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전통적 씨족부락에 선교지를 세우다.

서울에서 불과 40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능동교회는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몇 년 전까지 만해도 도로를 따라서 젖소목장이 펼쳐져 있는 버스조차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다.

지금은 공장들도 들어서고,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왔지만, 처음에 여기 들어왔을 때만해도 양반이네, 상놈이네...뿌리깊은 유교적 관습과 불심으로 가득한 마을이었어요. 때문에 외지인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고, 교회가 들어서는 것에도 매우 부정적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반경 5km이내에 절만 3, 무속인이 4명이나 있는 전형적인 농촌부락이며, 유동인구도 거의 없는 전주 이씨의 씨족부락이다. 125년이나 된 오래된 선교지역이지만, 외지인에 대한 경계도 높은 편으로 아직까지도 복음화율이 매우 낮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오랜 기간 동안 마음 아픈 일도 많았다. 원래 교회는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었단다. 하지만 초창기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홀로된 사모님은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셨다. 그러나 그 기도소리를 들으신 마을 어르신들이 기도 소리를 곡하는 소리로 들으셨고, 이내 교회를 내보내려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결국 지금의 마을입구 도로변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음 아픈 일이었지만, 위기는 기회라고도 했던가? 이제는 넓은 도로가 들어서고, 사람들 눈에도 잘 띄는 예쁜 교회가 됐다. 이 모든 것이 능동교회를 거쳐 가신 많은 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진 감사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때부터 이어진 기도와 정성 덕분에 지금은 대쪽 같으신 어르신이 두 가정이나 전도되었고, 다른 어르신들도 예배당에는 오지 않으시지만 목사님이 아프시기라도 한 날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문병을 오시며, '나는 안가도 애들은 가서 놀고, 공부하라고 해'라며, 교회에 자녀와 손자녀를 덥석 보내신다.


농촌목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접한 것이 아이들이고, 이곳 능동에 오게 된 것도 아이들과의 관계 때문인걸요.”

서울에서 불과 3040분 떨어진 곳이지만, 아직까지는 버스나 이동수단이 열악하여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차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벽부터 농사일에 바쁜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수 없어서 결국 인근 보습학원에 아이를 등록시키고, 학원차량으로 등하교를 시킬 수밖에 없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줄 수 없는 것이 농촌현실이다.



한번은, 피아노학원에 6년을 다닌 아이가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 이정복 목사는 이러한 농촌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때 그래, 아이들과 공부만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공부방사업을 계획하였고, 우양에서 진행한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정보도 얻어가며 열심히 준비했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이셨는지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을 무상으로 임대해주셨고, 덕분에 생각보다도 빨리 공부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챔버오케스트라를 꿈꾸다.

2007년부터 우양의 지원과 적극적인 외부 프로포절 신청을 통해, 아이들이 편안히 공부하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고, 2009년부터는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11악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악기라는 것이 연습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이들과 연습하면서 관악기면 관악기, 현악기면 현악기, 각각은 되는데 하나의 소리를 낼 수 없는거에요.”

이정복 목사는 아이들이 함께 연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생각에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후 오케스트라를 맡아줄 지휘자도 알아보고, 우양의 프로젝트사업비를 지원 받아 마침내 챔버오케스트라를 만들게 되었다. 이정복 목사는 챔버오케스트라를 통해서 아이들 본인이 갈고 닦은 재능을 발휘하고, 단조로운 농촌교회 예배의 변화를 꿈꾸게 됐다. 그 결과 부모들은 자녀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교회에 찾아왔고, 마을 사람들을 서로 잇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교회의 의미가 확장된 셈이다.



쥐들이 피아노줄을 갉아먹고, 도마뱀과 씨름할지라도 농촌목회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얼마 전 군을 제대하고 온 친구가 인사를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바뀐 성전과 늘어난 교인들로 너무 낯설었다하네요. 그 친구와 이야기 하면서 그 상황에 담당목사까지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많던 교회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는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이 목사는 말한다. “‘그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던 뛰어나지 않던 누군가가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준다면 좋지 않을까요, 최소한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려고요

이제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하는 농촌의 작은 교회였다면, 앞으로는 지역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교회로 자리매김하려는 이 목사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