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에 해당되는 글 3건

  1. [닮고싶은청년 vol.32]청년들에게 불꽃을 전하는 최게바라 기획사 대표 최윤현
  2. [닮고싶은청년 vol.21]꿈꾸고 있는 당신이 바로 청년입니다- 한국갭이어 안시준
  3. [닮고싶은청년 16] 노숙인들도 잘 살고, 저도 잘 살 수 있겠죠?

 

 

20세기의 혁명가 체게바라는 남미를 여행한 후 자신의 여행기를 담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출판했다. 
21세기의 반항아 최게바라는 동남아를 여행한 후 자신의 여행기를 담은 「버스 다이어리」를 출판했다. 체게바라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최게바라의 책을 내 주겠다는 출판사는 없었다. 그래도 책을 만들고 싶었기에 직접 작업을 해서 학교 앞 제본 집에 원고를 맡겼다. 애써 책을 만들었으니 출판 기념회도 열고 싶었다. 이번에도 해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서 동네에 홍보하고 행사를 준비했다. 철저히 지인을 중심으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몇몇은 책을 샀고 사인도 받았다. 이것이 최게바라의 데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가능하다고 느껴졌어요.”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휴학을 했어요. 그리고 여행을 떠났죠. 마지막 학기를 그대로 다니면 나도 취업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것 같았거든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으면서 무작정 취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체게바라가 그렇듯 최게바라도 본명이 아니다. 본명은 최윤현.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여행을 떠나는 그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외로웠어요. 하지만 포기 할 수 없었죠.”
최게바라 출판기념회를 열 즈음 윤현씨는 스페이스 노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나 용기를 얻은 그는 최게바라의 이름으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저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일 벌리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이것들의 결정체가 토크쇼였어요.”  

2013년 2월 자비로 준비된 두 번째 행사가 열렸다. 
“내가 그랬듯이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청년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원했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다시 열정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고요.”
누구든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 하나씩을 가지고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토크쇼의 이름을 ‘최게바라 불꽃쇼’로 지었다. 

이 토크쇼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마음에 작은 불꽃 하나를 품고 갔겠지만 윤현 씨는 이미 가지고 있던 작은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 일에 삶을 걸어보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불꽃쇼까지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가능하다고 느껴졌죠. 그리고 3개월 후 사업자 등록을 마쳤어요.”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일이에요.”

정식으로 회사를 차린 후 사업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대부분의 사업들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최근 조명을 받고 있는 ‘남북청년토크’도 그 일환이다. 
“불꽃쇼를 통해 탈북청년들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매스컴을 통해 보았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못 먹고 힘들게 지내다가 목숨을 걸고 남한에 내려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청년들이 들려주는 북한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가 만난 탈북청년들은 사랑하고 친구와 어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똑같은 청년이었다. 북한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청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1회는 탈북청년 혼자 게스트로 출연했지만 2회, 3회는 같은 주제로 남한출신청년과 탈북출신 청년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 프로젝트여서 많은 분들이 주목해주신 것 같아요.”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통일부 인터넷 방송과 BBC에서도 이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다. 최게바라 기획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소수의 게스트가 이야기하고 참가자들은 청중이 되어 듣는 구조에서 한층 더 가깝게 남북청년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하는 ‘남북청년한잔’을 시작했다. 
“탈북청년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남한청년들이 그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어요.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정말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어쩌면 최게바라 기획사에서 하는 모든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일이에요. 행복은 개인의 삶을 잘 살아가는데서 나올 뿐 만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데서 나오거든요. 그 이후에 시너지들을 자연스럽게 생길 거예요.”   

“최게바라 기획사를 통해 청년들이 행복해지길 바라요.”

현재 최게바라 기획사는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가치를 추구하면서 돈이 되는 일을 찾는 것, 수익을 올리되 가치를 잃지 않는 지점을 찾는 것이 현재 최게바라 기획사의 최대 고민이다. 
“사업적으로도 반드시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현재 최게바라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들의 고용을 책임지고 싶기 때문이에요. 가치 있는 일, 선한 일을 하겠다고 용기 낸 우리 직원들의 열정이 꺾이지 않도록 내가 이 회사를 잘 이끌어가는 것.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임무이기 때문이에요.”

최게바라 기획사의 직원들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행복해지는 것과 청년들을 통해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윤현 씨의 꿈이다. 그가 생각하는 청년은 아프거나 흔들리거나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큰 역할을 하던 청년들이 꼭 있었어요. 유관순열사가 그랬고 민주화 운동을 하던 많은 학생들이 그랬죠. 사실 그들은 지금의 저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대단한 일들을 해냈죠. 어쩜 그렇게 청춘을 불태울 수 있었는지 질투가 날 지경이에요. 오늘의 청년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청년이 나라를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행복하게 만들 힘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청년들을 돕고 응원하는 일에 내 청춘을 다 바치고 싶어요. 70살이 되어도 내일의 사업을 위해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최게바라가 될 거예요.”
 

 

 

 

셔츠가 잘 어울리는 기업인의 느낌이 물씬 났다. 왕년에 무전으로 세계를 여행하던 그는 이제 명동 한복판의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려 도리어 낯설었다.

 

그는 현재 한국갭이어 대표이사 안시준(29)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수년전만 해도 무전여행으로 5대륙 36개국을 돌던 무모하고도 당찬 청년이었다. 무전으로 세계를 떠돌던 그때는 그날의 끼니와 잠자리가 늘 걱정이었다.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밑바닥에서 몸으로 세상을 익혔다.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기 원했다. 이렇게 세상을 배우면 이후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넓었다. 그리고 그는 1년4개월 만에 무사히 귀국했다. 그는 발바닥에 생긴 굳은살만큼이나 더 단단해졌고 선명하게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되기 위한 습관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꿈꾸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을 ‘성인이 되기 위한 습관’이라고 말한다. “여행을 하면서 세계의 많은 청년들을 만나보았는데 그 친구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더라고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꿈을 꾸게 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시급하게 필요한 일이예요” 그는 사회의 문제를 기업의 형태로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사회적기업 창업을 결정하였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템이 이것이다. <청춘, 젊음을 꿈꾸게 하다>, 현재 그가 대표로 있는 사회적기업 한국갭이어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여자는 5~6년, 남자는 7~8년이 걸려서 졸업을 한데요. 막상 졸업을 하려고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자꾸만 졸업을 미루는 거죠.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의미없는 스펙에 매달리죠.”
그래서 그는 한국에도 갭이어(Gap year)문화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갭이어'란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창조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봉사, 여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말한다.) 갭이어를 가지기 가장 좋은 시간은 17~20세로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다. “대학 시절은 청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이예요. 그 동안 자신의 꿈과 관계없이 비싼 학비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사람이 다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라는 다 똑같은 꿈을 가질 수 있나요. 이건 분명 자신을 알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예요.”

 

 

20살, 자신의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나이


한국갭이어는 학업에만 매달리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나 부산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기, 싱가폴의 애견트레이닝 스쿨체험, 아프리카 케냐 마을공동체 봉사활동 등이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흘러가는 대로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명문대와 대기업에 목숨 걸 듯이 살진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이다. 그러나 남들 다가는 대기업에 입사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일년이 안 되서 뛰쳐나오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대기업이 해답은 아닌거예요.”

 

한국의 교육문화는 분명 특별하다. 유아 조기교육부터 시작해서 고등교육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시스템이다. 잠시 멈춘다는 것은 뒤쳐진다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부모님의 뜻대로 혹은 남들이 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예요. 저는 갭이어가 우리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해요. 청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대다수의 국민이 생각하는 거죠.” 20살은 누구나 대학을 가야하는 나이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는 것, 이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갭이어 문화이다.

 

 

 

 

 

꿈꾸는 당신을 한국갭이어가 응원합니다


시준씨를 비롯한 한국갭이어의 직원들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국내외로 한국의 청년들이 경험할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쉬지 않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 4월부터는 국내 갭이어프로그램을 전면 무료화 하였다. “회사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단기간의 수익보다는 더 많은 청년들이 갭이어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 났어요. 이런 뜻을 따라 주는 직원들에게도 참 고마운 일이죠.” 


세상에서 배운 것이 많기에 그 소중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그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꿈꾸고 또 다른 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그는 언제나 청년이다. 지치지 않는 청년 안시준씨가 믿는 대로 꿈꾸는 사람 그가 바로 청년이기 때문이다.

 

 

 

 

노숙인들과 함께 일하는 옷걸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커다란 헌신이 필요한 일이라며 걱정하고, 배고픈 길이라고 우려를 표합니다. 전 그런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고, 노숙인들의 자활도 꼭 도울 겁니다.”

 

 

(Do)손 컴퍼니

두 손이 서로 맞잡은 회사로고가 흥미롭습니다. 일하고 싶은 노숙인의 손과 이들을 돕고자 하는 손이 만난 회사임을 의미합니다. 탁월한 작명센스 뒤에는 노숙인 문제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기업을 시작한 이광수 씨의 땀과 열정이 숨어 있습니다. 사업가의 꿈을 포기할 수도, 노숙인 문제 해결에 대한 열정도 저버릴 수 없었던 광수 씨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모험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꿈과 사회적 필요를 하나로 융합한 겁니다.

 

 

 

나눔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는 점을 빼고는 말입니다. 대학 입학과 함께 활동한 대학연합봉사동아리 버뜨리랑은 광수 씨의 생각을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가벼운 학습지도로 시작했던 일은, 사랑이 고픈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는 일이었습니다. 본인이 무엇을 준다기보다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 특히 봉사와 나눔을 통해 스스로가 받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군제대후에는 성균관대학교 SIFE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비즈니스의 긍정적인 힘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이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소외계층의 삶의 변화를 통해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일했고, 대학로 소극단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프로젝트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 SIFEStudents in Free Enterprise의 약자로,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자립을 돕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주로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대학로 소극단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감을 익혀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사회적 기업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준비하던 즈음에 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가 논란이 되고 있었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럽여행에서 만난 노숙인들이 빅이슈를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옷걸이로 사업을 한다고?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꽤나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숙인들의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역 주변의 거리 노숙인들을 직접 만나고, 관련 단체를 방문하면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노숙인들의 알코올 중독, 우울증 등 정신건강 측면과 자활의지 부족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보람을 줄 수 있는 일자리였습니다. 물론 기업으로서 이익도 창출하고, 사회에도 기여해야했습니다.

 

 

그렇게 고안해낸 것이 바로 친환경 옷걸이 프로젝트’. 옷걸이가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게다가 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노숙인 들이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습니다. ‘그거 해서 돈이 되겠어? 헌신하고, 봉사하는 그런 거잖아?’ 광수 씨는 이런 사회의 시선이 불편합니다.

 

사회적 기업을 하고 싶었는데, 분명 현실적인 장벽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이 컸고, 사회적 기업을 보는 시선들이 불편했어요. 제가 봉사단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을 하고 싶은 건데도 그랬어요. 저는 이런 편견들을 비즈니스로 깨뜨리고 싶어요. 그래야 다른 젊은 사람들도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잖아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재벌의 반열에 오른 기업도 있습니다. 사업으로 성공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후회를 남기지 않을 생각뿐입니다. 이미 두손 컴퍼니는 소중한사람들이라는 노숙인 쉼터와 연계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활의지가 있는 노숙인들과 옷걸이를 만들고, 거기 들어가는 종이에 광고를 넣을 생각입니다. 이미 만 삼 천여개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열심히 광고주를 찾는 중입니다.

 

사회적 기업도 결국은 기업입니다. 일반 기업과는 다르지만 비영리 단체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만, 수익을 창출해서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옷걸이 백만사태를 꿈꾸다.

 

당장은 옷걸이를 백만 개 정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업에 대한 확신도 보입니다. 그는 정부가 노숙인에게 주는 일자리가 많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노동의 대가로 한 달에 30만원 준다고 하면 나설 노숙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일자리는 노숙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일자리여야 합니다. 또 노숙인분들이 거리생활을 오래하셔서 기술이 떨어진 상태인데, 이를 고려한 근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

 

옷걸이 프로젝트는 오랜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론입니다. 사업 구상 단계에서 헌책을 판매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폐휴대폰에서 광물을 캐내는 안도 제기되었지만, 현실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옷걸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끌고 가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20대의 젊은 사업가가 커다란 기업의 광고주를 상대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 일을 오래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에 강점을 가진 사람인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 신념? 을 가지고 싶습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그것

 

이제 두손컴퍼니의 사업은 광수 씨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일손을 보태는 노숙인들이 있습니다. 그는 책임감보다는 스스로 사회에 뭔가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힘을 얻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사회한원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성장이라고 대답한 적 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내가 성장하면서 얻게 되는 것을 나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는 지금 하는 일을 재미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될 것입니다.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바로 세상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입니다. 전국에 계신 기업인 여러분들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러분의 광고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Do)컴퍼니의 또 다른 의미인 행동하는(Do) 을 기대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