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100교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 성지순례후기 2탄 [부강교회 김혜경 사모]
  2. 농어촌 목회자, 예수님 사역 현장으로 떠나다

 

 

우양재단 농어촌 사모 초청 성지순례가 가져다준 기쁨들!

성지순례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우양재단을 통해 그 꿈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성지순례를 갈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꼭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생각하고 말했었는데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철모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이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염세주의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수줍음 많이 타는 소녀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으며, 바울사도의 전도의 열정에 도전도 받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수님이 증거 되길 원한다는 고백에 위로를 받으며, 나또한 어머님의 채찍이 고난이 아닌 기쁨과 믿음의 성장으로 여겨졌던 초 신자 시절을 그려봅니다. 그 시절에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 말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봉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대학에 낙방하고 약3여 년 동안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부흥회 기간에 “나 같은 사람도 신학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신학대학에 편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입학금을 책임져 주실 수 없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교회 언니를 통해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교회의 도움과 자식을 이기지 못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20살부터 해오던 소년원사역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남편 목사님을 만나 결혼하고, 지금의 교회가 있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준비 없이 그저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순종하여 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되었고, 수없이 많은 실수도 겪고, 수없이 많은 감사함도 고백하고 지금까지 만10년 동안 이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성지순례전 정의승장로님 부부의 메일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나님과 지금 나는 가까이 있는가? 사모라는 이름만 있고,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과 하나님께서 성지순례를 통해 어떤 열매를 바라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순례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리스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평안하고 역사의 숨결이 이곳저곳에 묻어 있는 곳 이였습니다. 가이드집사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졸음을 참아가며 고대의 그리스와 현대의 그리스에 흠뻑 빠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숨 쉬는 신화와 역사, 바울의 걸음이 떠올랐습니다. 아크로폴리스를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바라보며,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안타깝게 이야기하는 바울의 심정, 마치 미신을 섬기고 있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외침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린도 박물관 유적에서는 ‘투구’를 통해 ‘리더는 눈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일침과 ‘허리띠’ 진리의 띠를 단단히 맨 사령관의 모습, ‘방패’가 곧 병사 자신이여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자!는 성경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더욱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테오라 수도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정교회의 수많은 수도사들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 교회에서는 우리교회도 루디아처럼 물질과 봉사로 헌신할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유적지에서 함께 나눈 찬양은 남은 순례여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아름답고, 주님이 강한 성이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네압볼리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뒤로하고 바울사도과 동역자들을 부른 고요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가슴이 따뜻한 헬라사람들이 숨 쉬는 그리스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터키에서는 그 광활함에 놀랐고, 땅의 척박함에 놀랬으며, 이런 곳을 찾은 바울의 여정은 감탄 그 자체였습니다. 트로이유적지가 1기~9기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특별히 2기 때의 양식은 짚과 진흙을 섞어서 만들어서 지금도 그곳에 벌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생명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가장 약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에베소지역의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의 현장은 참으로 놀랍고, 거대한 원형극장에서 설교했을 바울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그 거대한 울림, 그 거대한 걸음걸음.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가 로마시대의 기획도시로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을 겸비한 고대의 의식과 사상과 기술과 문화에 놀라울 따름 이였습니다. 특별히, 라오디게아교회의 온천수를 끌어 들인 수로와 수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교회가 미지근하여, 게으름으로 인해 책망 받았다는 말씀을 들으며,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도 책망하시는 것은 아닐까? 너무 느리게 성장한다고, 혹은 게으르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10년의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이 넘쳐나는 콘야에서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긍휼의 은총을 그곳에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데린 구유의 기가 막힌 구조와 갑바도키아의 장관은 지금 우리교회의 구조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오직 신앙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열정과 지혜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스탄불, 내가 이 땅을 밟아 보다니?” 그냥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람선은 우리 모두를 소녀로 돌아가게 한 듯합니다. 그 바람, 물결, 풍경, 웃음, 몸짓 그 어는 것 하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2차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이레네교회의 역사와 이슬람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터키, 넓고 다양하지만 여전히 공허한 나라, 그리고 기하학이 곳곳에 넘치는 나라, 이곳을 바울사도께서 전도지로 선택한 이유와 그 힘든 여정을 그려보며, 여전히 이슬람 문화권에 젖어 있는 그들의 삶이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님 당시의 흔적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 종파의 집합소가 되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주님은 한분이시니까요.
  가이드 목사님의 20여년이 지난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 전해지는 살아있는 말씀들이 우리들을 웃게도, 울게도, 깊이 생각하게도, 결의 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기 전 “21세기의 십자가의 길이다. 한눈팔지 말라” 하시며 함께 부른 찬양과 그 길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곧 예수님이 나오셔서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호통 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사에 눈이 번뜩이는 사람들, 지금 우리들의 교회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가판대만 늘어놓지 않았을 뿐 그들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베드로통곡교회에서는 생명의 물 생수가 강같이 흐름은 성령의 역사, 즉 회복의 역사이며, 말씀이 곧 생명의 역사임을 통해 성경의 소중함을 더욱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불태우기 전에 죽지 않는 이천년 전의 감람나무가 예수님의 말없는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언의 증인들. 그 자태가 참 좋았습니다. 쿰란공동체에서는 신앙을 지켜가던 그들에게서 멀리보이는 느보산은 모세가 죽은 장소이며,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곳이고, 모세를 통한 지도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 지도자상은 온유함(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나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있다.), 엎드리는 자세(원망하는 사람들 앞에 엎드림),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다시 회복하려면 죽을힘을 다해도 어렵다.)는 것 이였습니다. 길가 언덕에서 양이 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을 키울 때 염소를 반듯이 함께 키운다고 합니다. 더울 때 붙는 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이고, 하나님의 교회도 양과 염소가 있고, 염소 같은 성도는 감당하려하지 말고 양을 지키기 위해 보냈다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맡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고개를 숙이고 때를 지어 다니고, 염소는 고개를 들고 다니며, 이런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염소는 목사를 기도 하게하는 역할임을 잊지 말고, 지도자는 평안할 때 기도하고 문제가 생길 때는 평안히 하늘을 의지해야 함을 귀띔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모의 사명의 방향성을 잡고,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요르단. 모세의 숨결이 살아 있고, 사해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느보산의 광경을 통해 모세의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4일이라는 긴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깨달음은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숫자와 상관없이 손끝 닿는 사람들  한명이든, 두 명이든,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사모로써 그래도 책망 받지 않게 잘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움추렸던것을 활짝 펴고,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양육해서 부흥이라는 열매를 원하시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전도하는 이유를 이스라엘 가이드목사님께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재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십자가의 군대가 되게 하기 위함에 초점을 맞추어 이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는 문명의 중심 속에 있는 곳으로써 철학, 수학, 천문학, 신학등 다양함에 대한 통찰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그들, 터키의 광활함과 기하학 속에서는 바울의 기나긴 여정과 척박한 땅이기에 올리브를 자라게 하는 힘 이를 통해 수많은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흔적들을 보며, 사모로써의 역할에 대한 자리 매김을 얻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 대신 사모님들의 왁자지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긴 여정에 피로가 쌓였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깔깔깔, 하하 호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위를 나는 긴 여정은 하늘도 지척에 있고, 태양도 손닿을 듯 했습니다. 곧 땅 내가 한발 한발 내딛어서 걷고, 뛰어야 하는 나의 삶의 자리로 가는 것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성지순례의 감동과 감사를 잊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하고, 명철한 지혜로 사는 삶을 지속해야 하리리라 다짐해 봅니다. 기압차로 인해 귀가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과 나, 상대편과 나,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사모의 역할, 성도들의 영적 어머니!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기도의 어머니인 삶의 자리에서 즐거움과 감사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함께한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시고, 전도의 열정을 품을 수 있는 열매를 주신 것 고맙습니다. 하나님! 우양재단을 통해 이 좋은 인연을 주신 것 참 감사합니다.

 

 글. 부강교회  김혜경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 예수님 사역의 현장으로 떠나다

 

농어촌 교회 목사들의 특별한 순례가 아닌 일상인 삶으로의 부르심

농어촌 목회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님들, 각자 부르심의 시간도 장소도 달랐지만 농어촌을 사랑하고 그곳이 부르심의 장소라고 믿는 목사님 91명이 기원전의 세계로, 예수님 사역의 현장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런 여행을 성지순례라고 하지만 이 여행은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행이 시작되고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니 그것이 더 확연히 깨달아졌습니다. 이 여행은 어떤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일상에서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온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은 한국과 중동이라는 지리적 차이를 넘어서 우리들의 가슴 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고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이름 하나 하나 낯설지 않고 가는 곳 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많이 얘기 하고 늘 설교하던 바로 그곳에 온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여행임을.

11박 13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일상으로의 여행’은 이집트의 고대 도시 룩소에서 시작되어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카이로를 지나 예수의 땅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지역과 갈릴리 지역을 순례하고 요르단으로 건너가 모세의 최후 족적이 남겨진 느보산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집트 : 고대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

이집트는 고대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나라 전체가 유적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입니다. 처음 방문한 도시 룩소의 카르낙 신전, 맴논의 거상 거대한 룩소 신전들을 보고 있자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광주 보여교회 김정원 목사는 “이들이 비록 하나님을 알진 않았지만, 이들의 믿음을 볼 때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다시한번 느껴요. 하나님은 우주적인 분이 확실해요.” 라는 말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카이로에서 차로 3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마가기념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12제자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이집트 기독교인인 콥틱교인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가 기념교회에서는 때마침 예배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잠시 묵상하며 예배를 참관하기도 했습니다.

 

아기예수 피난교회, 벤에즈라회당

인구 2,200만의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교통 신호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통이 아주 혼잡합니다. 언제 어디서 차가 막힐지 몰라 시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100여 명의 목사님은 카이로 시내 이곳저곳을 누빕니다. 올드 카이로 지역에 아기예수 피난교회를 방문하고, 모세기념교회인 벤에즈라 회당에도 들렸습니다. 목카탐 동굴교회에서는 현존하는 이집트 콥틱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집트는 역시 피라미드의 나라입니다. 책이나 TV에서만 봤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불가능이 현실로 내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에 넉넉했습니다. 때론 엽서나 관광 상품을 파는 집요한 이집션들 때문에 불쾌할 만도 하지만 기분 좋게 1불을 내며 이집션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목사님들을 자주 마주 치면서 사랑 나누기를 생활로 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 40년 광야 길을 하룻길 만에 예수님의 땅으로

바쁘게 이집트 일정을 소화한 목사님들이 이제 고센 땅을 떠나 ‘출애굽’ 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육로를 통해 이스라엘 국경까지는 12시간이 꼬박 걸립니다. 시나이 반도를 둘러 가는 길입니다. 물론 더 빨리 질러가는 길도 있지만 이집트 현지 치안이 불안한 관계로 경찰이 지정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안전 문제로 시내산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았던 황량한 산을 가까이 바라보며 시나이 반도 남단을 우회하며 종일 달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에 걸쳐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우리 순례 일정은 그저 하룻길입니다. 창 밖에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 길은 고된 여정을 말해주지만 그래도 기대가 됩니다. 목사님들은 광야를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 하면서 한편 저마다 예수의 고향에서 예수의 흔적을 찾는다는 사실에 흥분되나 봅니다. 그 현장에서 예수의 흙 묻고 굳은살 박힌 발을 마주한다면 심정이 어떨까요?

 

광야로 부르심 ; 미드바르(말씀으로부터)

타바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서 처음 마주한 건 역시 광야였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를 보고 있자니 세례요한이 떠오르고 예수님의 광야 시험사건도 떠오릅니다. 이스라엘 말로 광야는 ‘미드바르’입니다. 해석하면 ‘말씀으로부터’ 입니다. 인생에서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곧잘 삶이 ‘광야’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 뜻을 이제 알고 나니 인생의 어려운 순간 우리를 말씀으로 돌아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승천교회, 주기도문이 각국의 언어로 쓰여 있는 주기도문교회, 겟세마네 만국교회,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던 베데스다 연못,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마지막 성만찬을 나누셨던 마가의 다락방, 첨탑에 닭이 인상적인 베드로통곡교회, 예수님 출생지인 예수탄생 기념교회, 예수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성묘교회 등 성경의 사건이 기록된 이곳저곳을 빼먹지 않고 꼼꼼히 순례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그 곳에 해당하는 성경 말씀을 읽으며 묵상을 했습니다. 모두 해발 780m에 위치한 예루살렘에 있는 순례처들입니다. 약간 쌀쌀한 날씨지만 각국에서 모인 순례객들이 만원을 이뤄 저마다 예수의 흔적들을 따라 다닙니다. 가장 감격적인 순례 장소는 역시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이었습니다. 100여 명의 목사님과 일행들은 14개의 처소를 찬송을 부르며 숙연하게 걸었습니다. 우리일행이 이루는 장사진의 광경이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아수르의 침략에 대비해 뚫었던 히스기야 터널은 성인 남자 한 사람이 걷기에도 비좁은 캄캄한 공간입니다. 물은 종아리까지 찹니다. 일렬로 줄지은 목사님들은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 실로암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성경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역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1947년 5월 어느 봄날. 한 베두인 소년이 찾아낸 동굴 안 항아리 속의 두루마리는 오늘날 구약성경의 권위를 확실히 하는 너무나 소중한 필사본입니다. 성경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쿰란 공동체의 삶을 보니 가슴이 짠해 옵니다. 100여명의 목사님들은 사해사본에서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구약인 에스더서를 혹시나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장난기 어린 맘에 에스더서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안식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는 안식일입니다. 히브리어로 ‘샤밧’이리고 부르는데 이때 이스라엘의 학교, 관공서,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고 그야말로 안식합니다. 길거리에 차는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일행이 이스라엘에 도착한 날이 바로 그 샤밧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었습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적잖이 놀라기도 하고 긴장도 됩니다. 이스라엘 처음 여장을 푼 곳은 바로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다섯 개 중에 하나인 여리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강도 만난 자를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방문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저마다 성경의 비유를 떠올리며 이곳저곳을 면밀히 살핍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합리적인 사고에 젖어 본질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곳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에서 다시 한번 물으십니다.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온갖 수탈과 유린을 경험했던 우리는 600만 명의 유태인 학살을 추모하는 야드바솀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거울삼아 우리 민족의 어두웠던 역사를 회상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평화에 새삼 감사했고, 북한도 속히 이런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선지자 450명과 영적 대결을 벌였던 갈멜산과 요한계시록에 종말에 전쟁이 일어날 곳이라고 예언된 므깃도를 순례하고 곧 이어 갈릴리로 올라갑니다. 바로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빈민촌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평야가 펼쳐지는 도시입니다. 목사님들은 벌써부터 신난 기색이 역력합니다. 농어촌 시골교회,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가고 늙은 어르신들이 전부지만 그분들께 갈릴리에서 나온 대추야자를 선물로 드리려는 생각에섭니다. 잠시 교회를 떠나왔지만 맘속에는 계속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성도들 생각뿐입니다. 마리아 수태고지 기념교회, 요셉 기념 교회,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가이샤라 빌립보, 요단강 세례터, 팔복교회, 오병이어 기념교회 등의 순례지는 마치 우리가 잘 알고 늘 출입하는 곳처럼 우리들에게 친근미를 주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는 그야말로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 하셨던 그 회복의 주님께서 우리 일행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것은 실의에 빠져 사명을 잃고 있는 제자들을 다시 ‘삶’으로 그리고 ‘사명으로 초대하시는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어부 베드로‘를 ’사도 베드로‘로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부르심의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우리 일행은 모두 한척의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찬양하고 기도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회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회복 되어야 할 짐을 지고 있습니다. 잔잔한 갈릴리 바다 선상에서 목사님들이 흐느끼듯 한 목소리로 부르는 찬송과 기도는 주님께서 목사님들의 어깨를 어루만지시며 ’아무 염려 말고 내양을 먹이라.‘ 하는 회복의 메시지로 응답되며 갈릴리 호수를 조용하게 뒤 덮어 갔습니다.

 

 요르단 : 바울의 족적이 남아있는 바로 그곳 페트라

요르단에도 기대 이상으로 성지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3장의 ‘길하렛셋’ 성이였고 모압왕 ‘메사’가 장남을 번제물로 드린 카락성이 처음 방문지였습니다. 이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면서 성경 속 에돔족의 도시였던 ‘레겜’인 페트라를 순례했습니다. 돌을 깎아 만들었다는 멋진 조각물이나 정교하게 이어져 가는 수로 등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납니다. 한때 4만 명이 거주하였다는 이런 엄청난 곳이 천년 동안이나 발굴되지 않고 밀폐되어 있었다니, 잘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 날에는 6세기 성지의 모자이크로 유명한 마다바의 그리스 정교회를 순례 하였고 마지막으로 느보산에 갔습니다. 모세가 자기는 갈 수가 없는 곳 멀리 가나안 땅을 회한의 마음과 더불어 바라보았던 산, 거기서 죽어 장사되어진 곳으로 전해지는 느보산에는 오늘도 순례객으로 만원을 이루며 놋뱀이 높은 장대위에 서 모세의 때를 회상하게 했습니다.

느보산 순례를 마지막으로 이번의 성지 순례의 대 장정은 모두 끝이 납니다.

이번 순례여정에는 이제 농어촌 목회를 갓 시작한 새내기 목사님부터 농어촌 목회가 벌써 30년이 넘어가는 고참 목사님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하였습니다. 1993년 이래 우양재단이 섬겨 온 100교회 농어촌 교회 목사님들 모두를 초청하였으나 아홉 교회는 건강문제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91교회 목사님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재단의 수행원, 현지 가이드 등 모두 100명이 넘는 많은 일행이 3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순례를 하였습니다. 역시 목사님들이라,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순례 그 자체가 벌써 은혜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작고 많고, 경험이 많고 적고를 떠나 서로 배울게 있다면 겸손히 배우고 나누는 것이 미덕임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이 다름 아닌 목사님들임을 새삼 확인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디베리아 호수가에서 만났던 ‘네가 정녕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우리에게 회복의 은사를 베푸시는 ‘회복의 주님’을 가슴에 품고 이제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마른 땅이 녹아 산과 들에 생명이 피어오르는 계절입니다. 우리 농어촌 목회자들이 사역하는 지역과 교회에도 작지만 아름다운 변화의 꽃들이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농어촌이 더 이상 소외와 결핍의 터가 아닌 희망과 변화와 기회의 터임을 확신하는 농어촌 목사님들의 힘찬 사역을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성지순례는 우양재단과 함께하는 농어촌 100교회 목사님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로 농어촌 목회를 사명으로 알고 마을 속에서 작은 공동체를 일궈 가시는 농어촌 목사님들의 묵묵한 헌신과 수고에 대한 감사이며 격려의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의 주인공인 목사님들이 이번 순례를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고 앞으로의 사역에 많은 영감이 지속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