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전하는사람/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미소를전하는사람 vol.43]홍대'고갈비누나' 천경희후원자를 만나다.
  2. [미소를 전하는 사람 vol.42]‘쌀남쌀녀’봉사단의 해피바이러스 조희윤 청년을 만나다.
  3. [닮고싶은청년 vol.41]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어요. - 청년 이영훈 1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실내포장마차 홍대 고갈비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연히 시작하게 된 기부의 맛을 알아서 기부스라는 팟캐스트도 8개월째 함께 하고 있어요. 물론 푸드스마일즈 우양의 후원자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저를 고갈비누나라고 많이 불러요.

 

첫 기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첫 기부는 조금은 불순하게 시작했죠. 그때 장사가 좀 안되면 시기였어요. 근데 점심 먹으러 온 손님이 사회복지재단에서 일하는 분이시더라고 단골손님 만들어 보자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었죠. 그게 내 삶을 이렇게 바꾸는 시작이 될 줄 그때는 몰랐어요.

 

손님을 통해 첫 기부가 시작되었네요. 그럼 혹시 푸드스마일즈 우양과도 손님을 통해서 만났나요?

네 맞아요. 제가 마포에 오래 있었다보니 지역을 기반으로 기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지역에 오랫동안 계시던 분이 푸드스마일즈 우양을 소개해 주시더라고요. 내가 내는 후원금이 전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된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팟캐스트기부스의 인기가 상당한 것 같아요.

요즘은 정말 방송 듣고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죠. 이 동네에서만 십 수 년 동안 가게를 했어요. 그래서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컬투의 정찬우씨도 그중에 한명이죠. 내가 어떻게 방송을 하냐고 했더니 그냥 와서 욕만 해주면 된데요. 내가 또 마포의 김수미잖아요. 손님들한테 하듯이 욕 몇 마디 하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홍대고갈비가 기부의 아지트가 된 것 같아요.

방송을 하다보니까 주위에서 연락이 많이 와요. 자신도 기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기부를 어색하게 느끼는 지인들이죠. 방송을 통해서 그런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할 수 있다면 계절 마다 한 번씩은 가게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일일호프를 하고싶어요. 지난 겨울에는 연탄기부를 하기 위해 일일호프를 열어서 200만원을 모았어요. 이번 달에 네팔 어린이를 돕기 위해서 한 일일호프에서는 400만원이 모였어요. 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이 안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죠. 물론 저 혼자 한건 아니에요. 좋은 뜻으로 모인 뮤지션들과 후원자들이 많이 있었죠.

 

천경희 후원자님을 보면 기부하는 것을 정말 즐거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후원자님이 생각하는 기부란 무엇인가요?

기부는 나눔이에요. 누구나 힘든 시기지만 이럴 때 일수록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없는지 돌아봐야해요. 기부를 권유하다보면 좀 더 돈을 벌고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기부의 진짜 맛은 내가 지금 조금 부족한 것 같지만 그 부족한 것을 나누어 주는 데에 있죠. 콩 한쪽은 나눠먹기엔 좀 작요. 그래도 한번 나눠보세요. 포만감보다 더 좋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예요. 그걸 꼭 느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스스럼이 없었다. 덥석 할머니의 손을 잡았고 해맑게 웃었다. 오랜만에 손녀 같은 이의 재잘거림을 듣던 할머니는 잠시 수줍다가 이내 애틋하게 등을 쓸어주었다. 할머니는 바쁜데 어서 들어가 보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쉽사리 손을 놓아주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집 앞에선 그녀도 똑같은 작별인사만 되풀이 할 뿐 순순히 손을 내어주고 있었다.

 

조희윤씨(23)는 푸드스마일즈 장학생봉사단이다. 일 년 동안 독거어르신과 짝을 맺어 어르신에게 쌀과 잡곡을 전해드리고 함께 장을 보러가서 필요한 먹거리를 구입해드리는 쌀남쌀녀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드스마일즈의 모든 봉사단이 독거어르신 또는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지만 특별히 쌀남쌀녀는 어르신과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르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일상이 무료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제가 놀러 오길 기다리셨죠. 쌀남쌀녀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비슷한 마음이시라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먹거리를 매개로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쌀남쌀녀봉사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저도 어르신들과 보내는 시간이 행복해요. 그러니 다른 이를 위해서 봉사를 하고 있다는 말엔 어패가 있어요. 전 제가 즐거운 일을 해요. 제가 즐거운 일을 하는데 다른 이들도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이죠.”

 

 

 

인도인보다 더 인도인처럼

 

희윤씨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인도에서 보냈다.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부모님과 상의 하에 인도현지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인도학교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즐겁고 활동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고학년이 되어서는 교내 합창부장이 되기도 했다. 인도인보다 더 인도를 좋아했다.

제가 인도에 있을 때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온 적이 있어요. 저는 학교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에게 가장 먼저 학교를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죠. 교장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한국에서 온 친구가 몇 일간 제 옆자리에서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어요. 그때 그 친구에겐 인도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제가 꽤나 신선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언어적인 부분이 온전히 자연스러울 수는 없었지만 노력하다보니 학교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무엇보다 역사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인도역사가 워낙 풍성하기 때문도 있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도 있던 것 같아요. 특히 식민지시대 이야기가 그랬죠. 인도의 식민시절 이야기를 듣고 분개했고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 호기심이 자연스레 한국역사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졌어요.”

인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특별히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한국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명확한 이유가 생겼다.

외국에 있으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한국에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것 같은 사건들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고요. 제가 인도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인이잖아요. 한국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대학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희윤씨는 역사문화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학과 공부는 기본이고 아이스하키, 연극, 학과 답사준비위원회 등 종횡무진이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학과공부도 바쁜 건 사실이지만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고 싶은 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요.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요. 다가오는 여름에는 광주 유니벌시아드에서 통역봉사를 할거예요. 2014년에 진행되었던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싱가폴테니스팀 통역봉사를 했었거든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또 두 문화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보람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열리는 광주 유니벌시아드 대회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열정적으로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고학년이다. 하지만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까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보단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요즘 제 삶의 화두예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회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어떤 텍스트나 사회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공부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했어요. 이 일을 졸업 후 진로로 정하게 될 줄은 몰랐죠.”

서울 소재 4년제 사회과학 계열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진로는 무엇일까. 굳이 대기업취업으로 몰고 가지 않더라도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평균 성적이 4점 이상이고 영어, 대외활동, 봉사 등의 스펙이 모두 갖춰진 경우에는 더욱이 그러하다.

부모님은 당연히 대기업에 취업을 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친구들도 그렇고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나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 수는 없자나요. 나의 진로는 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죠.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도 지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이영훈씨는 8년차 이벤트MC. 어느새 소속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이벤트 전문MC가 되었다. 그 시작은 우연히 접하게 된 방송인 김제동의 레크리에이션 영상이었다.

처음 그분이 사회 보는 영상을 보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영상 속에 보이는 많은 관객들도 저처럼 넋을 놓고 사회자를 보고 있었어요. 나도 그분처럼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고3이었지만 레크리에이션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이 생겼다. 매일 한 시간씩은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능 바로 다음날, 학교 축제에서 영훈씨는 첫 무대에 오르게 된다.

밴드부와 연극부 프로그램 전에 5분정도 사전엠씨를 보는거였어요. 게임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하다보니 처음 주어졌던 5분이 훌쩍 넘어 10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그만하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이렇게 시작한 이벤트MC일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 사회를 보고 지인들의 행사에도 초정 받았다.

돈을 얼마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를 불러주는 무대라면 어디든 기쁜 마음으로 갔어요. 마이크를 쥐고 사람들 앞에 서면 왠지 모를 힘이 나더라고요.”

할수록 재미가 있었고 실력이 늘었다. 영훈씨의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무대에 설 기회도 점점 늘어났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주로 돌잔치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요. 한주에 보통 10건 정도 되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죠. 하지만 지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좋은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해요.”

 

주말에는 ‘MC이순신으로 바쁘게 활동하지만 그 외에 시간에는 대학생 이영훈의 삶도 알차게 살아내려고 한다.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수업은 늘 맨 앞줄에서 듣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제가 가진 것들로 나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요.”

군 제대 후 유네스코 브릿지사업단으로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왔다. 동양인이 한명도 없는 마을에서 5개월간 마을사람들과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지역활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다보니 국제구호나 사회환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좋은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달받는 사람들과 그 지역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어려운 이웃의 처해진 상황을 겸손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돕는 일의 첫 단계라는 걸 영훈씨는 알고 있었다. 그 마음으로 2014년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독거노인의 삶 이야기를 절절하게 외쳤다.

우양재단에서 독거노인 인식개선캠페인을 하면서 놀란 것도 그 부분이에요. 아직 우리나라에도 굶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상상도 못했어요. 폐지를 하루 종일 주워 받을 수 있는 돈이 겨우 이천원라는 건 정말 충격적인 일이예요. 아마 그 인식개선캠페인을 통해 가장 크게 인식이 개선된 사람은 바로 저 일거예요.”

 

 

 

 

청년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가가 되고싶어요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영훈씨가 가장 마음을 쏟는 일은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다. 대학에 입학한 해부터 동아리를 통해 중고등학생들과 꿈을 공유하는 멘토링 및 코칭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영훈씨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멘토링이나 코칭이라는 말이 얼핏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냥 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로 캄캄하게 느껴졌던 날이 많았거든요. 혹시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그 시기를 지나온 형, 오빠로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사실 이건 제가 평생에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해요. 지금은 인지도 있는 이벤트MC가 되는 것이 가장 가까이 있는 목표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청년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강연자가 되어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날을 늘 꿈꾸고 있어요.”