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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 성지순례후기 4탄 [벧엘교회 유하나 사모]
  2. 2013 성지순례후기 3탄_[행복한교회 김유선 사모] 1
  3. 2013 성지순례후기 2탄 [부강교회 김혜경 사모]

 

 

(왼쪽이 유하나사모)

성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이 긴 여정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는, 뒤로한 아이들과 애써 웃고 있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 두고 온 교회에 대한 어려운 마음이 더 커지는 비행기 안이다. 나는 계속 기도한다. 하나님을 더 친밀히 만날 수 있게 예비하신 이 시간동안, 당신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들을 놓치지 않을 영적 예민함을 허락하고서. 두고 온 가족들과 교회의 모든 순간마다 평안과 불평 없는 삶으로 인도하소서. 여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 후회 없게 하시고 지혜롭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도하에서 아테네로 향한다. 그리고 이제 곧, 진정한 순례의 시작이다.
 


처음 만난 아테네는 여유와 자족이다. 긴장을 풀어주는 햇볕과 정말 잘 어울리는 에게 해~! 그래서 하릴없이 온종일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 곳. 이 순간부터, 가족들이 차츰 머릿속에서 멀어진다. 여행에 집중하기 위해 벌써 내려놓고 있다. 아테네를 둘러보고, 교과서에서 봤던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서 본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열정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아레오바고 언덕 아래서 비문을 바라보며 상상해 본다. 첫 발을 내딛은 이국땅에서 맛보는 고향의 맛, 키다리 상추쌈과 된장국은 꼬박 하루를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쉼 없이 시작한 여행의 깜짝 선물과도 같았다. 잊을 수 없는 갓 짜낸 오렌지 주스, 욕심 부리며 몇 잔을 마셔대고 있다. 10여일 이상을 긴장 속에서 마치 숙제하듯 다녀 올, 화장실에 대한 부담은 잠시 잊는다.

 

 

성지 순례를 통해 뇌리에 박혀 버린 몇 곳은 그리스의 메테오라 산정 수도원, 터키의 데린구유 지하 도시, 괴뢰메 동굴교회, 이스라엘의 쿰란이다. 이 곳을 지나간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의 공통점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이고 목숨과 같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예수의 ‘ㅇ’도 모르는 무지한 집안에 시집 와, 신앙을 지키려고 무식하리 만큼 타협 없이 올곧게 예수를 붙드는 내 어머니가 무척이나 바보스럽게 보였다. 할머니-내 어머니에겐 시어머니-에게 어머닌, 집안도 말아먹고 아들도 못 낳는, 재수 없는 예수쟁이였다. 위의 성지들 안 밖에서 그들이 흘렸던 눈물과 핏 방울은, 내게는 크고 높게만 보이는 어머니의 신앙지킴과 견줄 수도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지켜냈기에, 그 복음이 내 어머니에게 올수 있었고, 지금 내 앞까지 온 것이다. 복음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 갈 때까지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써가고 계신다. 보이지는 않지만, 길고 긴 역사의 흔적 속에 감추어진 눈물과 핏 방울 앞에서 나는 낮아졌고,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어머니처럼, 예수만 붙들고 예수만 내 자녀에게 전해주리라 다짐한다.

 

순례의 기간 동안 값진 역사의 흔적들 앞에서 함께 했던 예배와 기도, 찬양의 감격을 그 때의 느낌으로 담아두지 못함이 아쉽고 아쉽다. 마치 ‘로또 당첨’처럼 날아 온 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는 이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정말 귀하고 값지다.

이 모든 여정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고 성취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목사님 옆에서 이 귀한 길을 가게 하시고, 같은 마음으로 길을 가고 있는 동역자들과 기쁨의 발자취를 걷게 하시는지.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다.

수고하신 우양의 모든 분들과 열심히 뛰어다니신 갈릴리 여행사 박 대리님, 사진 찍어 주시느라 애쓰신 분들, 웃고 울며 함께한 모든 사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벧엘교회  유하나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

 

 

 

행복한교회 김유선 사모(사진_오필록 목사님과 함께)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그날, 사모님들도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신청하시겠느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망설이지도 않고 가겠다고 대답한 이후로 석 달여간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4월 13일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저는 집에서 나와 교회에 들러 남편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호흡기1급 장애를 가지고 있던 저는 폐렴에 걸린 줄도 모르고 통증을 견디다가 결국 폐와 심장에 무리가 왔습니다. 그래서 자가 산소를 하면서 지낸지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사실 산소를 사용하면서 외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작년 봄에 하나님의 선물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다녀 온 후, 좀 더 도전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올 해 초에 제게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던 비행기여행을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전 이번 성지순례 초청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그 응답이라 여겼기에 수 없이 반복되는 고민과 갈등 속에서 오로지 기도만 했습니다. 입을 열면 못 가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던 중에 단체로 움직이는 순례길에 보호자 없이는 안 될 것 같아서 우양에 남편(목사님)의 동행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양에서는 심사숙고 하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반대 할 법한 남편도 아무 말 없이 진행해 주었고, 우양에서도 여행사에서도 역시 아무 말 없이 진행해주신 덕분에 저는 14일 간을 기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남편, 우양, 여행사 중 한 곳에서 제발 막아 주시길 기다렸는데 오히려 격려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여행보험회사에서만 저를 거부하셨다죠?~ㅎㅎ 그래서 여행보험 없이 각서 쓰고 다녀왔습니다)

 

 

그러한 감사함 가운데서도 성지순례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첫 번째 비행을 하고나서 환승을 하려는데, 돌아가는 길이 비행기 타야하는 길이 아니라면 다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인정사정없는 시간과의 싸움, 적지 않는 인원의 단체여행 속에서 “점점 겁이 나고 나만 아니었으면 남편얼굴이 저리 수척해지지 않았을 텐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고......나만 아니었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예민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에 말이에요. “나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참 많이 힘들었지만 하나님이 이곳에 나를 부르셨다! 라는 확신을 붙잡고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성지순례의 여정, 그리스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사도를 만나서 고린도로 베뢰아로 데살로니가로 마테오라로, 어디를 가나 신화가 있고 유적이 있고 아름다운 하늘이 있는 그리스를 떠날 때는 참 아쉽고 서럽고 그랬는데 왜 서러웠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은혜를 많이 끼쳐 주셨던 가이드님과의 헤어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터키는 참 아까운 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넓고 비옥해 보이는 초원을 보면서 한국인이 이곳에 살았다면 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며 여유 있게 터키의 순례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만나는 일곱 교회의 모습들을 보면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얼까? 오늘날 교회를 지키는 것 하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산지대의 유적지를 돌아보느라 산소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쉬엄쉬엄 다니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건 벽화(또는 신상, 모자이크), 기둥,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신)을 설명하고 보여주려고 열심히 그리고 붙이지만 퇴색되고 후패되어 구경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신)을 모시겠다고 끊임없이 세우고 건설했지만, 다시 무너지고 빼앗기며 주인이 바뀌기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그것들은 옛 그림자가 되었고 목적지를 향하여 길을 내고 무너지면 다시 그 위에 또 길을 내고, ‘그 길 위에 지금 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고자 했던 그 곳을 향하여 나 또한 길이 되고 있다’는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느니라”

 

 

‘이스라엘에 들어오면 날씨도 따듯하고 지대도 낮아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또 춥고, 높고, 숨차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던 그 공간에 내가 들어왔다는 안도감과 몇 해 전에 한 번 다녀갔다는 익숙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을 떠나 요르단으로 향한 길에서는 느보산에서 모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여전히 물 위를 걷는 그런 마음이었지만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넘실대는 홍해를 가르시고, 자기백성으로 하여금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듯이 오늘 나에게 하늘에서 길을 내사 안전하게 건너게 하시리라는 감동을 손에 땀나도록 쥐고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은혜가운데 도착한 한국, 역시 한국도 추웠습니다. 지금은 여행으로 쌓인 피로와 노폐물이 몸 밖으로 나가는 중이라 고되어서 며칠 째 바깥 출입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 일 내로 몸을 일으키게 될 것이고, 지난 두 이레 간의 기적은 저의 삶 속에 또 다른 기적을 낳으며 제가 만나는 사람들, 제가 밟는 땅에 주의 보혈로 물들이게 할 것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더 많은 사모님들과 교제하지 못하고 과잉 보호받다 온듯하여 다시 한 번 만나서 은혜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연합해 순례여정을 마치고, 역사위에 삶으로 쓰는 새로운 여정에 주의  동역자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양재단 농어촌 사모 초청 성지순례가 가져다준 기쁨들!

성지순례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우양재단을 통해 그 꿈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성지순례를 갈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꼭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생각하고 말했었는데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철모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이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염세주의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수줍음 많이 타는 소녀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으며, 바울사도의 전도의 열정에 도전도 받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수님이 증거 되길 원한다는 고백에 위로를 받으며, 나또한 어머님의 채찍이 고난이 아닌 기쁨과 믿음의 성장으로 여겨졌던 초 신자 시절을 그려봅니다. 그 시절에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 말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봉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대학에 낙방하고 약3여 년 동안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부흥회 기간에 “나 같은 사람도 신학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신학대학에 편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입학금을 책임져 주실 수 없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교회 언니를 통해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교회의 도움과 자식을 이기지 못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20살부터 해오던 소년원사역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남편 목사님을 만나 결혼하고, 지금의 교회가 있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준비 없이 그저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순종하여 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되었고, 수없이 많은 실수도 겪고, 수없이 많은 감사함도 고백하고 지금까지 만10년 동안 이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성지순례전 정의승장로님 부부의 메일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나님과 지금 나는 가까이 있는가? 사모라는 이름만 있고,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과 하나님께서 성지순례를 통해 어떤 열매를 바라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순례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리스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평안하고 역사의 숨결이 이곳저곳에 묻어 있는 곳 이였습니다. 가이드집사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졸음을 참아가며 고대의 그리스와 현대의 그리스에 흠뻑 빠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숨 쉬는 신화와 역사, 바울의 걸음이 떠올랐습니다. 아크로폴리스를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바라보며,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안타깝게 이야기하는 바울의 심정, 마치 미신을 섬기고 있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외침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린도 박물관 유적에서는 ‘투구’를 통해 ‘리더는 눈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일침과 ‘허리띠’ 진리의 띠를 단단히 맨 사령관의 모습, ‘방패’가 곧 병사 자신이여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자!는 성경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더욱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테오라 수도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정교회의 수많은 수도사들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 교회에서는 우리교회도 루디아처럼 물질과 봉사로 헌신할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유적지에서 함께 나눈 찬양은 남은 순례여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아름답고, 주님이 강한 성이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네압볼리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뒤로하고 바울사도과 동역자들을 부른 고요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가슴이 따뜻한 헬라사람들이 숨 쉬는 그리스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터키에서는 그 광활함에 놀랐고, 땅의 척박함에 놀랬으며, 이런 곳을 찾은 바울의 여정은 감탄 그 자체였습니다. 트로이유적지가 1기~9기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특별히 2기 때의 양식은 짚과 진흙을 섞어서 만들어서 지금도 그곳에 벌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생명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가장 약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에베소지역의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의 현장은 참으로 놀랍고, 거대한 원형극장에서 설교했을 바울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그 거대한 울림, 그 거대한 걸음걸음.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가 로마시대의 기획도시로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을 겸비한 고대의 의식과 사상과 기술과 문화에 놀라울 따름 이였습니다. 특별히, 라오디게아교회의 온천수를 끌어 들인 수로와 수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교회가 미지근하여, 게으름으로 인해 책망 받았다는 말씀을 들으며,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도 책망하시는 것은 아닐까? 너무 느리게 성장한다고, 혹은 게으르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10년의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이 넘쳐나는 콘야에서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긍휼의 은총을 그곳에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데린 구유의 기가 막힌 구조와 갑바도키아의 장관은 지금 우리교회의 구조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오직 신앙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열정과 지혜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스탄불, 내가 이 땅을 밟아 보다니?” 그냥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람선은 우리 모두를 소녀로 돌아가게 한 듯합니다. 그 바람, 물결, 풍경, 웃음, 몸짓 그 어는 것 하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2차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이레네교회의 역사와 이슬람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터키, 넓고 다양하지만 여전히 공허한 나라, 그리고 기하학이 곳곳에 넘치는 나라, 이곳을 바울사도께서 전도지로 선택한 이유와 그 힘든 여정을 그려보며, 여전히 이슬람 문화권에 젖어 있는 그들의 삶이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님 당시의 흔적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 종파의 집합소가 되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주님은 한분이시니까요.
  가이드 목사님의 20여년이 지난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 전해지는 살아있는 말씀들이 우리들을 웃게도, 울게도, 깊이 생각하게도, 결의 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기 전 “21세기의 십자가의 길이다. 한눈팔지 말라” 하시며 함께 부른 찬양과 그 길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곧 예수님이 나오셔서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호통 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사에 눈이 번뜩이는 사람들, 지금 우리들의 교회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가판대만 늘어놓지 않았을 뿐 그들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베드로통곡교회에서는 생명의 물 생수가 강같이 흐름은 성령의 역사, 즉 회복의 역사이며, 말씀이 곧 생명의 역사임을 통해 성경의 소중함을 더욱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불태우기 전에 죽지 않는 이천년 전의 감람나무가 예수님의 말없는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언의 증인들. 그 자태가 참 좋았습니다. 쿰란공동체에서는 신앙을 지켜가던 그들에게서 멀리보이는 느보산은 모세가 죽은 장소이며,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곳이고, 모세를 통한 지도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 지도자상은 온유함(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나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있다.), 엎드리는 자세(원망하는 사람들 앞에 엎드림),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다시 회복하려면 죽을힘을 다해도 어렵다.)는 것 이였습니다. 길가 언덕에서 양이 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을 키울 때 염소를 반듯이 함께 키운다고 합니다. 더울 때 붙는 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이고, 하나님의 교회도 양과 염소가 있고, 염소 같은 성도는 감당하려하지 말고 양을 지키기 위해 보냈다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맡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고개를 숙이고 때를 지어 다니고, 염소는 고개를 들고 다니며, 이런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염소는 목사를 기도 하게하는 역할임을 잊지 말고, 지도자는 평안할 때 기도하고 문제가 생길 때는 평안히 하늘을 의지해야 함을 귀띔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모의 사명의 방향성을 잡고,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요르단. 모세의 숨결이 살아 있고, 사해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느보산의 광경을 통해 모세의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4일이라는 긴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깨달음은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숫자와 상관없이 손끝 닿는 사람들  한명이든, 두 명이든,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사모로써 그래도 책망 받지 않게 잘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움추렸던것을 활짝 펴고,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양육해서 부흥이라는 열매를 원하시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전도하는 이유를 이스라엘 가이드목사님께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재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십자가의 군대가 되게 하기 위함에 초점을 맞추어 이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는 문명의 중심 속에 있는 곳으로써 철학, 수학, 천문학, 신학등 다양함에 대한 통찰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그들, 터키의 광활함과 기하학 속에서는 바울의 기나긴 여정과 척박한 땅이기에 올리브를 자라게 하는 힘 이를 통해 수많은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흔적들을 보며, 사모로써의 역할에 대한 자리 매김을 얻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 대신 사모님들의 왁자지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긴 여정에 피로가 쌓였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깔깔깔, 하하 호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위를 나는 긴 여정은 하늘도 지척에 있고, 태양도 손닿을 듯 했습니다. 곧 땅 내가 한발 한발 내딛어서 걷고, 뛰어야 하는 나의 삶의 자리로 가는 것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성지순례의 감동과 감사를 잊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하고, 명철한 지혜로 사는 삶을 지속해야 하리리라 다짐해 봅니다. 기압차로 인해 귀가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과 나, 상대편과 나,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사모의 역할, 성도들의 영적 어머니!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기도의 어머니인 삶의 자리에서 즐거움과 감사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함께한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시고, 전도의 열정을 품을 수 있는 열매를 주신 것 고맙습니다. 하나님! 우양재단을 통해 이 좋은 인연을 주신 것 참 감사합니다.

 

 글. 부강교회  김혜경 사모/ 사진. 우양재단 성지순례 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