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수줍게 웃었다. 이야기 하는 내내 눈빛은 반짝였다. 마지막에는 꽤나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데 다들 그 시간을 어떻게 겪어 내는지가 궁금하단다. 청년은 지금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온 두려움과 맞서고 있는 듯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청년들은 미지의 터널 앞에서 아마도 저런 고민을 하겠구나 싶어지니 이내 이해가 됐다.

 

스물여섯. 장로회 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과 4학년 이다빛 씨는 현재 교회 전도사다. 으레 신학대학교 학생들을 학부 때부터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수련과정을 거친다. 그런 그가 졸업을 앞두고 신학대학원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겠다는 거다.

 

“저는 저를 구원한 복음에 감사한 거지 직업으로서 목사가 되고 싶진 않아요.”

 

 

 

스물여섯, 자연을 닮아 살기로 하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도시에만 살던 이다빛 씨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훗날 경기도 광주 산속으로 이사해 집을 지었는데 황토로 벽을 바르고 너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다. 지금 그 집은 어머니가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단다.

 

“처음에는 어머니 생각을 듣기만 했어요. 근데 어느새 제 삶에 영향을 미쳤더라고요. 대학에 와서 깨달았어요. 제가 자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요.”

 

이다빛 씨는 졸업 후 경기도 여주에 있는 농업경영전문학교에 들어갈 생각이다. 전액 국비지원이 되는 것도 이유이고 앞으로 농사를 짓고 살고 싶은데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란다. 사람이 노동을 하는 것은 필수인데, 얼마나 땅에 가까운 노동을 할 것이냐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는 농사야 말로 삶에 근본적인 기쁨을 준다고 믿고 있었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에요. 남들보다 조금 더 삶의 자리를 자연으로 옮기고 싶은 거죠.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지만.”

 

환경에 대한 우려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의아하고 이상했다. 웰빙 바람이 한창 불었을 때도 그랬다. 정말 건강하게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사람들은 모르는 듯 했다고 이다빛씨는 말한다. 그는 전인격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농업에 종사한 사람이 없다 보니 여전히 걱정이다.

 

 

 

 

장학생으로 만난 우양과의 인연

 

목회자 자녀 장학생이 우양과의 처음 인연이었다. 장학금이야 뭐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는 정도로 이해될 만한데 이다빛 씨는 조금은 달랐다. 학교 공부를 너머에 있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단다. 그 중 하나가 우양의 농어촌 프로젝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골로 농활을 다녀왔다. 장학생이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나름 많은 의미를 건저 올린 듯 했다.

 

“올해는 더덕 밭에서 일을 돕고 왔어요. 더덕을 잘 캘 수 있게 밑 작업을 하는 건데요. 그 덕에 더 새까매졌어요.”

올해는 우양의 농어촌 교회 지원사업인 청년프로젝트 공모에 지원해 당선이 됐다. 이다빛 씨는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주팀을 꾸려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땅은 넓은데 상대적으로 인구가 퍼져있는 경기도 광주의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생각이다. 대부분 비전공자들로 구성된 꿈꾸는 땅 문화공연팀은 지역사회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고 싶다는 당찬 청년들로 구성되어있다.

 

장비는 드럼, 건반, 베이스가 전부다. 연주 실력도 한계는 있다. 각자 생계가 있다 보니 한번 모여 연습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번 프로젝트 당선으로 받은 지원금은 대부분 악기를 구입하는데 사용할 예정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다.

 

꿈꾸는 땅 문화공연팀은 로뎀여성폭력상담소 부설 사회적 기업이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이 기관은 성폭력 피해자 상담을 주로 하다가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역 복지관이나 시설에서 문화공연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찾아가는 문화공연은 그런 교육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해 마음을 여는 게 목적이다.

 

“문화나 정서적인 부분은 삶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청년의 고민은 끝이 없다. 그래서 청년이다.

 

사춘기시절 인간사이 갈등과 분쟁을 겪으면서 그 때 처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구나 싶었다. 외아들로 혼자 큰 것도 영향이 있었다.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랐다.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실은 괴리가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다빛 씨다. 그런 그의 장래희망은 ‘아빠’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되는’ 일이잖아 싶다가도 가장 기본이 되는 가족 안에서 보다 깊고, 진지한 관계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 공부를 안했어요. 그래도 고민은 있었죠. 중고등학교 내내 내성적이었어요. 뭔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현실에 적응하는 범위 내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재능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다빛 씨. 어쩌면 그 일을 이미 시작한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 젊은 사람이 농사지어서 어디 밥벌이나 하고 살겠냐는 모진 질문에도 한 줌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과 생계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고민도 놓치지 않는단다. 마냥 어리지만 않은 현실에 든든히 발 묶어놓고 있는 청년이다.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해 어떻게 살까하는 고민은 누군들 없겠냐마는 인생의 질문에 슬기롭게 질문에 대답해 가는 모습에서 오히려 희망을 본다.

 

‘지금은 연약해도 괜찮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