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학교

 

 

 

새 옷은 아니지만 깨끗이 빨아 툭툭 널어말려 곱게 차려입은 모습과 흔들리는 걸음. 어르신들 송영을 나갔던 차가 재단으로 들어온다. 까맣고 주름진 손을 잡고 잘 계셨냐 인사를 건네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신다. 넉넉히 준비한 간식인데도 당장 먹지 않으시고 가방에 챙기는 모습은 이젠 낯설지 않다. 인생의 절반을 남편, 자식 뒷바라지로 인해 고생으로 물들어 목소리 한 번 크게 내본 일 없는 어르신들이 이제 막 외로움을 털고 밖으로 나오셨다. 헌데 그 외로움이란 게 털어지기는 하는 것일까.

 

때론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여기모인 이 어르신들도 아마 다들 그런 생각들을 하셨을 거다. 젊은 시절 먹고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이제 자식들 키워놓으니 자식들은 자기 살기 바빠 부모를 돌볼 여력이 없다. 이 서러운 노인들은 이제 질병과도 싸워야 하는데 말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 해 여름이 시작 될 무렵 강원도에서 70세 노인이 밭에서 일하던 중에 사망했다. 이제 사는 날 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노인들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전체 독거노인 119만 명 중에 빈곤층이 77%로 91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 노인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고독사에 대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고독사의 가장 밑바닥에는 빈곤과 질병 문제가 짙게 깔려있다. 단순히 죽는 문제를 넘어 책임의 문제를 고민해볼 시기이다.

 

 

‘우양 쌀 가족 어르신들 죽음 준비학교로 오세요.‘

 

죽음준비 프로그램을 ‘아름다운 이별학교’라 이름 붙였다. 붙이고 나니 꽤 그럴싸하다. 재작년 독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그램에서 살짝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다. 올 해는 강의와 그룹작업 그리고 마지막 나들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웠다. 영정사진이란 말도 장수사진으로 바꿨다. 스무 명 남짓의 어르신들이 참여를 약속하셨다.

 

그렇게 죽음준비학교가 시작됐다. 5주 길 다면 긴 과정이다. 태풍 때문에 한 주 미뤄지기도 했고, 무더위에 움직이기 힘들어져 못 나오시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8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늙은 학생들이 찾아왔고 그렇게 ‘아름다운 이별학교’는 매주 학생들로 붐볐다.

 

“저는 별님인데요. 저는 상상하고 공상하기를 좋아해요. 남들은 하늘을 잘 안 보는데, 저는 하늘하고 별 보는 걸 좋아해요.” 매화, 목단 등 좋아하는 꽃 이름이 나온다. “나는 토끼띠니까 토끼 할래요.” 닉네임 정하는 첫 시간. 어르신들은 생전 닉네임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없으셨는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으신다. 그게 저절로 닉네임이 된다.

 

손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날엔 모두 도화지에 자기 손을 대고 삐뚤빼뚤 그림을 그려 보기도 했다. 그 손이 어떤 손인지 설명해달라고 하니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부끄러워! 이 손으로 일 많이 했지. 식당일도 하고 혼자 애 셋 키울라고 험한 일 많이 했어.” 서로의 망가지고 거칠어진 손을 보여주며, 이 손이야 말로 수고하고 고생한 손이라고 격려하는 시간이야말로 지나온 인생에 대한 격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름다운 이별학교’에는 자원봉자사자들의 수고가 절실하다. 어르신을 모시러 가는 일부터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어르신들의 옆에 찰싹 붙어서 강사의 말을 어르신이 알아듣게 설명하는 역할까지 ‘아름다운 이별학교’의 숨은 일꾼들이다. 그러다보니 자원봉사자들과 어르신들과의 유대는 남다르다. 편한 말투와 자연스런 붙임성은 마치 본인 부모를 대하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이별학교는 죽음준비 과정이 아닌 남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

 

70-90대 노인들에게 죽음은 그저 닥치는 일이지 준비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혼자 사는 노인은 말해 무엇할까. 그런 어르신들이 한 달을 꽉 채워 지나온 삶에 의미를 새겨 넣고, 죽음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디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기 전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가 있을까.

 

역시 죽음은 다루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더 의미 있었던 ‘아름다운 이별학교’는 추모원 견학으로 끝이 난다.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어르신들도 잘 가꿔지고 관리되고 있는 추모원을 둘러보시며 탄성을 지르신다. 가루되어 차가운 납골당이 안치되는 것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보니 알겠다.

 

“인생 참 허무해. 잠깐 쉬다가는 거지. 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 삶과 죽음을 생각해봤던 아름다운 이별학교가 끝났다. 그 사이 가을이 한 큼 더 다가왔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그만큼의 가까워졌다.

 

우양이 지역의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에게 쌀과 먹거리를 전달한지도 벌써 14년째다. 그 사이에 많은 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 어르신들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마다 담당자들의 탄식은 깊다. 연고가 없는 어르신들은 사망한 후에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노령인구 비율이 높은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 다는 자명한 진리 앞에 산 자들의 도리는 누구든 나 홀로 죽음을 맞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