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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 성지순례후기 1탄_[봄길교회 김현미 사모]
  2. 2013년도 농어촌 사모초청 성지순례 답사기 - 터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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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봄길교회 김현미 사모(사진에서 왼쪽)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성지순례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양재단의 사랑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4년 전 성지순례를 열망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출발을 앞두고는 신혼여행 때보다 더 흥분되고 기대하는 나의 모습 때문에 혼자 웃곤 했는데 어느덧 12박 14일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평소에 이스라엘만 생각했었는데 그리스와 터키까지 갔고, 생각지도 못했던 생소한 그리스와 터키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리스의 아테네, 그곳에 ‘아레오바고’ 언덕과 파르테논 신전이 아래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찬란하게 금으로 둘러싸인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을 신으로 섬기고 철학과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들에게 작은 언덕에서 외치는 바울의 목소리는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을까. 그의 소리보다 많은 사람들의 조롱 소리가 바울을 짓눌렀을 것이다. 세계가 모두 알아주는 유네스코 1호의 명성만큼이나 바울의 마음은 아팠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첫마디의 고독한 외침. 지금의 우리는 그에 비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결단할 수 있게 한 곳. 메테오라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너무나 웅장한 바위위에 수도원 건물들이 있었다. 우뚝 솟은 바위들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런 바위위에 세워진 수도원 교회. 동방 정교회를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멋진 성화들이 가득했다.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그림들이 교회 안에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순교자의 그림들. 너무나 잔인하게 오랫동안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순교자들. “고백할래, 안 할래” 계속되는 갈등을 하게 한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이 ‘나도 이렇게 순교할 수 있을까?’였는데 실제로 그림들을 보며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을 본받아 나의 신앙을 지켜나가야지 하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을 잊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 터키의 데린구유,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지하도시. 깊이 55미터, 8층이나 되지만, 박해를 피해 떠나온 그들만의 작은 세상, 세상과 분리를 선언한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땅속에서 바위 속에서 그들만의 지혜와 방법으로, 대단하고 용감하다. 정말 경이롭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없는듯 하지만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또 한 곳 정말 멋진 캅파도키아, 버섯모양의 바위로 유명한 곳, 초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 살았던 신앙마을, 박해를 피해 멀리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 산 곳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괴뢰메’ 동굴교회는 수도사들이 살았다고 한다. 교회 안에는 아직도 벽화가 색을 발하며 그대로 남아있다.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만들어진 웅장하고 특이한 바위들이 신앙의 보금자리였다. 그들은 빛의 역할을 감당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빛과 소금, 이제 분명히 그 역할을 알았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터키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한 곳 에베소, 이곳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만 오천 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 목욕탕, 분수, 화장실, 아데미 신전 그리고 최신 유행의 시장, 상점, 광장, 커다랗게 박혀있는 길거리의 돌들 모두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문화가 발전한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들이 현재의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 옆의 건물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돌들 밖에 없지만 그 당시의 모습으로 세워져서 나를 맞아 주는 것 같았고 나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얻은 클레오파트라가 된 듯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그곳을 걸어 다녔다. 얼마나 흥분되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한편으로 ‘셀수수 도서관’에 가서야 또한 깨달았다. 이처럼 웅장한 곳이 ‘두란노 서원’인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었단다. ‘두란노 서원’은 지나온 작은 상점들 중 하나일 것이란다. 그 작은 책방에서 바울은 한 사람씩 두 사람씩 만나 복음을 전한 것이다. 바울의 수고를 생각하며 나 또한 성실히 바울의 사명을 나누어 가지려 한다.


  그리고 성소피아 교회에 갔다가 내가 가장 궁금해 했던 이슬람 사원에 갔다. 한남동의 블루모스크를 볼 때 마다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곳 현지에서 갈 수 있다니 정말 기뻤다. ‘히잡’을 쓰고 신발은 봉지에 담고 영적으로 너무 눌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하면서 들어갔다. 건물은 너무 아름답고 웅장했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그들  이제는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지순례를 통해 지식과 성경과 세상의 지경이 넓혀졌지만 가장 크게 기도의 지경이 넓혀진 것 같다.
  드디어 이스라엘, 예수님의 흔적을 느끼며 들어간 이스라엘은 척박함과 메마름 이었다. 그리스나 터키에 비해 돌들뿐이었다. 환경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너무나 달랐다. 감람산, 죽음을 알고 기다리는 시간,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나 또한 다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감사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십자가의 길, 지금은 복잡한 거리가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그 길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늘 눈물이 난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곳, 그 피가 우리를 정결케 했다.
  통곡의 벽,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갖고 이곳을 찾는다. 벽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 그 속에서 누가 진짜일까?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땅을 밟고 곳곳을 다닐 때 마다 눈물이 솟아오른다. 이스라엘은 기념교회가 많다. 이러한 교회들 보다는 시험산, 기드론 골짜기, 쿰란, 므깃도 등 광야와 산지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꼭 예수님의 마음 같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멜산의 엘리야, 그곳에서 집착하며 사진을 찍어대며 엘리사처럼 능력을 구했다. 선교사님이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는 성경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전 진리를 얻었기에 지금도 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그래서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씀에 적극 공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한국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고 또한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한다.  ‘느보산’의 모세처럼 이제는 겸손히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며 나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번 순례를 통해 성큼 자라난 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글. 봄길교회  김현미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

 

그리스를 지나 터키 속으로, 소아시아 7대교회를 방문하다.
그리스의 멋진 해변과 올리브나무에 익숙해질 무렵, 버스는 어느새 키피 - 입살라 국경을 통해 터키로 향했습니다. 터키는 국토의 97%가 아시아권에 속해있고, 3%가 유럽대륙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써 예로부터 동서양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스·로마, 비잔틴, 이슬람까지 5,000년 역사의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소아시아 7대교회의 터전을 밟을 수 있는 역사의 땅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순례단은 소아시아에서 제일 큰 도시였으며 그 유명한 두란노 서원이 자리해있는 처음사랑을 잃었다고 책망 받은 에베소교회가 자리한 에베소 유적지,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끌어와 사용했으나 그 거리가 멀어 미지근한 물을 사용했던 곳으로 신앙 또한 이러한 미지근한 물과 같아 차지도 덥지도 않다 책망받은 라오디게아교회 유적지, 지진이 많아 땅을 파면 족족이 유물이 발굴되는 빌라델비아교회, 사치와 향락의 늪에 빠져 실상은 죽은자라고 책망 받은 사대교회, 잘못된 자비로 발람의 교훈을 지킴으로써 책망받았던 버가모교회, 그리고 일정과 동선이 맞지 않아 방문하지 못하고, 설명으로 함께했던 이방 여선지자 이사벨을 용납하여 책망 받은 두아디라교회, 유대인들의 정착지로 기독교인들의 핍박이 심했기에 후에 빌라델비아교회와 함께 책망 없이 위로와 권고를 받은 서머나교회까지 소아시아7대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풍족함과 음란함 가운데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황과 그로인한 책망, 회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말씀을 지키고 전도에 힘썼던 믿음의 선진들의 발걸음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데린구유 지하도시와 파샤바 계곡, 괴뢰메 동굴 등
종교탄압을 피해 지하와 동굴에서 지켜온 신앙과 마주하다.


우리는 버섯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연출하는 카파도키아의 파샤바 계곡과 최대 30,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지하도시 데린구유를 방문했습니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지혜로움은 역시나 놀라웠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들어와 교회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와인 저장고를 축조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됐다고 합니다. 이곳의 축조과정을 수치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10만여명이 30여년을 일해야 만들 수 있다는데요, 이곳의 환기 시설은 아직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손길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밖에 지진으로 인해 변형된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산지에 동굴을 파고 이곳에 숨어서 신앙을 지킨 많은 신앙인과 수도승이 이루어낸 파샤바․비둘기 계곡의 모습, 그리고 비둘기 변을 이용해 그린 프레스코 성화 등을 바라보며 그들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쉼, 그랜드 바자르에 들러 두 손을 가득히. 
12박 14일의 여정의 중반 쯤 왔을까요? 많은 성지들을 둘러보는 동안 신앙은 성숙해가지만, 마음과 다르게 몸은 조금씩 지쳐갑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마침내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잠시 굽었던 허리를 펴고 맑은 하늘을 봅니다. 우리와 다른 신앙 이슬람을 믿는 터키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그 신앙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있는지 잠시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가면 꼭 둘려봐야 한다는 그랜드바자르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그랜드바자르는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는데요. 18개의 출입구와 4000여개의 상점이 즐비해 있다는 이곳에서 순례단은 시간관계상 하나의 출입구 밖에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시의 모습과 오색빛깔 장신구와 식료품 등에 잠시나마 일행 모두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가서 전해 줄 선물들은 이제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에 순례단의 발걸음은 더욱 가볍습니다. 


 하지만 쉼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비잔틴 제국시대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건축된 성소피아 성당과 오스만 시대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성소피아성당 맞은편에 건축한 블루모스크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도시의 물 공급을 위해 지어진 지하물 저장고 속에 우상기둥들을 보며 당시의 신앙의 흐름과 대립 또한 느껴보았습니다.
묵직한 두 손,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는 벤구리온 공항을 통해 이스라엘에 도착했습니다. 긴 여정과 비행으로 곤한 순례단은 따뜻한 온천수가 함께하는 숙소에서 편안한 휴식을 갖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몸과 마음을 충전합니다. 남은 일정은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타이트하고, 조금 더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코리아를 외치며 기뻐하는 현지인들과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