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에 해당되는 글 18건

  1. [닮고싶은 청년 vol.34] 농활이야말로 힐링캠프죠. - 농어촌섬김 장학생 우예품
  2. [밀착시선 #9] 꿈을 띄웁니다
  3. [도시청년농촌방문기 1탄]여름이다! 농촌봉사활동 가자!! - 합천 초계중앙교회

 

 

 

 

농어촌 목회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농촌엔 답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만난 우양은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었어요. 우양과의 만남이 우리가족에겐 위로였어요.”

 

우양의 여름은 농촌봉사활동으로 시작한다. 여름방학을 맞은 청년들은 농어촌에 있는 작은교회을 기점으로 농촌봉사활동을 펼친다. 우양청년들은 단순히 농사에 일손을 보태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을 위한 문화, 교육, 복지 전반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농활이 기존에 알던 농어촌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예품(23)씨도 그 중 한사람이다.

가는 곳마다 펼쳐지고 있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일들에 놀라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농촌에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는지 정말 흥미로워요. 제가 알던 농촌은 이렇지 않았거든요.”

 

 

 

 

사실 예품씨는 농촌이 익숙하다. 초등학생 때 전학을 와서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농촌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서울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시골교회 목사 딸이 되었어요.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고 갑자기 사람들이 저를 목사 딸이라고 부르는 것도 힘들었어요.”

예품씨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쯤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사춘기에 접어들 때부터 목회를 시작했다. 그녀는 변한게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목회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서울 강남에 살았거든요. 친구들은 저보고 서울깍쟁이이라고 놀렸고 선생님은 제가 목사 딸이니까 참으라고 했어요. 그게 농촌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이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새로운 학교에 적응이 힘든 것도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그녀의 가정이 순식간에 바뀐 것도 농촌으로 이사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는 것도 도시로 나가면 금세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가 그리웠어요. 그래서 가끔씩 도시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그렇게 설레었나봐요.”

조용하고 평화롭던 농촌교회가 부산스러워지는 날이 있다. 도시에서 손님이 오는 날이다. 온 가족이 몇 번이나 작은 예배당과 집을 쓸고 닦았다. 그 손님들이 도착한 것만으로 마을에 온통 활기가 돌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저는 농활을 가면 제일 먼저 그 교회 목사님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농촌교회 목사 딸이 어떤 느낌인지 저는 잘 알거든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작은 결핍이 있어요. 그걸 위로해 주고 싶어서요.”

그 시절 도시에서 온 손님들은 그녀와 그녀의 가정을 환기 시켰다. 이렇게 작은 농촌마을에 있는 한 목회자 가정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었다.

농어촌 목회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농촌엔 답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만난 우양은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었어요. 우양과의 만남이 우리가족에겐 위로였어요.”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예품씨는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농활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만 벌써 세번째다.

어렸을 때는 농촌에 사는 게 참 싫었는데 철이 들고 나서는 농어촌교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잖아요. 우양을 통해서 농어촌에 방문하고 조금이나마 그곳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좋아요.”

 

 

 

지금은 농활을 통해서 농어촌을 돕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그녀의 꿈은 음악치료사이다.

음악치료를 통해 마음은 물론이고 몸까지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요. 내가 전공한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대학원공부도 해야 하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하지만 꼭 음악치료사가 되어 제일 먼저 목회자 자녀들을 돌보고 싶어요.”

우양의 농활은 계속된다. 물론 예품씨도 함께한다.

농활을 다녀오면 참 좋아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직접 땀 흘리며 배우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또 힘을 얻어요. 다양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는 걸 느끼죠. 더 많이 청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농활이야 말로 정말 힐링캠프거든요.”

 

 

 

 

 

 

 

 

 

 

 

 

 

 

 


맑은 농촌 밤하늘에 손수 만든 풍등을 띄우며
우리 소망이 저 불빛만 같아라 빌어봅니다.

 

 

 

 

 

 

 

우양은 전국 각지의 농어촌교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농어촌교회가 지역에 필요한 문화, 교육, 복지 전반에 걸친 사업들을 계획하고 진행할 때 우양은 다양한 방법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매 년 여름에 떠나는 도시청년 농어촌 방문 프로그램입니다. 올해 농활 첫 방문지는 경상남도 합천입니다. 무더위로 손꼽히는 합천에서 청년들은 신나게 땀을 흘리고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청년들은 한나절을 꼬박 내려가 합천 초계중앙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시골교회에서 보기 어려운 예쁜 카페가 보입니다. 정식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목사님과 제과제빵 자격증이 있는 사모님이 직접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온 수익은 모두 지역 청년들의 대학등록금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작년에도 40명의 지역 청년들에게 장학금이 돌아갔습니다. 카페 바로 뒤 쪽에는 지역 아이들의 공부방이 있습니다. 공부방 마당에서는 자주 공연이 열린다고 합니다. 알수록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청년들이 23일간 농활을 진행합니다.

 

 

 

우양청년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장작패기, 고물 분류, 야외 수도설치 및 샤워장 만들기, 어린이 도서관 책장 정리, 마당과 텃밭의 김매기입니다. 청년을 보기 힘든 농촌 마을이기에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먼저 남자청년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땔감을 만드는 일입니다. 톱이나 도끼를 처음 잡아본 청년들이 대부분입니다. 처음 하는 도끼질이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태양 아래 우양청년들은 화로 속의 장작처럼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수차례 헛손질을 한 후에야 드디어 쓸 만한 땔감을 만들어 냅니다. 좀 더 익숙해진 뒤에는 꽤나 그럴 듯한 자세로 장작을 팹니다. 보기만 해도 든든한 장작더미가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 장작으로 카페에서 쉼을 가지는 마을 주민들과 공부방 아이들이 따뜻한 겨울을 맞을 것입니다.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기는 텃밭에서 김매는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해온 몸뻬바지와 농부 모자를 장착하고 한 손엔 호미를 들었습니다. 여자청년들 몇몇이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잡초를 뽑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는 저리고 해는 더 뜨거워지는 듯합니다. 서로 말이 없어지고 가끔 허리를 펼 때 만 눈짓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한참이 지난 후 해가 지기 시작하자 조금씩 깨끗한 밭이 드러납니다. 각자 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일하던 청년들이 오랜만에 서로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거 봐~ 우리가 이만큼이나 했어.”

아 다행이다. 도저히 줄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같이 하니까. 깨끗한 밭을 볼 수 있구나. 돌아가기 전까지 이 밭을 다 깨끗하게 만들어버리자. 우선 오늘은 그만~~^^”

이렇게 정직하게 몸을 쓰며 일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청년들은 열심히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후 내내 땀을 흘리며 일을 했지만 저녁을 먹고 나니 다시 힘이 납니다. 후식으로 목사님이 만들어주신 팥빙수를 먹으며 이 지역이야기와 지역을 섬기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잠시 농활을 한 후 떠날 곳이라고 생각했던 합천이 새롭게 다가온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밤 청년들의 수다는 밤이 깊을 때까지 이어졌지만 기상시간은 어김이 없습니다. 뜨거운 해가 들기 전에 오전 분량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도 전날 했던 일의 연속입니다. 농촌에 살면 1년 내내 해야 하는 일들이니까요. 이젠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어제부터 고물을 정리하던 청년들은 분류한 고물을 오늘 팔러 갑니다. 잘 분류한 빈병을 손수레에 실어 마을시장으로 갑니다. 청년이 귀한 시골마을에 젊은 청년들이 손수레를 끌고 다니니 시장 상인들이 모두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아이쿠~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어디서 왔나?”

~ 저희는 서울에서 여기 도토리 공부방에 봉사 활동하러 왔습니다.”

그렇구나. 그래요. 더운데 고생이 많아요. 수고들 해요.”

짧은 인사말이지만 덕분에 힘이 납니다. 빈병이나 패지는 워낙 가격이 낮기 때문에 하루 종일 모아도 몇 만원이 다입니다. 하지만 이 돈이 모여 지역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소중하게 받아 왔습니다.

 

 

일과가 끝나고 저녁시간이 되면 청년들은 더 신이 납니다. 하루 종일 있는 힘을 다 써버린 것 같지만 맛있게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엔 어디서 나는지 모를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는 농활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친구들과 짝을 지어 풍등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2014년 내가 바라는 것과 서로에 대한 메시지를 적어 각자의 풍등을 만들었습니다. 교회 앞 공터에서 풍등을 날리며 청년들은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어느새 돌아가는 날입니다. 서울까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도서관과 공부방을 정비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여름 내 지역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고 일부는 이 지역에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로 개방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자 청년들은 도서관 책장을 정리합니다. 시골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치고는 책이 꽤 많았습니다. 남자청년들은 야외에 샤워장을 만듭니다. 샤워장을 만드는 것이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여럿이 머리를 모으니 그럴듯한 샤워장이 되었습니다.

 

 

 

숨 가쁘게 지나간 23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고 의아해 하고 왔는데 돌아가는 순간 다시 이곳을 둘러보니 뿌듯합니다. 한쪽에 수북이 쌓인 장작과 잡초 없이 깨끗해진 텃밭과 마당 그리고 구석구석 새로 정비된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로써 우양청년들에겐 농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기분 좋고 정겨운 추억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도 새롭게 정돈된 이곳에서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