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또 멈추어 있다. 괜찮은 식당을 알고 있다며 앞서 걷는 듯하더니 보이는 가게마다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길을 잃은 걸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다 하기엔 표정이 너무 밝다. 그녀는 아기자기한 상점이 많은 신촌의 어느 골목을 한참이나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김송희씨는 현재 서강대에 다닌다. 서강대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면 신촌 골목골목 예쁜 상점들을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녔을 만도 한데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이런 그녀가 지난 1월에는 고등학생인 두 동생과 함께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제가 역사를 좋아하거든요. 인도는 이야기도 많고 유적지도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첫 해외여행으로 떠나기 녹록치 않은 여행지이지만 송희씨에게 잘 어울리는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희씨의 꿈은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것이다. 탈북 후 태국에서 체류하면서 처음 유엔난민기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큰 도움을 받아서 한국으로 올 수 있었죠. 하지만 그 때는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있었으면 속 시원하게 해냈겠다고 생각했어요. 난민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조급하니까요.” 긴박한 상황이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유엔 직원들뿐 이었다. 세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참 더디게 열렸다. 정치외교학과로 진학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온 송희씨는 다른 탈북 친구들에 비해 금세 적응을 하고 공부에도 재미를 붙였다. “북한에서도 공부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공부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 대해 배워가고 있어요.”

송희씨는 공부가 재미있다고 한다. 재미를 느끼며 한국을 알아가는 일은 어느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북한에 있을 때에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어요. 그 곳에서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보니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나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더라고요.”

 

 나를 알아가는 공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없었다. ‘북에서 넘어온 사람’ 이외에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해야할 지도 몰랐다. 탈북자라는 자격지심에 위축되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많다는 걸 알았다.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대학에 오자마자 시작한 일이 봉사 활동이었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다시 전해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장애아동을 만났다.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재미있게 놀았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동안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3월부터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한국 아이들에 비해 유독 영어를 어려워하는 탈북어린이들을 위해 태국에서 배웠던 영어실력을 발휘하기로 한 것이다.

“특별히 탈북어린이들을 만나는 거라 떨리기도 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 어린이들에 비해 좋지 못한 성적 때문에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일이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격적인 여정은 이제부터다.

남한에 정착하던 초기에는 무엇이든지 다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지지하고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우양을 만났다. “그땐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막막해서 어머니가 어디선가 보신 우양재단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셨던 것 같아요.”

우양재단에는 탈북 청년가정을 지원하는 ‘심연’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탈북 청년가정이 한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한국청년 봉사자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한다. 송희씨도 그 인연을 시작으로 올해 우양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 장학생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운동을 좋아하는 송희씨는 올해 수영을 배울 생각이다. 작년보다 성적을 올리고 동아리 활동도 재미있게 해볼 것이다. 영어실력을 쌓아 교환학생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 무엇보다 연애에 관심이 간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여느 학생들처럼 하고 싶은 것이 수두룩하다.

“주위에서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멋지고 즐거운 대학생활로 보답해야죠. 또 저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도 많으니 이번학기는 무척 바쁠거예요.”

도움의 손길은 늘 흐른다. 그 물결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든다. 송희씨는 그 원리를 이미 터득한 듯 하다. 오늘도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송희씨는 사람들 사이로 과감히 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