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15건

  1. [닮고싶은청년 vol.41]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어요. - 청년 이영훈 1
  2. [닮고싶은 청년 vol.34] 농활이야말로 힐링캠프죠. - 농어촌섬김 장학생 우예품
  3. 우양의 맛있는 봄 [우양재단 뉴스레터 vol.56]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했어요. 이 일을 졸업 후 진로로 정하게 될 줄은 몰랐죠.”

서울 소재 4년제 사회과학 계열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진로는 무엇일까. 굳이 대기업취업으로 몰고 가지 않더라도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평균 성적이 4점 이상이고 영어, 대외활동, 봉사 등의 스펙이 모두 갖춰진 경우에는 더욱이 그러하다.

부모님은 당연히 대기업에 취업을 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친구들도 그렇고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나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 수는 없자나요. 나의 진로는 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죠.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도 지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이영훈씨는 8년차 이벤트MC. 어느새 소속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이벤트 전문MC가 되었다. 그 시작은 우연히 접하게 된 방송인 김제동의 레크리에이션 영상이었다.

처음 그분이 사회 보는 영상을 보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영상 속에 보이는 많은 관객들도 저처럼 넋을 놓고 사회자를 보고 있었어요. 나도 그분처럼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고3이었지만 레크리에이션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이 생겼다. 매일 한 시간씩은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능 바로 다음날, 학교 축제에서 영훈씨는 첫 무대에 오르게 된다.

밴드부와 연극부 프로그램 전에 5분정도 사전엠씨를 보는거였어요. 게임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하다보니 처음 주어졌던 5분이 훌쩍 넘어 10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그만하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이렇게 시작한 이벤트MC일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 사회를 보고 지인들의 행사에도 초정 받았다.

돈을 얼마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를 불러주는 무대라면 어디든 기쁜 마음으로 갔어요. 마이크를 쥐고 사람들 앞에 서면 왠지 모를 힘이 나더라고요.”

할수록 재미가 있었고 실력이 늘었다. 영훈씨의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무대에 설 기회도 점점 늘어났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주로 돌잔치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요. 한주에 보통 10건 정도 되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죠. 하지만 지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좋은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해요.”

 

주말에는 ‘MC이순신으로 바쁘게 활동하지만 그 외에 시간에는 대학생 이영훈의 삶도 알차게 살아내려고 한다.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수업은 늘 맨 앞줄에서 듣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제가 가진 것들로 나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요.”

군 제대 후 유네스코 브릿지사업단으로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왔다. 동양인이 한명도 없는 마을에서 5개월간 마을사람들과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지역활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다보니 국제구호나 사회환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좋은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달받는 사람들과 그 지역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어려운 이웃의 처해진 상황을 겸손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돕는 일의 첫 단계라는 걸 영훈씨는 알고 있었다. 그 마음으로 2014년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독거노인의 삶 이야기를 절절하게 외쳤다.

우양재단에서 독거노인 인식개선캠페인을 하면서 놀란 것도 그 부분이에요. 아직 우리나라에도 굶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상상도 못했어요. 폐지를 하루 종일 주워 받을 수 있는 돈이 겨우 이천원라는 건 정말 충격적인 일이예요. 아마 그 인식개선캠페인을 통해 가장 크게 인식이 개선된 사람은 바로 저 일거예요.”

 

 

 

 

청년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가가 되고싶어요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영훈씨가 가장 마음을 쏟는 일은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다. 대학에 입학한 해부터 동아리를 통해 중고등학생들과 꿈을 공유하는 멘토링 및 코칭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영훈씨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멘토링이나 코칭이라는 말이 얼핏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냥 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로 캄캄하게 느껴졌던 날이 많았거든요. 혹시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그 시기를 지나온 형, 오빠로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사실 이건 제가 평생에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해요. 지금은 인지도 있는 이벤트MC가 되는 것이 가장 가까이 있는 목표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청년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강연자가 되어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날을 늘 꿈꾸고 있어요.”

 

 

 

 

 

 

 

 

 

 

 

 

 

 

 

농어촌 목회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농촌엔 답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만난 우양은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었어요. 우양과의 만남이 우리가족에겐 위로였어요.”

 

우양의 여름은 농촌봉사활동으로 시작한다. 여름방학을 맞은 청년들은 농어촌에 있는 작은교회을 기점으로 농촌봉사활동을 펼친다. 우양청년들은 단순히 농사에 일손을 보태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을 위한 문화, 교육, 복지 전반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농활이 기존에 알던 농어촌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예품(23)씨도 그 중 한사람이다.

가는 곳마다 펼쳐지고 있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일들에 놀라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농촌에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는지 정말 흥미로워요. 제가 알던 농촌은 이렇지 않았거든요.”

 

 

 

 

사실 예품씨는 농촌이 익숙하다. 초등학생 때 전학을 와서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농촌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서울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시골교회 목사 딸이 되었어요.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고 갑자기 사람들이 저를 목사 딸이라고 부르는 것도 힘들었어요.”

예품씨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쯤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사춘기에 접어들 때부터 목회를 시작했다. 그녀는 변한게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목회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서울 강남에 살았거든요. 친구들은 저보고 서울깍쟁이이라고 놀렸고 선생님은 제가 목사 딸이니까 참으라고 했어요. 그게 농촌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이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새로운 학교에 적응이 힘든 것도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그녀의 가정이 순식간에 바뀐 것도 농촌으로 이사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는 것도 도시로 나가면 금세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가 그리웠어요. 그래서 가끔씩 도시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그렇게 설레었나봐요.”

조용하고 평화롭던 농촌교회가 부산스러워지는 날이 있다. 도시에서 손님이 오는 날이다. 온 가족이 몇 번이나 작은 예배당과 집을 쓸고 닦았다. 그 손님들이 도착한 것만으로 마을에 온통 활기가 돌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저는 농활을 가면 제일 먼저 그 교회 목사님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농촌교회 목사 딸이 어떤 느낌인지 저는 잘 알거든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작은 결핍이 있어요. 그걸 위로해 주고 싶어서요.”

그 시절 도시에서 온 손님들은 그녀와 그녀의 가정을 환기 시켰다. 이렇게 작은 농촌마을에 있는 한 목회자 가정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었다.

농어촌 목회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농촌엔 답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만난 우양은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었어요. 우양과의 만남이 우리가족에겐 위로였어요.”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예품씨는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농활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만 벌써 세번째다.

어렸을 때는 농촌에 사는 게 참 싫었는데 철이 들고 나서는 농어촌교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잖아요. 우양을 통해서 농어촌에 방문하고 조금이나마 그곳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좋아요.”

 

 

 

지금은 농활을 통해서 농어촌을 돕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그녀의 꿈은 음악치료사이다.

음악치료를 통해 마음은 물론이고 몸까지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요. 내가 전공한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대학원공부도 해야 하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하지만 꼭 음악치료사가 되어 제일 먼저 목회자 자녀들을 돌보고 싶어요.”

우양의 농활은 계속된다. 물론 예품씨도 함께한다.

농활을 다녀오면 참 좋아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직접 땀 흘리며 배우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또 힘을 얻어요. 다양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는 걸 느끼죠. 더 많이 청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농활이야 말로 정말 힐링캠프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