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앞둔 겨울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212, 양천구 신정동으로 가는 길. 겨울의 끝자락, 미세하게 풍기는 봄내음 때문인지 오늘의 특별한 만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발걸음이 가볍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후원팀의 신입 간사가 된지 어느덧 6개월. 지난 반년을 돌아보면, 주어지는 모든 일들이 참 낯설고 신기했다. 대부분의 일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내게는 아직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웹레터로 전하는 일이다.

 

우양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람을 돕고 있는 만큼, 내가 만나는 이들도 다양하다. 고엽제로 고통 받는 할아버지와 개성에서 서울까지 오기까지 9년이 걸린 탈북자, 도서관이 멀리 있어 책을 읽을 수 없는 농어촌 아이들까지. 한 달에 한 번. 이들의 길고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누구보다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한 없이 여리고 누구보다 강인한 한 엄마를 만났다.

 

 

진화씨는 8년 전 갓 걸음마를 뗀 아이를 업고 탈북을 했다. 탈북을 해서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지금은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국경을 몇 번이나 넘어야 하는 고된 여정을 딸은 엄마를 의지하며, 엄마는 딸을 생각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면서. 희망이 있는 자유의 땅, 노력하고 일한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내일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 진화씨 모녀에게 한국은 희망의 땅이었다.

 

가까스로 온 한국 땅. 하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새벽에 나가 밤까지 식당일을 하고, 간호사 공부를 하며, 두 아이까지 돌봐야 했던 진화씨는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야하는 하루하루가 막막했다. 책 한 권도 마음껏 사주지 못하는 형편에 몰래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단다. 그때 진화씨의 마음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누군가 버린 책들을 낑낑대며 주워오는 딸 민정이였다며 진화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함께 간 로컬 매니저 분과 나도 가만히 앉아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울림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잘나고 좋은 이야기를 하기는 쉬워도,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는 감추고 싶은게 인지상정 일텐데 하는 생각에 때론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흔이 넘은 나이에 폐지를 주으면서도 늘 감사하다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3년 전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를 보았다. 손주들 중 유난히 나를 예뻐하셨던 할머니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병세가 악화되고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 장장 50년 넘게 홀로 사셨다.

 

사실 사진 몇 장, 몇 줄의 글에 어떻게 그 길고 모진 세월이 다 담길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을 닿았다면, 그것은 나의 글 몇 줄 때문이, 혹은 어떤 사진 한 장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을 통해 누군가는 자신의 할머니를, 힘들던 청년시절을, 혹은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겪었을지 모를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울림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모르는 당신의 아픔을 타인에게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 다른 이의 희망을 마음 다해 응원하는 것, 이토록 사소한 기적의 순간에 내가 있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봄이 되면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오랜 시간 묵혀온 그의 삶과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매번 설레고 낯선 이 만남을 통해, 나는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가는 것을 실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