

농촌봉사하고 있는 더덕 밭 주인 어머니께서 감자를 삶아 주셨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더운 날씨에 먹는 뜨거운 감자는 그리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원한 음료수와 더 시~~원한 수박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참 Time'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그렇게 금세 또 시간이 지나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고고~~

 

 

 

2시간 여 정도 더 일했을까?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어디선가 마무리 하라는 아~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낫을 내려놓고 나오려는데 더덕 밭주인 아버님께서 더덕 밭 한편을 삽으로 파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굵직 굵직하고 실한 더덕이 덩굴 채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Wow!! 불과 약 2미터 정도만 파서 캤을 뿐인데 큰 바구니로 거의 한 가득 담겨졌다.

우리가 놀라는 것에 반해 주인 아버님은 훗~ 아쉬움이 담긴 미소를 지으시며 올해 비가 많이 안와 가물어서 더덕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하셨다. 우리가 보기엔 왕건이들 이었는데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의 마음은 그런가보다.

아무튼 그렇게 한 가득 담긴 더덕을 받아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들려오는 또 하나의 희소식!! 이정복 목사님께서 우리를 위해 인근에 있는 사우나 온천탕 비용을 내주시겠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숙소와 교회를 뒤로하고 곧바로 목사님과 함께 스타랙스에 올라타고 쌩~하고 달려갔다.

김포시내도 아닌 이 변두리 시골에 이렇게 크고 좋은 사우나 온천탕이 있다니 신기한 마음에 목사님께 여쭤보았다. 예전에는 관광 코스로 많은 여행객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더 좋은 곳들이 생겨서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시골구석에 이렇게 규모가 크고 좋은 곳도 있구나 하는 의외의 감탄을 하며, 아주 상쾌하고 기분 좋게 사우나 온천욕을 즐기고 나왔다.

 

 

 

다시로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정복 목사의 능동교회 이야기와 목회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었다.

세련되고 깔끔한 교회시설부터 시작된 우리의 첫 인상부터 지역아동센터와 이목사의 목회 철학, 그동안의 목회사역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의 농촌교회에 대한 생각들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또한 목사님과 사모님의 지역아동과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과 기도가 만들어낸 여러 결과물들을 보고 들으면서 목사님과 사모님의 포근하고 따뜻한 인상과 성품, 목회철학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밤 11시 반이 되었고, 농촌봉사의 첫째 날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으며 우리는 노곤한 몸을 방에 뉘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의농어촌유산답사기 no.1 [초계중앙교회편]

 

 

part 5. 두둥실 소원을 저 밤 하늘위로~ & 더위와의 사투, 그리고 집으로

 

 

짧지만 강렬했던 오후 일과를 마치고 저녁식사 후 우리 모두는 둥그렇게 둘러앉았습니다. 둘러앉은 우리 모두의 두 손에는 색연필과 풀이 쥐어져 있었고, 무엇을 할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저녁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초계중앙교회에서의 마지막 밤에 할 프로그램은 바로 풍등 만들기입니다. 풍등이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놀이 중 하나로 등을 만들고 안에 불을 붙여 열기구의 원리를 이용하여 하늘 높이 띄어 올리는 기구입니다우리는 이 풍등을 21조로 만들고, 풍등의 4면에 각자의 소원 및 기도제목 등을 적어서 하늘 높이 올릴 계획입니다.

 

하늘 높이 올라간 등은 등 내부의 불이 모두 꺼지면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은 전혀 없으며, 더욱이 낮에 내렸던 비로 인해 모든 풀과, 나무 등이 모두 젖어있기 때문에 더욱 안전해져 풍등을 날리기엔 최적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설명을 끝내고 공정하게 쪽지를 통해 21조의 팀을 만든 후 저의 설명에 따라 정성스럽게 풍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풍등에 각자의 소원과 기도제목을 적고, 그리기 시작합니다. 과장님 올해(2012)안에 꼭 결혼하게 해주세요!”와 같은 기특한 소원에서부터

 

 

항상 주님과 함께 하는 교회되길!”과 같은 노멀한 소원,

 

 

 

그리고 일본어로 적어놓은 알아보지 못할 소원까지.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들이 풍등에 소중하게 채워져 갑니다.

 

 

약 한 시간여에 걸쳐 풍등을 완성하고 우리들은 모두 풍등을 들고 교회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별 하나 떠있지 않은 캄캄한 밤하늘은 곧 우리들이 하늘 높이 날려 올릴 풍등으로 밝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소중한 꿈과 기도제목과 함께 말이죠. 그렇다면 저희가 만든 풍등이 모두 성공해서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을까요? 글쎄요. 그건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희들이 품고 있던 기도와 소망들이 꼭 하늘에 계신 그분께 전달되었다고 저희는 믿는다는 것이죠.

 

풍등을 날리고 갖가지 게임으로 새벽까지 달린 우리들은 다음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간단한 토스트와 시리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하여 일을 곧장 시작했습니다. 남자들 및 몇몇의 여자들은 장작을 패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고, 남은 여자들은 교회 및 공부방 등 전체적인 청소를 하기로 한 것이죠.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모든 일을 간단하게 마치고 각자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들떠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자 다시금 큰 어려움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바로 뜨거운 태양입니다. 어제 내렸던 비로 인해 우리는 이 합천지역의 특성에 대하여 잊고 있었던 것 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라는 특징 말입니다.

 

막상 마당에서 도끼질을 시작하니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30도 중반이 훌쩍 넘어가는 온도와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10분일하면 그늘로 대피해 10분간 누워있는 일이 반복됩니다. 우리의 일 잘하는 장주임도 더위에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그늘 평상에 누워 기절mode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모두 불평 한 마디 없이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그리고 남자들이 도끼질로 장작을 패면, 여자들은 그 장작을 외발 수레를 이용하여 구석까지 가지고 가서 차곡차곡 재기 시작합니다.

 

 

옛 어른들은 장작을 잰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성실성을 판단했다고 하던데, 저렇게 차곡차곡 잘 잰 모습을 보니 우리 장학생들이 모두 성실하긴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최선을 다해 교회를 청소하고 장작을 팬 우리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의 집으로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초계중앙교회에 올 때 교회에 무엇인가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우리는 드린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법을 통해 각자 마음속에 남은 그 무엇인가와, 이러한 일들을 함께 겪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던 우리 모두가 있었기 때문이죠.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과장님, 왜 농어촌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목회자 자녀분들과 신학생들을 데리고 이렇게 농촌 활동을 가시나요? 신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은 나고 자란 곳이 농어촌인데 왜 그들을 꼭 데리고 가는 것이죠? 그럴 이유가 있나요?” 라고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와 함께 이번 농촌활동에 참석한 인원 중 절반 이상이 농어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니까요.하지만 저는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농어촌은 무척이나 소중한 곳이고, 농어촌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목회라는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목회자님들은 더욱 소중한 분들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농어촌 목회를 하고 계시는 각자의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기 교회를 떠나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사역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뜻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요.

   

저희들의 짧은 23일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이게 완전한 끝은 아닙니다. 저희에게는 아직도 너무 많은 인생이 남아있고, 농어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희의 농어촌 사역은 끝없이 이뤄질 테니까요. 그리고 올해 여름은 이렇게 지나가지만 2013년의 여름은 곧 돌아올 테고, 그 때는 또 새로운 많은 청년들과 함께 다시 농어촌의 교회를 찾을 테니까요.

 

내년에는 여러분들도 저희와 농어촌으로 함께 떠나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