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웅~ 부부붕~!” 낡은 오토바이 소리가 우양빌딩 앞에 멈춘다. 십년은 더 탔을 법한 오래된 오토바이에서 노인 한 명이 내린다. 오삼득 할아버지(78). 오삼득 할아버지는 옥상 텃밭에 볼일이 있다.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엘리베이터에 탄다. 6. 내려서도 한층은 걸어 올라가야 옥상이다. 몇 계단 올랐을 뿐인데 숨이 거칠다. 숨 고를 새 없이 고무호스를 들고 텃밭에 물을 뿌린다.

 

넓은 밭은 아니지만 이곳은 항상 일손이 필요하다. 텃밭을 가꾸는 자원봉사자는 많지만, 할아버지는 남다른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작물들에게 한바탕 물세례를 주고 나서야 한 숨 돌리는 할아버지. “이거 매일 아침 관리해주고 그래야 열매도 제대로 맺고 그러는데

텃밭 담당자에게 에둘러 잔소리다.

 

사실 할아버지는 우양 쌀 가족이다. 생활 형편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함께 사는 할머니는 몸이 많이 불편하다. 그간 폐지수집이 주 수입원이었다. 오토바이도 폐지를 나르기 위한 기구다. 무거운 종이더미와 박스를 나르며 생활비를 벌기도 벅찰텐데, 틈만 나면 우양 옥상텃밭에 올라와 본다.

 

요새는 몸이 안 좋아져서 종이 주우려 다니지도 못해. 허리도 고장 나고, 심장병이야 오래됐지. 그래도 우양에서 주는 쌀로 먹고는 살 수 있어. 다른 취미가 없으니 집에만 있어야 하잖아. 남들은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그러는데, 나는 그런 걸 하나도 안 배웠어. 여기 텃밭일이야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거잖아. 젊은사람들이 하기엔 힘들어도 오히려 나는 쉽게 하지.”

 

 

오삼득 할아버지는 젊어서부터 힘쓰는 일을 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판 터널로 영동선 기찻길이 뚫렸고, 인근 광산에서도 오래 있었다. 빈 땅에서 농사일도 십년쯤하고, 서울근처에 와서는 목장을 했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고물상도 했다. 한평생 무거운 짐을 나른 셈이다.

 

돈복이 없었나봐. 하는 일마다 잘 안되더라고. 젊어서 꿈이 농사한번 크~, 속편하게 지어보는 거였지. 지금 그래서 우양 옥상에도 올라와보고 그러나봐. 이렇게 작물 키워놓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와서 재미삼아 따기도 하고, 먹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가끔 할머니들이 와서 밭을 망쳐놓고 가면 속상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해해야지, 그런 소일거리라도 있어야지 노인들이.”

 

그는 옥상텃밭의 시작부터 함께였다. 텃밭에 심을 작물을 선택하는 데부터, 텃밭을 처음 가꾸는 청년 자원봉사자들의 교육도 할아버지 몫이다. “우양에서 도움을 받고 산지 10년이 넘었는데, 내가 더 늙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 벌써 몸이 많이 힘들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여기 밭일이야, 내가 동네 사니까 한 번씩 들여다보는 정돈데, 도움이 될란가 모르겠네.”

 

 

나한테 쌀 가져다주는 사람은 이 동네 전파사 하는 사람이야. 동네에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그래. 사업은 크게 하지 않지만, 동네에 망가진 물건 보이면 고쳐주고 이러더라고. 좋은 사람이지. 우리 아들 키울 때도 저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었는데. 우리식구들은 이제껏 살면서 경찰서한번 가본 적 없다니까. 근데 요새는 착하게 살아가지고는 밥도 못 먹고산다고 하더라고. 남들 속이고 산 사람들은 부자 되고 그렇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도 있고...”

 

여느 노인들 이야기의 끝은 자식이야기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시작해 자식 키워온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들어보면 착하고 귀여운 꼬마이야긴데, 실제로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아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길로 일생을 걸어오고, 자신이 살아온 정직한 방법으로 자식을 키워낸 할아버지는 분명 닮고싶은 청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