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스스럼이 없었다. 덥석 할머니의 손을 잡았고 해맑게 웃었다. 오랜만에 손녀 같은 이의 재잘거림을 듣던 할머니는 잠시 수줍다가 이내 애틋하게 등을 쓸어주었다. 할머니는 바쁜데 어서 들어가 보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쉽사리 손을 놓아주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집 앞에선 그녀도 똑같은 작별인사만 되풀이 할 뿐 순순히 손을 내어주고 있었다.

 

조희윤씨(23)는 푸드스마일즈 장학생봉사단이다. 일 년 동안 독거어르신과 짝을 맺어 어르신에게 쌀과 잡곡을 전해드리고 함께 장을 보러가서 필요한 먹거리를 구입해드리는 쌀남쌀녀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드스마일즈의 모든 봉사단이 독거어르신 또는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지만 특별히 쌀남쌀녀는 어르신과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르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일상이 무료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제가 놀러 오길 기다리셨죠. 쌀남쌀녀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비슷한 마음이시라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먹거리를 매개로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쌀남쌀녀봉사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저도 어르신들과 보내는 시간이 행복해요. 그러니 다른 이를 위해서 봉사를 하고 있다는 말엔 어패가 있어요. 전 제가 즐거운 일을 해요. 제가 즐거운 일을 하는데 다른 이들도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이죠.”

 

 

 

인도인보다 더 인도인처럼

 

희윤씨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인도에서 보냈다.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부모님과 상의 하에 인도현지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인도학교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즐겁고 활동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고학년이 되어서는 교내 합창부장이 되기도 했다. 인도인보다 더 인도를 좋아했다.

제가 인도에 있을 때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온 적이 있어요. 저는 학교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에게 가장 먼저 학교를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죠. 교장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한국에서 온 친구가 몇 일간 제 옆자리에서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어요. 그때 그 친구에겐 인도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제가 꽤나 신선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언어적인 부분이 온전히 자연스러울 수는 없었지만 노력하다보니 학교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무엇보다 역사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인도역사가 워낙 풍성하기 때문도 있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도 있던 것 같아요. 특히 식민지시대 이야기가 그랬죠. 인도의 식민시절 이야기를 듣고 분개했고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 호기심이 자연스레 한국역사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졌어요.”

인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특별히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한국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명확한 이유가 생겼다.

외국에 있으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한국에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것 같은 사건들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고요. 제가 인도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인이잖아요. 한국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대학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희윤씨는 역사문화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학과 공부는 기본이고 아이스하키, 연극, 학과 답사준비위원회 등 종횡무진이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학과공부도 바쁜 건 사실이지만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고 싶은 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요.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요. 다가오는 여름에는 광주 유니벌시아드에서 통역봉사를 할거예요. 2014년에 진행되었던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싱가폴테니스팀 통역봉사를 했었거든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또 두 문화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보람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열리는 광주 유니벌시아드 대회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열정적으로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고학년이다. 하지만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까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보단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요즘 제 삶의 화두예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회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어떤 텍스트나 사회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공부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