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섬김'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4년도 우양이 함께 하겠습니다[우양재단 뉴스레터 vol.53] 1
  2. [농어촌이야기 2]동화같은 공간을 선물하는 보길중앙교회
  3. [농어촌이야기 1]농어촌 사랑방을 꿈꾸는 하늘단비교회 2

 

 

 

 

전날부터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하늘은 연신 깜깜했다. 첫배로 보길도에 들어가겠다고 만발의 준비는 마쳤으나 배가 제때 떠 줄지는 알 수 없었다.

당일 아침, 안개는 가득하였지만 안개너머로 희미하게 보길도가 보였다. 배는 조심스레 안개를 뚫고 나갔다. 이제 보길중앙교회에 간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차 소리를 듣고 류영구 목사(48)가 나왔다. 먼 길을 왔다며 악수를 청하는데 손이 왠지 자연스럽지 않다. 묻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으니 류 목사는 그저 허허 웃는다.

보길중앙교회에서 운영하는 꼬예지역아동센터는 벌써 10년째 운영되고 있다. 예배당 한켠에서 몇몇의 아이들과 시작된 지역아동센터는 이젠 30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작지 않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예배당과 교회 앞 작은 공터로는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진지 이미 오래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잔디밭과 볕이 잘 드는 공부방과 도서관, 지도교사들이 쉴 수 있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공간까지 상상 속 공부방은 멋졌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그러나 현실 때문에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류 목사는 2011년 처음 망치를 잡았다. 꿈꾸던 공간들을 설계도에 담고 보길도 구석구석에서 쓸 만한 자재들을 모았다. 새로 짓는 센터는 건평 60평의 2층 건물이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은 류 목사 혼자였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아침을 먹고 공사장으로 출근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귀가 지도를 하기 전까지 혼자 작업을 한다. “건축에 돈이 드는 건 사실 대부분 인건비에요. 조금 느려도 제가 직접 하면 돈도 많이 아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으니까요.”

공사를 시작한지 3년째 되는 올 봄, 류 목사는 공사도중 부상을 입었다. “어느 때처럼 나무를 자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무 자르는 기계에서 툭 소리가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어요” 왼손 검지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갔다. 다행히 무사히 봉합이 되고 지금은 아물고 있다. 물론 그 동안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덕분에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공간을 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육지에서도 이것저것을 보내왔다. 그 중에는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다 정리하던 후배도 있어 괜찮은 피아노가 7대나 보길도로 들어왔다. 공부방에 놓을 책상과 걸상도 만들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손이 다쳐 쉬는 동안 우양재단에서 도서관 시설을 지원해 준다는 공고가 났다. 덕분에 번듯한 책걸상을 새 지역아동센터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낮에는 아이들이 사용하고 밤에는 한글학교에 오시는 어르신들이 사용할 거예요. 예배당 바닥에 매번 밥상을 펴놓고 공부하는 걸 아이들도 어르신들도 힘들어 했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또 있겠어요.”

몇 년을 공사장의 인부가 되고 부상을 입어도 류 목사의 눈은 반짝인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꿈꾸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내부 인테리어 구상을 끝냈어요. 손도 많이 나았으니 금세 공사 마무리를 할 거에요. 올 여름이 지나면 한번 놀러 와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센터를 볼 수 있을 거예요”

 

 

 

2013년의 봄은 우양재단의 100교회 사모들에게 특별하다. 그저 계절이 지나 돌아오는 그런 봄이 아니다. 꿈에 그리던 성지순례를 떠났고 그곳에서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좋은 동역자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동안 내 옆에는 예수의 성품을 닮은 길동무가 있었다. 그렇게 2주간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사모들은 각자의 사역지로 돌아왔다.

“요즘 사모님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줄을 몰라요.” 하늘단비교회 왕석종목사는 요즘 박지혜사모를 보면 참 신기하다. 성지순례에 가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전화기 이상으로 보지 않던 박 사모였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에는 카카오톡이다 밴드다 이런 저런 어플을 통해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모들과 매일 소식을 주고 받는다. 일상적인 안부부터 시작해서 목회현장의 고민, 농어촌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정보 등 나눌 이야기는 넘쳐난다. 여자들의 수다란 원래 끝이 없다. 목사라한들 남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 사모로 살아간다는 것

“동병상련이라고 하잖아요. 사모는 어디가서 힘들단 소리를 잘 못해요. 힘들어도 울고 싶어도 혼자 꾹꾹 삼키고 기도하는게 다죠. 그런데 비슷한 처지의 농어촌 사모님들을 만나니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살짝 운만 띄어도 쿵하면 짝 소리가 나게 받아쳐 주니까요.” 목회자 사모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직업이라지 않던가. 제대로 목회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목회자이상으로 감당할 부분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사모이다. 힘듬을 소리 없이 감내하는 것이 그 큰 부분 중 하나이다. 그런 속앓이를 이해주는 친구들이 생기니 신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모가 즐거워하니 목사도 즐겁다. 더불어 왕 목사가 섬기고 있는 군 부대 교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분다. 사실 왕 목사와 박 사모는 신학교 동기다. 결혼 전에는 박 사모도 전도사 생활을 했었다. 결혼 후 사모라는 이름으로 왕 목사를 돕고 있지만 왕년에 신학교에서는 과 수석을 놓치지 않던 수재였다. 그러던 박 사모가 성지순례를 계기로 다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그냥 성지순례에 다녀왔으니 간증형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조금 더 비중을 늘려 말씀시간을 전부 내주었죠.” 이젠 함께 군 교회에 가면 박 사모를 찾는 장병들이 더 많아졌다.

 

 

 

현재 하늘단비교회는 새로 교회를 건축하는 중이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직전에 건축이 시작되어 박 사모는 성지순례를 떠나는 전날 밤까지 마음이 흔들렸다. “성지순례 짐을 싸면서도 내가 지금 잘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이 많았어요. 그때 목사님이 평생 못 보내줄지도 모르니 기회가 있을 때 다녀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절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아이들과 목사님, 그리고 한창 공사중일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죠.” 어디 박 사모만 그랬을까. 간난쟁이 아기를 떼어 두고 온 사모나 아들을 결혼식 일정까지 당겨서 해치우고 성지순례를 온 사모까지 있다고 하니 농어촌 사모들에게 성지순례가 얼마나 특별한 기회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예배당은 작아도 괜찮아요. 그 대신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공간에 중점을 두었어요.”

소소한 몇가지가 변하였지만 박 사모는 여전히 농어촌 개척 교회 사모이다. 농어촌에서 개척을 한다는 것은 때로는 지루할 만큼 무던하게 한길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 박 사모도 그것을 안다. 하늘단비교회가 수년째 마을을 섬기고 있는 방법은 마을의 노인정이나 독거어른신댁에 떡과 과일을 간식으로 전해 주는 것이다. 동네폐지를 주어 그 재원을 마련했다. 이것이 타지에서 온 젊은 목사부부가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 현재 공사중인 교회에 크고 화려한 예배당은 없다. “예배당은 조금 아담해도 괜찮아요. 그 대신 마을 어르신들이 편하게 들려 쉴 수 있는 공간에 중점을 두었어요. 지치고 피곤할 때 혹은 심심할 때, 언제든 갈 수 있고 늘 편안한 그런 곳이 교회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